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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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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한 삶도 좋다. (2023년 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 정신건강 회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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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바르게살자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703회   작성일Date 23-09-27 12:00

    본문

    얼마전에 제가 파도손 홈페이지 게시판에 끄적였던 글이 회복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2023년 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 정신건강 회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제목 : 부족한 삶도 좋다.




    "야야, 저기 터미네이터 왔다.”


     얼마를 그렇게 지내 왔을까, 친구들의 수근거림 속에 정신이 번쩍 든 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때의 나는 내가 그리는 망상 속에서 터미네이터가 되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 터미네이터로 나오는 아놀드슈왈츠제네거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그 장면을 흉내 내며 그렇게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위 말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했었고 덕분에 학교에서는 늘 놀림을 당하는 왕따 생활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동네 작은 정신과를 전전하다가 제대로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컴퓨터그래픽을 배우려고 미국의 한 대학교에 다니다가 상세 불명의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 후로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진단명에는 조울증과 ADHD가 추가되었다.

     그 사이 4번의 입원과 한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 영화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에서 자살 시도를 하는 주인공 유정에게 그의 엄마가 했던, “너 지금 연기하니?”라는 대사가 그러하듯,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 삼 백여 개를 일 년간 정성스레 모아서 입에 털어 넣은 건 자살 시도라기보단 어찌 보면 쇼였는지도 모르겠다. ‘나 좀 제발 살려달라는...’


     첫 입원 생활을 마치고 30대 중반에 가까워지도록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도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로는 자존감이 낮아진 내 자신을 달래기 위해 해질 무렵 아파트 담장 벽에 서서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하루 천 번씩 되뇌이기도 했었고, 금연을 10년 정도 하기도 했었고, 감사일기를 2년간 매일 적어보기도 했었고, 어느 해인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A4용지 40페이지 분량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기도 했다. 약을 복용하며 찐 살을 빼기 위해 2년 동안 100킬로가 넘는 체중을 감량한 적도 있었다. 중간에 요요가 와서 다시 찌고 빠지는 것이 반복되었지만...


     그러는 사이 병이 재발하고 퇴행이라는 것도 반복되었다. 20대 중후반쯤인가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웹디자인 회사에서는 정신과 약에 취해 근무시간에 졸다가 해고되었다는 사실로 울며 불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몇 년을 또 집에서 보내다가 30대 초 쯤 되서 들어간 중견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했는데, 이유인 즉 회사에 여직원이 하나도 없는데 디자인팀에서만큼은 여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회사 실세 남자분들의 불만이었다랄까..

     

     사장님에 의해 채용됐으나,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괴롭힘만 당했다. 결국 마지막에도 사장님이 아닌 관리과장과 면담을 하고 "사장님도 같은 뜻일 겁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그만두라는 종용을 받게 된다. 나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주임'이 아침 8시 55분에 출근한 나에게 왜 8시 50분까지 출근 안했냐고 하며 지각이 아님에도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하면 책상을 빼버리겠다고 한 말이나, 에어컨 바로 앞자리라서 너무 추워서 손을 잠시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을 본 관리과장이 여기가 학교인 줄 아냐며 똑바로 하라고 한 말을 들으면서도, 그 당시 나는 '어차피 뭘 해도 해고될 사람이었는데' 하는 생각으로 내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다.


     그 다음에 입사한 회사에서는 점심을 먹고 직원들끼리 산책을 나가는데 산책을 나가는 것 하나 만으로도 천국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 이유야 어찌 되었든 5분 칼타임을 지키며 갖은 수모를 겪었으니 점심을 먹고 5분, 10분 시간의 여유를 가지며 산책을 하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나는 자연스럽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장점들이 눈에 보인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눈도 생겼다.


     서른 다섯이 넘어서야 아르바이트가 아닌,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그 후로 나는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한다. 요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 정도면 직장으로 출근한다. 요즘 소통하는 당사자 카페의 메신저 톡방에서 나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시는 당사자 한 분은 그것을 부채감이라고 표현했다. 과거에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우울감 속에 한없이 늘어져 있어야만 했던 삶에 대한 부채감이라 했다. 

