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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둣발 소리 그리고… “우울증은 나에게 생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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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5,462회   작성일Date 20-12-15 11:11

    본문

    ‘착한 딸’로 자라며 감정을 모두 뭉개다, 김유진의 경우
    제13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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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최지영


    김유진은 어린 시절 오랜 시간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하지 않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몽상에 자신을 가두었다.


    “어릴 때부터 저한테는 행복이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행복한 기분을 느낄라치면 바로 구둣발 소리가 들리니까. 탁탁탁. 그게 트리거(우울이나 불안 등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거든요.”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의 구둣발 소리는 집의 평화가 깨질 것을 예고하는 소리였다. 곧이어 집 안에서 담배 냄새가 나고 가끔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반복되는 폭력은 유진이 온전히 행복할 수 없도록 했다. 그래서 꾹꾹 눌렀다. 누워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말자. 자신을 우울한 상태로 만들자. 그러면 낙차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가 우울한 것은 생존 본능이었다.



    자신의 우울을 늦게 알게 된 이유


    유진은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게 싫다고 했다. 상담도 가면 불편하다. 사실 유진뿐 아니라 다른 인터뷰이도 진료실이나 상담실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이걸 다 어떻게 설명하나. 내 이야기가 저 사람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가 날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데.


    “아비가 외도하고 때리고… 박제해도 좋을 만큼 한국에서 전형적인 서사잖아요. 상담사는 그런 걸 얼마나 많이 듣겠어요. 내 이야기가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버리는 상황이 너무 혐오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랩 하듯이 엄청 빠르게 말해요.”


    우울증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를 괴롭힌다. 자기혐오, 자살 충동, 자기파괴

    충동, 끝없는 부정사고와 좌절을 안겨준다. 우울이 심하면 감정이 뒤섞여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되어 나를 집어삼킨다. 우울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전혀 분화되지 못하고 한데 뭉쳐 나를 난도질하는

    상태이다. 우울증을 겪는 상태의 나는 화도 나지 않고, 기쁨도 느낄 수 없다. -김유진의 글


    다섯 명의 인터뷰이는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가졌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우울감이 그 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유년기부터 시작됐다. 다만 이러한 상태(심한 무기력감, 매일 울음, 죄책감, 자살 충동 등)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살다가 한참 뒤 특정한 계기로 병원을 찾았다.


    유진이 모두가 이렇게 중증 무기력증 속에 살지 않음을 안 건 중학교 때다. 친구들이 취미도 갖고 건강하게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보며 모두가 자신처럼 누워 있거나 자는 것으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음을 알았다. 다른 가족 구성원 역시 도피성 수면과 무기력에 빠져 살았기 때문이다.



    방파제 돼주지 못한 ‘정상 가족’


    나의 우울증은 유전적인 것이기도 하다. 외가의 불행에는 오랜 우울증이 

    함께했다.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엄마의 불행은 딸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불행을 대물림받아 주폭과 외도로 점철된 다

    무너진 가정을 감내해야 했다. 엄마는 내가 정신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했고, 여전히 부정하고 싶어 한다. 나의 아비는 엄마를 공격할 때

    치졸하게도 자주 외가의 아픈 부분을 입에 올렸다. 나는 한동안 엄마로부터

    ‘의지로 이겨내야지’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 심정을 헤아리기조차

    무서워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유진의 글


    유진은 엄마에게 의탁을 많이 했다. 자신이 잘못되는 것보다 엄마가 실망하고 화내는 게 더 무서울 정도였다. 엄마 역시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험한 가정사 속에 엄마는 둥지 구실을 했다. 그런 엄마께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더 보호하고 생각했다면 엄마가 지금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김유진이 보기에 가족 모두에게 치료가 필요하고,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엄마는 정신장애라는 꼬리표를 극구 부인한다.


    다섯 명의 인터뷰이는 서류상 모두 ‘정상 가족’ 출신이다. 하지만 가족은 우울의 방파제가 되지 못했다. 그보다는 원인 제공자에 가까웠다. 유진은 아빠를 ‘가해자’라고 지칭했다. “사건들을 죄다 생각해보면 아빠랑 관련 있거든요. 그걸 선명하게 자각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아빠는 문제 아닌 데가 없어.”


    인터뷰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착한 딸이었다는 것이다. 이다울은 아픈 오빠를 대신하기 위해 ‘가족의 빛과 희망’이 되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이민지는 준비물을 살 용돈을 주기는커녕 제대로 빨래조차 해주지 않는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챙겼다. 박지은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빠의 외도를 눈치채고 엄마를 지키려 했다. 다른 가족을 대신해 아빠에게 아양을 떨어 돈을 타냈다. 가족을 지키려는 아이의 노력은 쉽게 평가절하된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친밀한 폭력을 아이들은 예민하게 감지하고 영향받는다. 이들은 모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착한 딸’로 지내다 성인이 된 뒤 우울과 불안이 심화해 병원에 갔다.


    장형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거점) 부소장 겸 아주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착한 딸’을 우울증과 이렇게 연관시켰다. “여자아이가 정서 인식 발달을 저해받으며 자란다고 생각해요. 친절하다, 사근사근하다처럼 남자아이보다 더 사회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받죠. 그러니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껴도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일어납니다.”


    장 교수는 “양육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상황이 반복될 때 감정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분노 표출하는 방법 알게 됐을 때


    유진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편두통에 시달렸다. 토하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였지만 늘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대학에 오자마자 편두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유진은 이를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전까지 유진은 분노를 표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유진의 집안은 다들 우울했지만, 가족 중 치료에 나선 사람은 유진이 유일했다. 또렷하게 자신을 우울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 추적했고, 무엇이 폭력인지를 구분해냈다. 유진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믿을 만한 병원을 찾아서 6개월 이상 꼭 치료를 받아보세요. 저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나아졌어요. 용기를 내서 가보세요.”


    하미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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