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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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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손 사무총장 박환갑샘 인터뷰 “문제는 강제입원이 아니라 가고 싶은 병원 환경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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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9,510회   작성일Date 19-02-21 11:39

    본문

    파도손 사무총장 박환갑샘 인터뷰

    http://www.mind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7


    [박종언의 만남-길을 묻다]박환갑,

    “문제는 강제입원이 아니라 가고 싶은 병원 환경을 만드는 것”



     
    은행원 출신의 정신장애인운동 활동가 박환갑 씨 인터뷰
    나는 정신장애인의 동료, 그렇게 받아줬으면 해
    블로그로 상처 나누다 정신장애인 운동에 뛰어들어
    강제입원 위헌 소송할 때 타그룹 조소했지만 결국 이뤄내
    치료 환경 개선하고 법적·제도적 개선 이뤄야
    인권단체 파도손이 추구하는 건 인간 존엄의 실현
    사법입원 반대…응급입원 제도 손봐야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정신병원으로 만들어야
    가족과 연대하는 네트워크 조직 완성이 소망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재발 두려워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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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장애인 인권단체인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의 집회나 토론회가 있는 곳에서 기자는 자주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비정신장애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에서 누구보다 열렬한 운동가였다. 기자는 자주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는 그토록 열렬하게 정신장애인 운동을 하는 것일까.


    박환갑(56) 씨. 부산에서 출생해 서울에서 대학을 보냈다. 처음에는 공대 81학번으로 들어갔지만 적성이 맞지 않다는 걸 알고 2학년 1학기를 끝으로 제적을 당했다. 그는 그 미련을 그렇게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학력고사를 보고 이번에는 상대(商大)를 들어갔다. 졸업을 했고 A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그곳이 평생직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IMF가 찾아왔고 회사는 부도가 났다. 구조조정이 아니라 모두 그 직장을 떠나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깊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금융 쪽은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눈높이를 낮춰 염색공장 사무직 총무과에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5년을 보낸다.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와 상처에 대해 누군가 나누고 싶었다. 그때, 인터넷 블로그에서 정신적 상처를 이야기하는 여성을 만났다.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서 조금씩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때까지 그는 정신장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정신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냥 그녀와 블로그 상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의 오프라인에서의 만남.

    그는 긴 머리를 묶어 비녀를 꽂은 그녀를 보고 당시 그녀가 자살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잘 챙겨 먹지도 않아 야윈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는 현재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로 있는 이정하(46) 씨였다. 그는 이정하 씨를 통해 정신장애인 운동의 장으로 걸어들어간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됐고 그는 인간의 존엄이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서 훼손되는 것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해 보지 않았으나 그는 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의 자리에서 억압받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운동에 몰입하고 있었다. 봉천역 근처 카페에 가니 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현재 파도손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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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환갑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사무총장 ©마인드포스트.  

     

    -살아온 과정 좀 듣고 싶습니다.

    “고향은 부산이고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이 은행이었어요. 서울의 본점에서 일할 때 그때 IMF가 왔고 은행 일을 그만 두게 됐죠. 제가 그만 둔 게 아니고 은행 자체가 없어진 거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은행에 들어오는 사람은 평생직장으로 생각했어요. 은행에 들어와서 다른 데 이직 준비하고 그런 게 거의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없어지고나니 그런 데 대한 분노가 있었어요. 다른 걸 못 받아들인 거죠.

    금융 쪽으로는 쳐다보기도 싫어요.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은행에 관련됐던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는 거야. 여길 벗어나야지, 내가 다시 새 출발을 해야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금융하고는 완전히 관련 없는 데서 일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염색공장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총무과장으로 일을 했죠. 만 5년 근무했어요. 그만둔 게 2008년이니까. 그러다가 2008년 가을에 이정하 씨를 만났어요.


    -어떤 인연으로 만났습니까?

