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를 가두었나?"
페이지 정보
본문
“왜 우리를 가두었나?” |
정신장애인·강제입원 피해자들의 실태 증언 |
2013년 11월 08일 (금) 18:16:00 이승현 기자 walktour21@naver.com
여기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질환자로 오해받았던 사람 세 명이 있다. 이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거짓말 같았다. 소설 속에서나 펼쳐질 법한 일들이 그들의 인생 속에서 벌어졌고, 그들은 그 일들 탓에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아무런 정신질환이 없는데도 제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고 자식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이웃의 부추김에 의해 병이 부풀려져 강제입원 되고, 사회로부터 배신당해 정신질환을 얻어 치료받았지만, 사회에서 다시 배척당하고, 정신질환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뒤집어 버린 이들.
이들이 겪어왔던 삶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왔던 세상과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사회가 이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웠고, 법마저도 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을 뿐이다.
네 번의 강제 입원, 뒤틀려 버린 내 인생 - 김진현(가명, 28)
나는 서울 모 종합병원 원장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모자람이 없는 생활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부모님의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집안에서조차 차별받으며 살았다. 사춘기 소년이 흔히 느끼는 그런 차별이 아니다. 부모님의 기대와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면 무자비한 폭행과 학대를 당했고, 내 의견은 철저히 배제당하고 무시당했다.
가죽 허리띠로 온몸이 찢어질 정도로 맞기도 하고, 물건을 내게 집어 던지거나 흉기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폭행과 학대의 이유는 사소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교회 집사에게 말했다고 때리고, 글씨가 작다고, 표정이 좋지 않다고 맞았다.
난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귀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도 자신이 없어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나를 가족들조차 외면하고 무시했기에 난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 가족은 멀쩡한 나를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웠고 안팎으로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바람이 나 부부 사이도 원만하지 못하게 되자 그 여파는 고스란히 폭행과 학대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Y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다. 법조인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법학과에 들어갔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학교를 계속 못 다닐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으니 집에 가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웬일인지 어머니는 내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나는 집으로 가 재수를 준비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나는 갑작스레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 됐다. 부모님은 내가 정신병이 있어 자신들을 때린다며 정신병원에 집어넣었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원주로 다시 돌아가 법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퇴원시켜 주겠다고 협박했다. 병원장과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나를 정신질환자로 몰아세우고 정신병원이라는 교도소를 이용해 나를 조정하려 한 것이다. 결국,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음 해 일어난 두 번째 강제입원 상황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아버지는 정신병원 응급호송단을 동원해 나를 반 기절시켜 목과 손발을 묶은 뒤 병원으로 개처럼 끌고 갔다. 이때도 나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계속되는 협박 때문에 D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또다시 내가 정신질환자라고 교수 등 학교 측에 알렸다. 도대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화가 나 견딜 수 없어 나를 정신질환자로 몰아세운 어머니에게 대들었고 싸움은 크게 번지고 말았다. 그 싸움을 빌미로 나는 세 번째 강제입원을 당했다. 입원 사유에는 ‘여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적혔다. 그러나 퇴원하기 위해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모두 인정을 해야만 했다.
나를 비방하고 정신질환자로 몰아세우는 일들이 반복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내가 지금껏 겪었던 일들을 모두 낱낱이 밝혔다. 물론 부모님의 신상정보까지 모두 공개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곧 네 번째 강제입원으로 이어졌다. 내가 쓴 글은 모두 사실임에도 담당 의사는 모두 거짓임을 인정하라고 협박했고, 나는 퇴원하기 위해 또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는 얼마간 집을 비운 사이 내가 아끼던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강아지의 행방에 대해 부모님께 캐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갑자기 화를 내며 “너 같은 건 죽어버려야 한다”며 칼을 내 목에 들이댔고 아버지는 뒤에서 팔짱만 낀 채 이를 지켜보고기만 했다. 다섯 번째 강제입원을 당할 뻔했지만 동생이 말려 소동은 거기서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총 일곱 번의 강제입원 시도, 네 번의 입원. 그 과정에 겪었던 고통과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계속되는 정신과 약물치료로 머리가 둔해지고 행동조차 느려졌다.
나는 아무런 정신질환이 없다. 그러나 허술한 법체계 때문에 반복적으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되면서 내 삶은 엉망이 돼 버렸다. 내 잃어버린 삶은 어디서 돌려받아야 하나?
사회가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세웠다 - 지은성(가명, 35)
나는 의사의 진단조차 없이 부모님의 전화 한 통만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 있던 어느 날, 외출하기 위해 목욕을 하고 속옷만 입은 채 욕실 문을 나섰을 때다. 덩치 큰 남성 3명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병원에서 일하는 파란색 보호사 복장을 하고 있었고, 무작정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다. 왜 이곳에 왔는지, 무엇 때문에 날 잡아가려 하는지,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잡혀가지 않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발버둥이었다. 덩치 큰 장정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난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곧바로 난 팔과 다리가 묶인 채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원 승합차 안으로 던져졌다. 그렇게 병원으로 가는 동안에도 난 차 바닥에 짓눌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난 곧바로 독방에 갇혔다. 의사의 진단 같은 것은 없었다. 병원 직원들은 내 옷을 강제로 벗기고 기저귀를 채웠다. 그리고 사지를 모두 침대에 묶어 반항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제야 간호사가 들어와 내 상태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처한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을 뿐더러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너무 억울했다.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정신질환은 불면증뿐이었기 때문이다.
입원하기 몇 년 전 나는 보통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일어난 불미스런 일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살길이 막막했다. 이 사회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큰 상실감 때문에 불면증까지 생겼고 치료도 받았다. 이런 사회에 대한 울분은 술과 폭력으로 나타났다.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고, 주사도 늘어 부모님에게 소리를 지르고 가재도구들을 부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이웃들은 나를 ‘정신병자’라고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소문과 이웃들의 부추김 탓에 부모님이 나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킨 것이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흔히 생각하는 병원과 달랐다. 침대조차 없었다. 좁은 온돌방에 환자들을 일고여덟 명씩, 많게는 열한 명씩 벌집처럼 쑤셔 넣어 마치 수용시설 같았다. 그렇게 입원한 환자들이 200여 명에 달했다. 방은 이십여 개 남짓뿐이었는데 말이다.
약 처방도 의사 마음대로였다. 약이 맞지 않아 부작용이 일어나는데도 의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를 입원시킨 부모님도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병원 생활 동안 아무런 말썽도, 잡음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래야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병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지자체에 퇴원 심사 청구서를 신청했지만, 병원 측의 방해로 번번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겨우 심사를 받아도 ‘계속 입원’이란 결과만 나왔다. 거기서 그만둘 수 없어 도지사에게 퇴원 심사 청구서를 보냈더니 병원 대표가 직접 찾아와 청구서를 철회라면 퇴원시켜 주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난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강제입원 후 퇴원하기까지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퇴원 후 진료기록을 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초진기록에는 술에 취해 한 행동이 충동성과 행동조절 장애 등으로 크게 부풀려 기록돼 있었고, 전혀 없었던 과거 기록까지 날조돼 있었다. 게다가 입원통지서 서명란에는 다른 사람의 글씨체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입원동의서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의사의 동의만 있을 뿐이었다. 특히 병원 측에서 작성한 계속입원치료심사청구서에는 내가 굉장한 중증정신질환을 가진 것으로 진단돼 있었다.
결국, 내 증상이나 의견에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내 인생이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정신병원에 인권은 없었다 - 이성원(가명·35)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