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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사는 이야기]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드는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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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8,082회   작성일Date 19-02-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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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감기에 걸리듯, 우리는 잠시 정신이 아픈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드는 이정하 

    2013년 12월 04일 (수) 12:15:23 대담 이승현 기자 l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꼭 해야만 할 말’이라며 비장한 눈빛으로 재차 강조를 했다. 본격적인 만남의 대화를 나누기 전에 점심식사를 함께하던 와중에도, ‘그’는 이번 만남에서 꼭 해야 할 무언가의 메시지를 반드시 독자 여러분 앞에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 눈빛과 표정의 무게감이 워낙 크게 느껴졌던 탓일까?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의 문장은 ‘그’가 원했던 의도 그대로 ‘할 말’과 ‘꼭 해야만 할 말’ 중심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중심 되어 주체가 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이정하 씨가 이번 호의 주인공이다. 정신장애 당사자이면서도 수많은 그 당사자들의 권익과 인권과 생존을 위해 그가 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를, 망원경이 아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 어떤 아픔을 얘기한다 해도, ‘피해 당사자’라는 용어 앞에서는 부연설명 같은 게 허망해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정하라는 인물,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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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로 찾아든 환청(幻聽)

    장애인등록증에는 양극성 정동장애, 직접 겪고 있는 증상은 정신분열증. 치료는 잘 되고 있는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지금도 병원을 계속 다닌단다. 마지막 입원은 지난 6월에 퇴원한 것이고, 2주에 한 번씩 가서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사회적인 직업을 먼저 언급한다면, 3D 애니메이션이 본격 도입됐던 1990년대 말부터 수많은 영화 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성공시켰던 인물이다. 제목만 언급하면 ‘아하, 그 영화를 이 사람이 만들었다고?’ 할 작품들이 꽤 있었다. 대한민국 3D의 1세대가 될 거라며, 이정하 씨는 자신의 소개를 마무리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기억나지 않는 시점에서부터 저는 항상 환청(幻聽)이 있었어요. 이게 환청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안 됐죠. 살아온 과정 그 모든 게 다 환청이었다는 거 말이에요. 어린 아이들이 산에 가면 나무들이 말을 하잖아요. 저는 나무뿐 아니라 바람과 비하고도 말을 했어요. 모든 자연과 대화를 나눴던 거죠. 굉장히 외로웠던 환경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풀하고도 직접 대화를 하며 지냈어요. 요즘 용어로는 텔레파시라고 할까요? 자연이 저한테 교감을 주고 위로를 했던 거죠. 나뭇잎 하나에게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풀 하나 해치지 못하며 지냈어요. 그런데 어린 애들은 다 그런 게 있지 않나요? 그게 정상이잖아요.”

    그렇다면 장애증상이라고 표현된 현상들은 언제 본격적으로 드러났을까? 지난 1999년이었던 것 같단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고 있을 때 그 작업의 강도가 너무 심하고 강력해서, 거의 6개월가량 하루에 잠을 1시간도 못 자는 기간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게 불면증이었다는 건가, 아니면 그 일 때문이라는 걸까?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아서 불면증이 온 거죠. 당시 발작증세가 있었어요. 환청과 망상과 환시(幻視)가 굉장히 심해졌어요. 주로 들렸던 저의 환청은 살해협박이었어요. 정확하게 말로 들렸어요. ‘너만 사라지면 돼.’ ‘너만 사라지면 문제가 다 해결되니까 너만 죽으면 돼.’ 그런 소리들이 정말 또렷하게 바로 옆에서 여러 사람의 음성으로 들려왔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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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비우스의 늪에 빠지듯 연이어…