    “이정하 씨가 블로그에 글도 많이 쓰고 그랬는데 블로그를 보고는 진짜 고통스럽게 살고 어렸을 때부터 불행했고 그런 것들을 글로 남긴 거예요. 나는 정신장애를 전혀 몰랐죠. 블로그의 글을 보고 댓글도 남기고 하다가 만났죠. 그때 저는 사실 놀랐어요. 젊은데 엄청 긴 머리에 옛날 할머니처럼 쪽진 비녀를 해 가지고 있는 모습에서. 진짜 70년대에서 온 사람. 그냥 힘들었겠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예전에 정신분열증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고. 그러니까 블로그를 봐도 이해를 못 한 거지. 많이 아파서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힘들어 가지고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오고 그랬구나 했지 조현병이 어떤 질환이고 정신병 때문에 힘들고 하는 건 전혀 몰랐죠.”


    -만남 이후로 어땠습니까?

    “처음 만나보고는 진짜 너무 힘들어 보였는데 순간 느낌은 이 사람은 누가 옆에서 돌보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나 봤단 말입니다. 그래서 돌봐주게 된 거죠. 혼자 방치하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잘 챙겨 먹는 것 같지도 않고. 그때까지도 나는 정신장애에 대해 몰라서 그녀가 질환으로 그런 거라 생각은 못했죠. 이정하 씨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제칠일안식일교회에 다녔어요. 그후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교회 생활을 접었어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셨습니까?

    “저요? 아뇨. 내가 학생운동을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없죠.”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집회 시위에 가보면 제 느낌으로 대학시절에 골수 학생운동권이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아니죠(웃음). 원래는 공대를 들어갔어요. 내가 81학번이에요. 거기서 2학년 1학기 마치고 제적을 당했어요.”


    -공부를 안 해서?

    “그냥 안 맞았어요. 막상 공대 들어가 보니까 공대는 이과인데 내게 안 맞는 거야. 적응도 안 되고. 시대도 혼란스러운 때였으니까. 수업도 제대로 안 되고 제일 큰 거는 내가 거기에 안 맞았다는 거였어요. 시험도 거부하고.”


    -왜 거부했습니까?

    “재미가 없어서요(웃음).”


    -그래서 제적당하고 다른 학교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다시 시험을 쳤죠. 문과 쪽으로 가려고. 시험을 보고 상대로 들어갔죠.”


    -학생운동은 안 하셨단 말이죠.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학생운동 했다고 내세울만한 그 정도까지는. 상대 들어갔다가 군대 갔고 제대하고 1학년 복학해서 대학 생활을 했으니까 주류 학생운동에 빠져서 올인하고 그런 건 아니었죠.”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이정하 씨 때문에 그런 거죠. 처음에는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참여했어요. 이후 자조모임이 만들어졌고요. 당시 오프라인에서도 많이 만났고요. 그때 나는 당사자들에게서 크게 다른 걸 못 느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어울리게 되고 이정하 씨를 통해서 당사자들 모임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조금씩 적극적으로 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한 게 파도손문화예술 협동조합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같이 하게 됐죠. 당사자들 중에 글재주 있고 수공예 잘 하는 사람도 있고 하니 문화예술 활동을 해보자 하면서 장애인운동에 뛰어들게 됐죠.”


    -그게 몇 년도입니까?

    “그때가 2013년.”


    -그럼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정도 같이 어울리고?

    “거의 자조모임 이런 위주로 됐죠.”


    -자조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정도?

    “꼭 정해 놓고가 아니라 수시로 어디서 채팅방 이런 데서 어디서 보자든지.”


    -그때 몇 명 정도 모였습니까?

    “많이 올 때는 한 20명 올 때도 있고. 근데 일반 자조모임과는 형태가 달랐죠.”


    -어떤 점이 달랐죠?

    “센터 같은 곳은 사무실이라는 장소가 있었잖아요. 저희는 음식점 이런 데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식사하고 술 한 잔 하고.”


    -그럼 정신장애인들에 대해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겠네요?

    “그렇죠. 자조모임 할 때는 많이 몰랐죠. 강제입원 되거나 병원 입·퇴원했던 당사자들 많이 있지만은 크게 거부감은 못 느꼈어요.”


    -지금 파도손이 협동조합입니까?

    “아니죠. 준비를 하다가 좌초됐죠. 그때 2013년이었는데 관악한울에 한번 갔었죠.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가 협동조합 만들려고 할 때니까. 거기서 자조모임도 보고 실제 시설을 이용하는 당사자들을 그때 처음 봤어요.”


