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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로 돌아온 진숙씨, 삶은 아직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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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9,373회   작성일Date 20-06-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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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사람들과의 인터뷰] <3부> 공존(共存) 실험 ⑦ 사회로 들어간 사람들


    202006010015_11130924140505_1.jpg 

    서울시 정신질환자 지원주택 거주자 신주연(가명)씨가 지난 19일 방을 청소하고 있다. 냉장고에는 자치모임에서 작성한 지원주택에서 꿈꾸는 삶 등이 적혀 있다. 윤성호 기자


    한국의 정신질환 관리 시스템은 가족 구성원들의 독박 돌봄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은 약물과 상담 등 의료적 조치와 사회적 지지체계의 지원, 일상 회복을 통한 정서적 안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만 ‘관리’가 가능한데 그 모든 역할을 환자 가족이 떠맡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병식(病識·병에 걸렸다는 자각)이 약하거나 없다. 그래서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 데만도 탈진할 지경이라고 환우 가족들은 호소하고 있다. 반면 국가의 1인당 연간 지역사회 정신건강 예산은 4791원에 불과하다. 사회적 지지가 약한 상황에서 가족이 환자 관리를 포기하면 빈틈이 생기고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십년 동안 이런 상황이 고착하면서 사회는 ‘정신질환자는 격리가 최선’이라는 인식만 굳어져 왔다. 정말 시설 ‘유폐’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실험


    격리 인생 30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이진숙(가명·57)씨는 그 편견을 깨는 실험 중이다.


    “토요일에 강화도엘 갔었어요. 바닷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는데, 언니가 밥을 두 공기나 드셨어요. 병원에선 다른 걸 못 먹어봤대. 족발 같은 건 한 번도 드셔본 적이 없대요. 지금은 고기를 너무 좋아하셔요.”


    지난달 만난 김현정(가명·41)씨가 진숙씨를 보며 말했다. 진숙씨는 “이제 라면도 끓일 줄 알고, 계란도 삶을 줄 안다. 반숙은 끓였다 놨다 하면 된다”고 맞장구쳤다. 둘은 하우스메이트다.


    진숙씨는 20대 앳된 나이에 시설에 들어갔다가 환갑을 몇 년 앞두고 지난해 사회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 긴 세월 노숙인시설과 정신요양시설, 정신병원만을 전전했다. 정확한 과거 기록은 없다. “1988년 올림픽 전에 여성 부랑인 시설에 들어가 계시다가 정신요양시설로 들어가셨다는 것 같아요.” 시설에서 시설로, 병원으로 옮겨갈 때 관계자들이 건네 들은 조각난 이야기들이 그녀의 삶을 드문드문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해 3월 처음 집으로 온 날, 언니는 머리도 하얗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타났어요. ‘노인분이 오셨나 보네’ 그랬거든요.” 현정씨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개벽할 수준이라는 듯 설명했다. 진숙씨가 온 곳은 재단이 한 기업의 사회공헌기금으로 마련한 임대주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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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사회 귀환은 우연히 시작된 실험 같았다. 2017년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이씨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보호 입소시킨 무연고자들 중 동의 입원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공후견인을 선임하도록 했다. 그녀의 후견인으로 민간단체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이 지정됐는데, 그들에게 “나가고 싶다”고 호소하면서 귀환 작업이 시작됐다.


    격리 인생 30년 환자를 지역사회에 정착시키는 건 난관의 연속이었다. 우선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그녀는 가스불을 켜 밥을 할 줄도,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볼 줄도 몰랐다. 재단 관계자는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알려줄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구하려고 했지만 대상이 안 됐다”며 “일단 급한 대로 치매환자 간병인을 붙였다”고 말했다. 간병인 역시 “이게 가능할까”라며 부정적인 반응만 보였다.