    고향은 전라남도 순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순천만과 아주 가까웠단다. 고향 뒷산에 올라가서 보면, 순천만이 저만치 보이는 지역에서 살았다 한다. 하지만 빈농이던 집안의 환경은 굉장히 안 좋았던 모양이다.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을 만치의 아버지 폭력에 특히 어머님이 아주 힘드셨던 것 같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단다. 자신 안의 분노와 증오를 자기 가족에게 학대로 풀어내는 아버지 때문에, 그 큰 상처가 자신의 삶을 힘들게 이끌어오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가족 해체와 같은 형식으로 제각기 서울에 올라오게 됐고, 서울 모처에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둘씩 다시 모이던 과정 중에도 정하 씨 자신과 그 어린 남동생은 부모마저 떠난 상태에서 시골에 방치되며 부모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고 한다. 이정하 씨에게 직접 듣던 와중에도 답답한 마음밖에 떠올릴 게 없던 내용만 계속 이어졌는데, 가감 없는 고백처럼 언급했던 그 대목은 이정하 씨에게 이 지면 상으로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그만치 힘겨웠던 과거를 여기서는 ‘말줄임표(…)’로 대신하겠다고 말이다. 아무리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해도, 그건 개인의 프라이버시(개인적 비밀, 사생활)로 묻어둘 수밖에 없는 내용들뿐이었기 때문이다.

    TV나 모니터 위에 재생하던 영상 화면을 재빨리 돌리듯, 정하 씨의 인생을 잠시 ‘빨리 돌리며 요약’하고자 한다. -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다는 것, 그걸로 참았다는 것, 뭔가 집중하고 있어야 숨통이 트였다는 것, 그래서 어렵게 미대에 진학했는데 ‘이놈’의 사회가 군사정권 하에 젊은이들이 죽어가던 죽음의 시대였다는 것, 그래서 그 투쟁에 함께했다는 것, 현실참여를 위해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어느 공단에 취업을 했다는 것, 그런데 사실은 어머니를 너무 심하게 학대하는 아버지를 ‘죽여야’ 할 것 같은 살의(殺意)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취업해서 일하던 중에 출근길 교통사고로 온몸이 거의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는 것, 지금도 머리가 너무 아프고 뼈가 부서지는 느낌의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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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제로(zero)의 세상

    그의 눈에 띄었던 건 ‘리얼리즘 화풍’이라는 미술의 장르였단다. 민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화폭과 걸개그림에 남기는 그 장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지만, 그마저 꿈이 좌절됐다고 했다. 이후 PC통신 시절, 친구가 보여준 ‘컴퓨터’라는 새로운 도구의 세상이 정하 씨의 인생을 새로운 길로 인도했단다. 마땅한 교재도 없던 상황에서 정말 어렵게 3D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며 연마했고, 도전해 볼 만하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생겼기에, 그 세계에서 인정받는 애니메이션 개발자로 큰 활약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동료들의 배신, 그러니까 모두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만들어놓은 작품을 혼자 가지고 나가 다른 데 팔아넘기고 잠적해버리는 등 좌절의 과정도 끊이지 않았단다.

    “일 자체의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인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컸어요. 동료의식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던 이들의 만행은 정말 엄청난 상처가 됐거든요. 그래서 처음 입원했던 병원에서 받은 저의 증상 진단은 스트레스성 신경증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발작이 왔죠. 그때 받은 병명은 정신분열증이었고요. 이후 폐쇄병동에 강제입원을 당하는 세월을 계속 맞게 됐던 거예요.”

    공기 좋은 데로 가 보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가다 보면, 엉뚱한 곳의 생소한 정신병원에 붙잡혀서 병원 직원들에게 제압당한 상태로 ‘이상한’ 주사를 맞은 뒤 의식을 잃고, 낯선 사람들 속에 감금되는 인생은 그때부터 끊이지 않았단다.

    “정신병원에서 가족에게 저의 상태를 설명해 주잖아요. 그런데 늘 이렇게 말을 했어요.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 회복이 안 될 거다. 지금 너무 심하게 뇌가 손상이 됐고, 신체 기능도 아주 많이 손상이 돼서 제대로 돌아와 봤자 50%도 안 될 거다.’ 이런 진단을 받은 다음날이면 심각한 전신마비가 왔어요. 새로운 약물 때문인지… 약은 계속 먹어야 하는데 아니, 먹이고 있는데 몸이 안 움직여지더라고요. 머리는 깨어 있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엄청난 무력감,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했죠. 병원에서는 회복불능이라고 하니,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죠.”

