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광장] 4차 산업혁명시대, 게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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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광장] 4차 산업혁명시대, 게임의 재발견
조성민 마음산책 심리상담센터장
누군가가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탐닉해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병', '~중독' 등의 표현을 일상적으로 즐겨 쓴다. 소낙비를 맞으며 달리기를 하는 친구를 보면서 "저 정도면 중독이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서 '게임중독'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국제보건기구(WHO)는 새로 구성 중인 질병진단편람(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라는 새로운 질병목록을 넣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러한 WHO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칼럼들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 글들을 보면, 지나친 게임은 보건의 영역이며, 질병으로 바라봐야만 해결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도박중독과 같은 행동중독(behavior addiction)의 대표선수에 해당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상적 표현으로 '중독', '장애'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 이를 전 세계가 공식적으로 준용하는 WHO의 질병목록에 넣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차원의 문제다. WHO는 '게임장애'라는 진단명을 '물질사용 및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 항목의 하위분류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결국 게임이 중독성 장애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통상 정신의학 전문가들도 정신과적 장애들에 대한 '낙인효과'에 대해 우려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게임장애' 질병 목록화에 대해서 "아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낙인찍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에게 "아주 무섭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비난을 한 글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낙인(stigma)이라는 말의 어원을 따져 보면, '찌르다, 표시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stizein'이 그 어원이라고 한다. 즉, 가축의 저항을 무력화하면서 피부(가죽)에 표식을 남기는 것이 바로 낙인이다.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말이다. 일상 속에서 "중독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전문가는 아니니까 뭐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그런 낙인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그 낙인을 사용하는 전문가인 의사가 누군가의 진단서에 그렇게 써넣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낙인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이건 전문가의 진단이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정하거나 저항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주변인들은 그 진단을 근거로 그를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당사자는 공동체로부터 소외돼 간다. 한때 우리 사회가 한부모 가정의 청소년들을 결손가정 청소년이라고 부르며 오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낙인은 전문가들이 만들고 찍고 하면서, 그것에 대해 자연스러운 거부반응을 보이는 당사자와 수 많은 대중들을 오히려 낙인효과의 책임자로 비난하는 것은 정말 난센스다.
인류는 놀이를 통해 세상살이를 배워왔다. 교실에 앉아 배운 것보다 살면서 놀면서 배운 것이 더 유용한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게임은 오프라인 월드(off-line world)와 온라인 월드(on-line world)를 동시에 살아야 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류에게는 온라인 월드 상에서의 주요 놀이이기도 하다. 간혹 심각한 부작용을 보인다고 해서, 놀이의 한 형태인 게임을 질병의 온상으로 취급하려는 시도는 결국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게임이 사행화되는 문제, 게임 외에는 놀고 싶은 에너지를 발산할 곳을 틀어막은 왜곡된 교육체계와 그로 인해 병들고 있는 가족체계를 들여다볼 일이다.
과도한 게임으로 인한 문제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 병원 외에도 스마트쉼센터, 아이윌센터, 위센터 등 국가에서 공공모델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 이미 많이 있다는 점은 굳이 질병목록화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게임은 보건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은 본래 놀이와 문화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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