     나는 뭐랄까 직장에 제대로 다니면서부터 정말 이를 꽉 물고 결심한 것이 있었는데 다시는 그때로, 방 안에서 힘들게 지내야만 했던 그 시절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컨디션이 받쳐주는 한 일찍 일어나 출근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젠 어느 정도 그게 몸에 익숙해진 것 같다.


     20년이 넘는 투병 생활과 그 속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거리며 시작한 8~9년의 직장생활, 아직도 나에겐 부족한 점이 많다. 한 직장에서의 2년 이상의 경력이 없다는 것도 그중에 하나다.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참고 견뎌내는 인내심이나 끈기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버텨내는 뚝심이 더 필요한 걸까?


     늘 부모님의 기대가 커서 내가 그 기대를 맞춰드리기가 힘들었지만, 그런 부모님의 모습 덕분에 내가 조금이나마 더 회복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즘. 정상적인 친구나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며 그 기준으로 항상 내 모습을 평가하시고 채찍질하셨던 부모님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픈건 아픈거고 일은 해야지”하셨던 부모님. 아픈건 아픈거라니... 아파서 약을 챙겨 먹고 아침에도 제 때 못일어나고 머리도 둔하며 일도 못하고 생활도 어려운건데...하아. 그렇게 또 아둥바둥거리며 일자리를 구하고 버티며 몇 해가 흐르니 부모님의 기준은 더 올라가기만 한다. 공부해서 석사, 박사, 유학.. 요즘은 유학 안가도 헤드헌터들 많으니 능력만 있으면 다 해외 굴지의 회사들에서도 연락이 온다고 말씀하시며 능력을 키우라고 하시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즘은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오래 전엔 들으면 그저 견디기 힘든 잔소리였는데 언제부턴가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긴 것 같다.


     병이 나고 10여 년은 신에게, 부모님에게, 나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줘서 마음의 병이 나게 만든 원인제공자들에게, 그리고 한없이 보잘 것 없는 내 자신에게 원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렇게 살면 나아지는게 없다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부족한 내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고 노력이란 걸 하게 되고 그러니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감사함을 느끼다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찌 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지만 이런 나의 느린 인생에 만족하고 감사하다. 이젠 감사할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랄까? 


     부족한 삶도 좋다. 

     그 안에서 나만의 행복씨앗을 심고 조금씩 키워나가는 기쁨에 미소가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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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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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님의 댓글

    Star 작성일 Date

    안녕하세요.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 때문인지 (*추정, 비진단) Deep Gore Tube 같은데서 사람들 몸이 아작나고 죽는 걸 보다가 결국 지금은 법륜스님의 정토불교대학 해외반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제 젠더도 그렇지만 해외까지 왔어도 차별은 여전한 것 같아서 너무 싫군요.
    ..제 과거 시절을 재조명하면 더욱더. 인간 여자-female-의 형상을 하긴 했는데 속은 완전 괴물이었던, 그런........
    게다가 아직 처녀라; 한국으로 하면 그냥 노 (老) 처녀인데 에이섹슈얼 (Asexual)로 커밍아웃 했어도 아무도 안 믿어주거나 깔보거나... 둘 중의 하나더군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런 건.
    저도 왕따를 당한 뒤로는 뭔 사회적 장애가 생긴 탓인지... 어른이 되고 보니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은 커녕 가족마저도 다 도망 가더군요. 덕분에 위기감에 SSDI SNAP 구직보조금 다 신청 하고 있지만 역시 불안합니다. ..지방청 같은 데 들어가서 사람 하나 면전 보고 대화하려 해도 절대 안 받아주니... 참 그쯤 되면 왜 다들 빠지는 데 빠지는가 그만큼 기분은 더럽지만 이해는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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