    어렵게 다시 사회로 나와서 기존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 했지만, 약물의 후유증 때문인지 머릿속이 완전히 하얗게 백지로 변해 있더란다. 기본적인 마우스 조작마저 안 될 만큼이었단다. 그래도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 작심하며, 처음 공부했던 그 시절보다 더 열심히 스스로의 실력을 연마해서 모든 기억과 능력을 되살리게 됐고, 이때도 역시 ‘제목만 대면 알 만한’ 애니메이션 작품 몇 개가 그의 손길 안에서 탄생했단다. 그런데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는 다시 억압의 숨통을 조여 갔고, ‘죽음으로 너를 증명해 봐.’ 하는 환청이 극심하게 그의 정신을 막다른 길목으로 몰고 갔다 한다. 자살시도 뒤에 응급실 행, 그 다음에 눈을 떠보면 다시 폐쇄병동이 정해진 순서였단다.

    “폐쇄병동에 무슨 의료진이 있어요? 정신과 의사도 못 만나봤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전화 통화 한 번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약만 먹이면 어떡하자는 거죠? 저는 제정신으로 멀쩡했어요. 진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말썽’이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퇴원을 못하기 때문에 정말 무조건 얌전히 있어야만 했어요. 아무리 이상한 겁박의 소리를 들어도, 얌전히 있어야 퇴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그런데 중도에 어느 의사와 면담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퇴원시켜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소리를 버럭 지르는 거예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여기에 있으라는 거예요. 아니, 그게 의사가 할 소리예요?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들어주지 않아요. 진료도 안 해요. 그냥 약만 먹여요. 약물 주입을 당한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해본 게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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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장애화(化)된 거예요

    “폐쇄병동에 갔다 오면 그 후유증이 1년 이상 가요. 폐쇄공간에 감금되어 있던 그 자체가, 인신을 구속하는 것 자체가 고문이잖아요.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강제로 약을 먹여요. 정말 약을 먹기 싫어서 멈칫한 적이 있었어요. ‘아!’ 하고 입을 벌리게 한 다음에, 약을 정말 먹었는지 확인까지 해요 안 먹을 수 없어요. 삼킨 거 다시 뱉을 수도 없고요. 먹고 나서 혀까지 내밀어야 돼요. 그것까지 검사를 당해야 하니, 이건 정말 심각하고 기가 막힌 인권침해인 거예요. 그런 생활을 하고 나서 퇴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요. 그 자체가 충격이니까요.”

    이정하 씨는 2009년에 다시 재발을 했단다. 그런데 이번에 간 병원에서는 정말 예상 밖으로 일반병동에 ‘아주 자연스럽게’ 입원을 시키더란다. 내과 입원병동이었는데, 약을 강제로 먹이지도 않고 의사 또한 매일 회진하는, 정하 씨 입장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게 된 ‘희한한’ 정상적인 병원이었던 모양이다. 안정이 될 때까지 입원하고 있다가 퇴원을 했고, 다시 재발하면 같은 방식으로 입원을 했는데, 주치의라는 의사 선생님을 정말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나게 된 것 같단다. 강제로 폐쇄병동에 입원시키겠다던 가족의 의견에 맞서, 오히려 자신이 책임지고 돌보겠다며 강조했던 게 바로 그 담당 의사였다는 것이다.

    “‘환자가 안 가겠다고 하는데, 왜 강제로 폐쇄병동으로 보내려고 하느냐? 내가 책임질 테니까, 이 병원에 입원시키겠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올곧은 마음을 가진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돼서, 폐쇄병동 대신 응급실에서 안정제 하나 맞고 하룻밤 편하게 휴식한 다음에 정상으로 돌아와 퇴원하곤 했어요. ‘이런 환자는 발작이 급성이기 때문에, 응급실의 안정제 하나면 정상이 된다. 무조건 정신병원에 보낸다는 건 가족과 주변의 편견일 뿐이다.’ 제 입장에선 정말 인생의 은인과 같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거죠. 맞아요. 정신병원에 무조건 보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가족의 편견이에요. 그 편견 때문에 무조건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거잖아요. 그런 가족들은 무조건 다 똑같이 한 번씩 갔다 오며 경험을 해봐야 돼요. 아주 그릇된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겪어 봐야 돼요. 폐쇄병동을 너무 쉽게 해결책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그게 만성화 된 습관이 된 거예요.”

