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권력
강제입원 조건을 까다롭게 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에 정신과 의사들이 미친 듯이 반대한 이유는 ‘치료’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을 내세웠다. 정신질환자 탈원화 정책에 반대하면서 정신과 의사들은 미국의 탈원화 정책 후 살인, 폭력, 절도 범죄가 증가한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3) 물론, LA의 경우 주립정신병원의 탈원화 이후 노숙인 정신질환 문제가 증가하여 95% 정도가 알코올이나 약물문제를 갖고 있으며, 그중 약 20%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탈원화’의 문제가 아니라 ‘마약’ 문제이다. 1980년대 이후 값싼 마약인 ‘crack’이 퍼지면서 마약에 중독된 정신질환 노숙인과 수감자가 증가한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런 변수는 무시하고 정신질환 자체가 범죄 소인인 것처럼 얘기한다. 또한 그들은 탈원한 정신질환자가 마약(crack)에 중독되지 않게, 경제난에 시달려 또 다른 범죄로 이끌리지 않게 지원하는 정책이 부족했던 요인도 간단히 무시하면서, 마치 자신들의 정신병원이 예비 범죄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있는 양 당당하게 떠벌린다. 저들이 나가면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고. ‘저들은 나가면 갈 데가 없다.’ ‘저들이 나가면 사회가 위험해진다.’고 당당히 말할 때 정신과 의사는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복지시설 운영자? 아니면, 교도소장?
정신과 의사가 정신장애인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막대하다. 그 권력은 다른 과 의사처럼 장애인 등급 판정에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다. 정신장애로 등급 판정을 받아봤자 사회적 낙인만 받을 뿐 복지혜택은 받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의 권력은 정신장애인의 정신병원 수용에 작용한다. 가족이나 경찰의 ‘기소’에 대해 강제 입원을 ‘판결’하는 자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입원 후 정신병원 안에서 환자를 결박하거나 격리실에 감금하거나 강제노역을 시킬 필요를 결정하는 것도 의사이다. 무엇보다 퇴원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도 정신과 의사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해 정신과 의사는 ‘판사’인 동시에 ‘교도소장’이며 최종 ‘사면권자’이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이 절대권력(sovereignity)은 무엇에 근거한 걸까? 당연히, 정신질환에 대한 의사의 지식, 정신의학 지식에 근거한 것이다. 가족이나 경찰이 데려온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있는지, 그것이 환자 본인과 타인에게 해를 끼칠 만큼 위험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의학 지식을 가진 의사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정신의학은 정말 정신질환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을까?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의 위험성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을까? 정신의학은 수용을 통해 질환을 치료할 능력이 있는 걸까? 정신질환자의 수용에 대해 정신의학자가 행사하는 권력과 정신의학 지식은 얼마만큼 조응할까?
푸코는 “하나의 담론 혹은 한 개인이 자신의 내적 자질만으로는 도저히 가지지 못할 권력의 효과를 자신의 지위에 의해 가지고 있을 때”4) 그것을 ‘그로테스크’하다고 부르겠다면서, 정신의학의 권력이 그렇다고 한다. 학창시절 푸코는 광기에 근접해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신경질적이며 때때로 공격적이었다. 고등사범 시절 그는 교실 바닥에 누워 면도칼로 가슴을 그으려는 소동을 벌렸으며, 칼을 들고 친구를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고등사범 시절 푸코의 멘토였던 루이 알튀세는 자서전에서 푸코가 넋 나간 표정으로 복도를 방황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썼다.
푸코는 정신분석을 받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심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정신병리학 자격증을 취득, 대학에서 심리학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광기도 잘 알고 있었고, 정신의학도 잘 알고 있었다. 푸코는 정신의학이 광기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정신의학 지식 간의 불일치와 간극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푸코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 불일치와 간격의 역사를 썼다. 그것이 『광기의 역사』이고, 『정신의학의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