    -본인의 정체성을 정신장애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정신장애인 동료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내가 정신장애인이라고 하면 정신장애 코스프레 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당사자 쪽에 있다고 정신장애 당사자라고 얘기하는 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내가 정신장애인이 아니야 라는 개념이 아니라 경험을 공유해야 되고 정신병원 강제입원 과정의 문제들을 공유해야 되는 데 저는 좀. 나는 옆에 같이 있는 동료. 그렇게 받아들여 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파도손이 정식으로 출범한 게 언제였습니까?

    “우리가 개정법 반대할 때 정신보건법 판결은 2016년 9월에 나오고 개정법은 2016년 5월 29일 통과됐고. 개정법 관련해서 반대 투쟁하고 이럴 때 그때 협동조합 꼬리를 떼고 정신장애와인권파도손으로 바꿨죠. 2016년 개정법 반대 투쟁할 때.”


    -몇 명 정도 활동하고 있습니까?

    “파도손에는 사회생활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직장생활도 하고. 자조모임으로부터 출발했는데 10년이 넘었죠. 지금 한 열 명 정도. 근데 우리가 사무실에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처럼 상근 활동하는 건 아니예요.”


    -비정신장애인도 같이 하시는 겁니까?

    “없어요. 다 당사자예요.”


    -파도손 만들어 오면서 오류가 당연히 있었겠죠.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였습니까?

    “주변 시선은 개의치 않았어요. 전문가 그룹이랑 같이 활동을 많이 해왔잖아요. 전문가들이 실제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제대로 모르면서 왜 운동을 할까 의문이 들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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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포스트.  

    -뭐가 있었습니까?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거죠. 그리고 당사자들이 강제입원 24조 폐지하자고 하는데 의사들, 변호사, 전문가들이 전부 코웃음 쳤어요. 그게 그렇게 되냐는 식으로. 근데 그게 위헌소송 나니까 그때서야 아주 당연하게 그래야 된다는 듯이 다들 강제입원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강제입원이 필요한데 그걸 없앨 수 있느냐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가 위헌판결이 나고 나니까 전부 이제는 강제입원은 잘못된 거고 그럴 때.”


    -지식인들이 가진 기회주의를 느낀 건가요?

    “개정법 반대할 때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쪽은 찬성했고 카미(한국정신장애인연대)하고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협회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죠. 그때 당사자들이 앞장섰는데 아주 모욕감을 느꼈고 경멸받았죠.”


    -파도손이요? 전체 정신장애인 운동 단체들이?

    “그때 당시 개정법이 잘 안 알려졌거든요. 개정법이 지금만큼이라도 내용이 당시에 충분하게 알려지고 좀 이랬다면 몰라요. 의사들이 강력 반대해서 통과 안 됐을 수도 있었겠죠. 너무 얼렁뚱땅 진행이 돼 버렸잖아요. 그 법에 대해서 제대로 취지를 알고 공유할 시간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이 돼 버렸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 당시에 주요 이슈가 경찰에 의한 강제입원이 되면서 많이 반대했죠.”


    -가장 힘들었던 게 사회적 편견이었습니까?

    “그렇죠. 몇 년은 사무실도 없이 활동을 했으니까. 근데 물질적으로 어렵고 지원이 안 되고 이런 거 보다는 같이 활동했던 전문가 그룹들,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자기 직군의 입장을 더 많이 내세우고. 이 사람이 자신의 명예 때문에 하는 건지, 당사자를 위해서 하는 건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힘들었죠.”


    -파도손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게 뭡니까?

    “지금은 강제입원에 관한 부분은 많이 나아진 거 같아요. 옛날처럼 불법적인 강제입원이 아니고 정신장애 당사자들도 예전과 같이 그렇게 쉽게 입원되고 하는 구조는 아니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치료하는 환경을 개선해야 된다.”