    30년 공백을 메우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회성이 떨어지니까 마찰만 생기면 방에 들어가 울고, 밤에 혼자 있는 게 무섭다며 울고….” 그런 날이면 재단 사회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병원에 보내 달라”고 매달렸다. 그런 날이 몇 달 반복했다. “우리도 처음엔 몰랐는데 다 할 수 있어”라며 진숙씨를 토닥인 건 임대주택에 함께 사는 정신장애인 동료들이었다.


    생활이 몸에 익으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간병인과 함께 타야 했던 버스를 이제는 혼자 탄다. 혼자 라면도 끓여먹고, 음식물쓰레기가 차면 솔선수범해 갖다 버린다.


    “수급비 나오는 날이면 혼자 마을버스 타고 재래시장에 가서 삼겹살이랑 과일 같은 걸 사가지고 와요. 그러고는 우리한테 ‘같이 먹자’고 하면서 베푸는 거예요.” 현정씨가 말했다.


    진숙씨는 인터뷰 때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립스틱을 칠한 입술로 “여기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아”라며 싱긋 웃었다. 지속적인 케어로 약물 치료가 규칙적으로 이뤄져 지역사회에서 사는 1년2개월 동안 응급 상황이 벌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위태


    그녀의 일상을 해피엔딩으로 보긴 어렵다. 그녀의 삶은 여전히 위태롭다. 기업의 후원, 민간단체의 생활 지원이 유지돼야 지금의 평범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녀를 돕고 있는 단체 소속 사회복지사는 그녀가 필요할 때면 주말도 없이 나가고, 투약 관리도 꼼꼼하게 챙겨 왔다. 정부의 지원이라곤 수급비밖에 없다. 그녀는 30여만원으로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남은 30만원 정도로 생활한다.


    그녀가 사회 구성원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이런 지원은 국가 단위의 시스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공공후견인이 지정된 환자는 486명뿐이다. 반면 병원이나 시설에 10년 이상 장기 수용된 환자는 2만명(국민일보 26일자 1·4·5면 참조)이다. 환자의 일상 복귀를 돕는 정신재활시설은 전국 348곳(2018년 말 기준)에 그치고, 절반가량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정신재활시설 확충 계획을 밝혔지만 그간 들어온 신축 신청은 2건뿐이다. 지역 주민의 반대 때문이다.


    선입견은 일상을 잠식할 만큼 두텁다. 조현병 환자인 신주연(가명·59)씨는 지난해 말 서울시를 통해 9평짜리 지원주택을 얻었다. 시설을 나올 때 “남은 생을 재미나게 사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 녹록지 않다는 걸 금방 배웠다. 그녀는 지난 3월 지원주택 입주자들과 요리학원에 다니려다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정신질환자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의 사회 정착을 도우려 했던 사례관리자들은 이후 그가 정신질환자라는 게 소문날까봐 지역 눈치만 보며 지내고 있다. “‘아직 그런 세상이구나’ 하고 말았어요.” 이해한다는 신씨의 말이 허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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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건 그야말로 ‘천운’에 가깝다. 임진희(가명·31)씨는 수급비 60만원으로 살다가 정신장애인 창작문화예술단체 ‘안티카’ 반상근직으로 일하게 되면서 월 56만원 수입이 생겼다. “급성기 증상이 나타나 스스로 폐쇄병동에 입원했다가 돌아오는데, 그걸 기다려주는 일자리는 없다”는 게 임씨 설명이다. 월급이 100만원을 넘어가면 수급자 기준에서 탈락돼 이 정도만 벌어야 한다.


    부족


    “우리 애가 급성기인데, 차를 부수고 사고를 쳐요. 어쩌죠?”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오세요.”


    목소리 주인공 서정필(62)씨는 의사가 아니다. 청소년기 정신질환을 얻은 아들(34)을 둔 아빠다. 아들을 병원에만 둘 수 없어서 정신질환을 공부했다.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이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스스로 전문가가 됐다.


    “어떤 부모가 아이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하겠어요. 몇 년간 가족이 돌본 거죠. (병원에 가봤더니) 80~90평에 환자 200명이 있어요. 근데 거기 아니면 놔둘 데도 없으니….”