    결국 그는 가족과의 인연을 끊었단다.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마저 불사할 만치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자식과 동생에게 폐쇄병동만 강요하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다.

    “저는 장애라는 게 장애화(化)된 거예요. 처음 치료를 했던 의사 분이 제대로 저를 진료했더라면, 제가 이름도 모를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무조건 갇히는 상황이 반복됐을까요? 저는 7년 동안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했던 사람이었어요. 몇 사람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만큼의 일솜씨도 좋다는 평가를 받곤 했었죠. 그런데 다시 바보가 되어버린 거예요. 우리끼리는 ‘도화선’이라는 용어로 얘기를 하죠. 재발이 시작되면 약을 먹어도 효용이 없어요. 폐쇄병동에 대한 공포가 바로 ‘도화선’의 재발로 이어지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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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분들, 특히 정부 관계자 여러 분들께 이 의견을 전하고 싶어진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낯선 곳에서, 자신의 사지가 묶여 있는 채 까만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난데없이 펼쳐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병원 관계자들에게 겁박을 당하며 이름 모를 주사와 함께 ‘멍청한’ 정신 상태로 뒤바뀐 채 인권의 모든 걸 박탈당한 상태로 몇 달을, 몇 년을 지내야 한다는 게 올바른 인권국가 안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

    “대한민국 정신과 의사들은 다 똑같아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그런데 그나마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은 정말 다른 분이세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절대로 폐쇄병동으로 안 보낸다’고 하세요. 또한 저한테도 생활하다가 잠이 안 오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하세요. ‘이정하 씨는 응급상황이다. 바로 응급실로 달려와라. 그래야 폐쇄병동으로 안 끌려간다. 거기 가면 절대 치료가 안 된다.’고 말씀하세요.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게 있어요. 대한민국의 ‘어느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환자한테 ‘폐쇄병동에 가면 치료가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정신과 치료체계를 꼬집고 뒤집는 제 주치의 선생님의 명쾌한 해답이 아닌가요?”

    그렇게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하는 동안, 정하 씨는 다른 입원환자들과 ‘똑같은 케어(치료와 관리)’를 받았다고 한다. 매일 의료진의 회진을 받고 몸이 안 좋다면 다른 과의 선생님들한테 진료도 받으며 그림 그리기도 자유, 외출도 자유, 약을 먹고 안 먹는 것도 자유, 잠이 안 오면 새벽에 돌아다니는 것마저도 ‘자유’였다고 한다.

    “제가 드리고 싶은 ‘할 말’은,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은 병을 무조건 악화시키는 곳이에요. 정신장애가 전혀 없던 사람이라 해도,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정신병을 만들어 갖게 되는 곳이라는 거죠. 이건 굉장한 국가적 폭력이에요. 이 사회의 폭력이면서,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하면서도 제지하지 않는 대한민국 전체의 폭력이라는 겁니다. 정신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지위는 인간에 대한 예우가 아닌 거예요. 같은 인간의 취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함부로 감금하고 사지를 묶는 만행을 저지르는 거죠.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냥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유기견(犬) 정도? 애완견보다도 못해요. 애완견은 먹이고 재우고 씻기며 산책도 시켜주잖아요. 유기견은 돌아다닐 자유라도 있죠. 대한민국에서 정신장애인들은 돌아다닐 자유마저도 없어요. 유기견보다도 못한 게 현재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의 지위라는 거예요. 정말 묻고 싶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유기견보다 못한 존재인가요?”

    이제부턴 그의 실제 음성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그 어떤 부연설명이나 완곡한 의견제시도, 왜곡된 이 사회의 편견 비슷한 게 묻어날까 주저되기 때문이다. 충분히 절친해질 수 있는 이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신장애의 영역을 ‘정신병자’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일방적으로 몰아갔던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주범과 공범이 존재한다면, 바로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주범이자 공범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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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병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병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왜곡시켜요. 능력도 왜곡시켜, 성격도 왜곡시켜, 심지어는 죽음도 왜곡시키잖아요.”

