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바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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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바살리아 프랑코 바살리아Franco Basaglia는 민주정신의학협회l'association Psychiatria Democratica를 설립하였는데, 그는 정신병원 시설의 문제 -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유폐시킴으로써 정신적 소외와 더불어 사회적 소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 정신과 의사의 중앙 집권주의적 권력이 정신병원 내에 관철된다는 사실 등의 문제 - 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정신병원을 없애고 의사, 심리학자,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 영향력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각 지역의 정신보건센터로 바꾸어내는 운동을 전개한다. 그가 이러한 제도를 주창한 것은 반정신의학의 문제의식을 그저 소수적인 성격으로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제도 생산의 영역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정신질환이 사회병리적인 현상의 과학적 알리바이를 제공한다는 통념에 대해서 맞섰으며, 정신질환을 격리함으로써 갖게 되는 사회 심리적 효과의 의미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파악한다. 광인들에게 혐의를 두는 많은 범죄나 무질서의 징후는 사실 정신병원의 실존의 강력한 지지대가 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광인들은 더욱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으며 억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병원의 제도는 사실 제도가 만들어진 원인에서부터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광인들이 과연 사회의 무질서나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정신병의 영역을 오히려 시설이 책임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바살리아의 시설이 갖고 있는 이율배반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생산하기를 원했으며, 그러한 실험의 결과로 정신병원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창안된다. 이 바살리아의 이탈리아 전통은 지속적이고 완강하게 계승되었고, 정신병원을 이탈리아 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강제입원이라는 절차에 대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가족이나 자신을 자해하거나 타해 가능성이 있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고 강제입원절차를 갖게 된다. 정신질환자는 보호의무자의 동의 없이는 쉽게 퇴원할 수도 없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정신병원이 사라지고 대신 정신보건센터가 있다. 정신보건센터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24시간 전문가들 - 사회사업가, 심리상담사, 간호사, 의사 등 - 이 환자와 상담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입원을 설득하는데,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강제입원과는 거리가 멀다. 정신질환자가 즉각적인 입원이 요구될 경우에 강제입원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의사 2명의 진단과 경찰의 간단한 조사, 시장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강제 입원한 경우라도 7일에 제한되어 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지역에 이러한 제도가 생기게 한 사람은 바로 프랑코 바살리아에 의해서였다.
바살리아는 여기에 정신보건센터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위계적인 병원제도를 허물어뜨리는 대대적인 개혁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병원 내부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보다 자유롭게 만들고, 직원과 환자의 위계를 무너뜨리기를 원했다.
그는 대형병원을 해체하고, 성별분리수용을 폐지하였으며, 정규적인 파티를 여는가 하면, 환자들이 운영하는 바Bar시설을 신축하였고, 환자신문을 발행하고, 자유로운 입출소, 소규모 주거시설 신축 등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1971년 1200명에 이르던 입원환자가 1977년 초엔 132명으로 줄었으며, 그중 51명만이 강제 입원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바살리아는 1976년 말 정신병원 폐쇄와 지역사회 서비스로의 대체를 골자로 한 이른바 '바살리아 법'을 통과시켰다. 트리에스테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정신보건 개혁이 전국적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마침내 1996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정신병원이 완전히 폐쇄됐다.1)
이 새로운 형태의 개입 방식의 출현은 물론 이탈리아의 사회투쟁이 매우 특수한 상황 하에서 발전한 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실제 아마도 10년 전부터 다수의 이탈리아 노동자는 새로운 문제들을 자각하고, 주거, 교통, 의료 구조 등에 관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어왔다. 민주정신의학운동은 이미 이러한 문제들을 둘러싸고 노동자조직, 기업위원회, 조합, 좌익정당 등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고 그 발전에 박차를 가해왔다. (Guattari, 1998: 175)
가따리는 바살리아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운동을 정신위생 노동자의 정치적 자각의 문제에서 접근하면서도 정신의학 문제의 현실을 용인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구래의 반정신의학과 차이점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정신의학에 대한 전투적 대안은 정신병원의 상태가 가장 후진적이었던 이탈리아에서 (뉴욕의 게토나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시작한 것은 지구별 의료 시스템이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환상이 없었던 지역에서 시작한 것이며, 우연이 아니라고 가따리는 언급한다.
정신의학의 문제는 기술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해결에 대해서 명료한 상을 갖게 되는 것은 혁명적이거나 혁명의 전야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이탈리아의 사회혁명이 - 1971년의 뜨거운 가을 이후의 사회적 상황들 - 타오르기 직전에 먼저 정신의학의 새로운 혁명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은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상호 연관적인 면이 있다.
[출처] 프랑코 바살리아|작성자 신승철 (신승철의 욕망생태연구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dshand&logNo=150086366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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