    서씨는 이후 조현병 환우가족 교육 프로그램인 ‘패밀리 링크’ 사업교육을 받고, 정신장애인 가족지원활동가가 됐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나날을 견디는 동안 아들은 서서히 회복됐다. 지금은 입원 없이 외래 진료만 받는다. 8년 전부터는 직장도 다니고 있다. 평일에 하루 4시간 정도 일할 수 있는 곳인데, 동료들한테서 꼼꼼하게 일을 잘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서씨는 다른 환자도 아들처럼 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8년 전 서씨가 사는 전원주택을 개방한 건 이 때문이다. 의사도, 사회복지사도 아닌 그의 집에 정신장애인 가족들은 틈날 때마다 찾아와 같이 울고 웃는다. 환우 가족들은 어떤 날은 집에 설치해둔 노래방 기계로 악을 쓰며 노래를 불렀다. 해줄 게 없으면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하룻밤을 재워 보냈다. 받는 돈은 없다. 월수입이 150만원인 그는 부자도 아니다.


    환우 가족들은 간병 과정에서 극심한 탈진과 자책감,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환우 가족을 위한 지원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누구 하나 손 잡아주지 않고, 위로 한마디 해주지 않는 극한의 고통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서씨가 사비를 털어 활동하는 이유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관계자는 “정신질환자 가족분들 중에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들이 많다.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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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마


    화성시는 지난해 6월 복지부 지원을 받아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선도 사업을 시작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정신질환자와의 첫 공존실험이다.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병원과 지역사회 사이 중간지대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뒀다. 센터는 병원이나 시설에서 장기간 사회적 입원 중인 환자를 찾아가 퇴원 가능성을 평가한다. 사회생활을 익힐 수 있는 재활시설과 자립체험주택·자립지원주택을 늘렸다. 중증 정신질환자 전담 사례관리자 15명도 추가로 채용했다.


    지역 주민들의 우려를 덜기 위한 서비스도 공을 들였다. 정신질환자들은 밤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잦은데, 대부분 지역 센터는 이 시간 문을 닫는다. 이번에 꾸려진 ‘24시간 위기대응팀’은 밤 10시까지 근무하면서 응급상황이 터지면 출동해 환자 상태를 살핀다. 이후 시간은 지역의 협력병원 2곳이 대응한다. 위기대응팀이 생긴 뒤 발생한 위기사례의 44%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 사이에 몰려 있었다. 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이 시간대 위기 사례는 강제 입원으로 이어질 공산이 컸다.


    재활시설 동기인 권선준(가명·62)씨와 배대영(가명·48)씨는 센터를 통해 사회복귀를 준비 중이다. 그들은 정신병원에서 5년, 재활시설에서 3년을 보낸 끝에 꿈에 그리던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됐다. 하지만 재활시설에서 나가야 하는 날부터 임대아파트 입주날까지 비어있는 1년을 지낼 곳이 없었다. 머물 곳이 없어 다시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할 처지의 그들 사정을 시설 담당자가 센터에 알렸다. 권씨와 배씨는 그렇게 자립생활주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요리를 잘하는 권씨가 밥을 하고, 배씨가 설거지를 한다. 주말에는 집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도 사 먹는다. “거기 한 그릇에 3900원밖에 안 해요, 싸요”라며 배씨가 웃었다. 일요일이면 둘이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러 나간다. 임대아파트 입주를 준비하며 밑반찬 만들기나 빨래하는 것도 습관을 들이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사는 것이다.


    “병원에 갇혀 있을 땐 환자밖에 못 보는데, 나와서는 외부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게 제일 행복해요. 지게차 운전 자격증도 있으니까 이제 취업을 해야지요.”(권씨)


    “병원은 만날 꽁치 아니면 고등어였어요. 낙이 하나도 없었어요. 공기가 아예 달라요, 콜라 맛도 거기 갇혀서 먹는 거랑은 달라요.”(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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