    “자살이 아니라 살해 아닌가요? 살아갈 수 없게끔 죽음으로 내모는 거죠. 그러면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거예요. ‘너는 정신병이 있으니까 죽을 수도 있어. 당연한 거야.’ 모두가 책임을 안 지려는 거예요.”

    “우리는 정신이 아픈 거예요.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정신이 아픈 거야.”

    “당사자들도 문제예요. 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의식을 가지지 않고 자본가의 사상을 가지고 있잖아요. 똑같아요. 대한민국의 절대다수의 서민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여당을 찍는 것처럼, 똑같아요. 당사자들도, 이 환자들도 의사의 논리에 세뇌가 돼서…. 당사자운동이 어려운 점이 그거예요. 우리 자신의 계층의식, 계급의식, 당사자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의사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제가 재발을 굉장히 여러 번 겪었지만, 분명히 재발은 뇌를 파괴시켜요. 그런데 알아요. 해보니까 할 수 있다는 거. 아무리 뇌가 손상이 많이 되어도 살아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렇기에 재기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재활’이라는 표현은 잘못됐어요. 재활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비하적인 표현이고 ‘재기’가 맞아요. 아무리 두뇌가 95% 망가졌다고 해도, 나머지 5% 가지고 삶을 재기할 수가 있어요. 그러한 노하우가 우리에게 있어요.”

    “결국은 감금되어 있는 분들을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당사자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당사자가 당사자 위주의 정책도 펴고, 당사자 주체의 모델을 세울 수 있어야 돼요. 저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단 말이에요. 당사자가 외면해버리면 끝난 거죠.”

    “정신병원에 공식적으로 갇혀 있는 사람이 8만이에요. 그게 소수자예요? 전체 정신장애인이 120만 명이에요. 단지 장애등록을 못하는 것뿐이에요. 대부분 갇혀 있어서 나오지도 못하고. 이건 사회적 범죄예요. 온 나라의 국민이 똘똘 뭉쳐가지고 정신장애인한테 범죄를 하는 거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살인이에요. 차별? 우리는 신체장애인하고 달라요. 장애인 차별을 말할 게 아니라, 고문과 학대와 학살에 대해서 얘기해야 되는 사람들이에요. 이상하게 차별을 논해가지고 본질을 흐트러뜨리려는 집단이 또 있죠. 이제는 당사자가 직접 말을 해야 돼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요. 사회적 협동조합을 구상한 건 당사자 주체의 모델을 세운다는 거예요. 당사자 주체의 모델이 없어요. 다들 무슨 기관장, 사회복지사, 뭐 누구누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관리대상일 뿐이었지, 당사자 주체가 프로그램을 짜고, 당사자 주체가 당사자한테 맞는 계획을 해내는 시도나 노력들이 지금까지 없었어요. 왜냐하면 당사자가 그 위치로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다른 당사자들을 외면해 버리면 그것도 죄를 짓는 거예요.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건 나쁜 짓하는 사람들, 우리는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 불쌍한 사람들이 갇혀 있잖아. 나 혼자 살겠다고, 나만 빠져나오면 된다는 당사자들이 너무 많아요. 나만 병을 숨기고 살면 그만이라는 거야. 다 외면해 버려. 적어도 갇혀 있는 사람들을 알고만 있다면, 우리가 이제는 나서야 돼요.”

    “이제는 한국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이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도 바뀌어야 돼요. 우리밖에 없어요. 우리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신장애인들의 스스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커밍아웃을 하고 동참을 해야 돼요. 정신보건법이 뭔지도 몰라. 공부도 해야 돼요. 당사자 운동을 하기 위해선, 내가 학습하고 무장을 해야 돼요. 나가서 남들이 주는 먹이를 받는 게 아니라 나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지에 대해서 학습하고 무장하고 그리고 제대로 된 정신장애운동을 한국사회에서 반드시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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