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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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직접 장애 이야기 쓴
미국 뉴욕타임스 온라인 연재물
먼저 장애 경험한 선배들의
생동감·유머 넘치는 경험담
우리에 관하여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
피터 카타파노, 로즈마리 갈런드-톰슨 등 지음, 공마리아·김준수·이미란 등 옮김 l 해리북스 l 2만2000원
피터 카타파노는 <뉴욕타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연재물을 여럿 탄생시킨 베테랑 편집인이다. 2016년 8월, 그는 장애인이 직접 쓴 장애인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를 선보여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우리에 관하여>는 이 시리즈 가운데 초반 60편을 묶어 낸 책이다. 책 제목을 장애인 인권운동의 모토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하여 말하지 말라’에서 따온 것 역시, 당사자성을 강조한 연재물의 성격과 닿아 있다.
과연, 장애인이 직접 쓴 장애인 이야기는 신세계 별천지다. 분명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경험과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 실감난다. <한낮의 우울>의 저자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임상심리학자이기도 한 앤드루 솔로몬은, 놀이공원에 ‘공포 VR5150’이라는 놀이기구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다. 5150은 정신질환자의 강제구금을 가능하게 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법률 번호로, 이 놀이기구는 미치광이들로 가득한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되는 과정을 가상현실로 체험하도록 설계됐던 것이다. 그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런 놀이시설들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깔보고, 피하고, 나아가 해코지하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질환자들이 병을 숨기거나 입원을 기피해 증세가 악화할 수 있고, 편견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혐오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더 큰 문제다.
나치가 처음 집단학살한 것이 30만 명의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장애인의 시각으로 다시 보면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다. 우생학을 근거로 장애인 여성의 불임시술을 강제한 건 미국에서도 벌어진 일이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오늘날에도, 우리는 산전 태아검사로 장애가 판별되면 암묵적 합의로 낙태를 선택한다. 필자 중 한 명인 제니퍼 바틀렛은 “장애인의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인식과 끊임없이 싸웠던” 임신과 출산 과정을 들려준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의사 셰리 블로웻은 의사 명찰을 버젓이 달고 있는데도 자신을 환자로 오해하는 이들을 부지기수로 만난다. “의사 양반, 딱 봐도 당신 문제가 나보다 더 심한데…”라며 그에게 치료받길 망설이는 환자도 있다. 변호사인 캐럴 스타인버그는 휠체어에 앉아 높디 높은 판사석 앞에서 키가 큰 변호사와 3자대면을 해야 할 때마다 난감하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 목사인 신디 존스는 “믿음이 있었다면 (당신의 장애가) 치유됐을 것”이라며 “함께 기도하자”고 두 손 꼭 잡는 사람들과 종종 마주친다. “내가 목사예요”라고 알려주는 대신 “괜찮아요, 아무튼 고마워요”라며 지나치지만, 장애를 치유받아야 할 죄라고 여기는 편견은 그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에 관하여>의 저자 중 한 명인 앨리스 셰퍼드는 창작집단 ‘키네틱 아트’의 예술감독이자 무용수이며 안무가로, 이 책에서 자신이 휠체어와 함께 무대에서 춤출 때 겪는 감정의 변화와 신체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들려준다. 해리북스 제공
<우리에 관하여>는 오늘도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편견에 맞서고 차별과 싸우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자 숙명과도 같지만, 결코 슬프거나 비극적이지는 않다. 생동감 있고 유머 넘치는 글들로 가득한 이 책은 “먼저 장애를 경험 중인 선배들의 좌충우돌 경험담”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우리 대부분이 노화로 인한 장애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몸과 마음에는 확실이 많은 장애가 생겨날 것이다. 피부와 근육은 늘어지고 와해될 것이다. 내 장은 쉽게 탈이 날 것이고 주변은 어수선해질 것이다. 내 치아와 머리카락은 빠질 것이고 소중한 추억들이 기억나지 않게 될 것이다.”(엘리엇 쿠클라) 그러니 장애는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다. 결국 <우리에 관하여>의 ‘우리’는 장애인을 넘어 ‘모든 인간’인 셈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07564.html#csidxb94cbc8936677e7a03f4ec09365a5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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