    -파도손이 추구하는 가치가 치료환경을 바꾸자?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법적 제도적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없어져야 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조항 때문에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거죠. 그게 가장 핵심사항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개인한테 떠넘기는 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책임을 져야 되는데 그게 맞다고 봅니다. 가족이 입원시키면 병원에 퇴원시켜 달라고 하면 ‘보호자가 사인해서 그렇다, 보호자가 안 해 줘서 못 한다’ 이렇게 의사들도 얘기해 버리고 말거든요. 자기들도 귀찮으니까. 그러니까 계속 가족관계 해체시키고 가족하고 당사자하고 갈등구조에 빠트려놓은 거예요.”


    -그게 파도손이 추구하는 건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을 위한 건가요?

    “그렇죠.”


    -정신보건법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 시위가 잇따를 때 파도손은 정신보건법 개정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지금 입장은 어떻습니까?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정신보건법은 당사자가 잘 치료되고 정신장애인 권익을 지켜주고 인권을 보장해 주고 복지에 관한 것을 해주고 그런 건 없잖아요. 아무 것도 없잖아요. 단지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입원시킬까를 고민하는 거죠. 어떻게 입원하는 게 합법적이냐에 치중이 돼 있어요. 개정법에는 인권 교육해야 된다 등 좋은 조항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당사자가 자기와 관련된 정책에 직접 참여해야 하고 권익 옹호해야 되고 인권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 되고 등 많이 있어요. 근데 그런 게 하나도 작동 안 하잖아요.”


    -정신건강복지법 폐지 이후에 어떤 대안이 있습니까?

    “기본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당사자를 보호해주고 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법적으로 보장을 해 줘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권침해를 줄이고 남들보다 좋은 건 둘째 치고 최소한 인권침해가 되지 않게. 다른 장애인만큼이라도 최소한 보장되는 뭐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법을 폐지를 하는데 또 하나의 법은 필요하다?

    “그렇죠. 지금의 법 체계 자체가 사실은 사회의 공적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에서 출발했던 법이잖아요. 어디 뜯어고쳐서 될 문제가 아니고 타 장애인 분야만큼만이라도 기본적인 인권, 복지가 보장되고 인권침해 당하지 않는 치료환경을 만들 수 있는 법이 있어야죠.”


    -파도손은 당사자주의에 입각해서 활동해 왔다고 어디선가 말했습니다. 당사자주의운동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사자주의운동은 당사자가 자기와 관련되는 정책에 결정권을 갖는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당사자 스스로 자기 결정권이 보장돼야 돼요. 지금 많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결정권을 제압당하고 있잖아요.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고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게 당사자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한 토론회에서 ‘가족들에게 맡겨진 입원의 부담감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당사자 가족이 갈등 관계의 회복에 어려움을 만드는 건 법과 제도’라고 했습니다. 사법입원 제도를 옹호하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아니죠.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때문에 그런 거죠. 지금은 의사가 최종결정권이 있는 거예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지만 입원 의뢰만 할 수 있는 거지 실제 결정은 의사가 하는 거거든요. 근데 당사자들이 퇴원 요구를 했을 때 의사들도 ‘보호자가 사인해서 입원한 거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잘못된 거잖아요. 개정법에서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정신보건법에서는 가족이 퇴원을 거절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사법입원제도가 인신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사법입원이 필요하다. 왜 필요하냐면 판사가 인신을 구속하도록 만들어야 환자가 가족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고 사법입원 제도를 옹호하는 담론도 있습니다.

    “일정 부분 맞아요. 가족에 대해 증오심을 안 가진다. 사법입원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당사자가 찍히는 낙인은 어떡해요. 법적으로 당신은 병원 폐쇄병동에 강제입원을 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법원이 판결을 내린 거예요. 어디서 구제를 받죠?


    -인신보호법도 있고.

    “아니, 법원에서 판결을 내렸는데 인신보호법이 뭐가 필요 있어요. 그러고 나면 누가 구제를 해 주는 거예요?”


    -글쎄요.

    “일단 법원에서 전과자로 낙인이 찍혔잖아요. 그야말로 범죄 저질러서 법원에서 판결 받아갖고 전과자 낙인찍는 거 하고 똑같은 거예요. 아무 데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 법원에서 결정났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헌법에서 보장된 삼심제도를 할 거예요? 그렇게도 안 할 거잖아. 그걸 누가 구제해. 그러면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데 판사는 정신장애인에 대해서 알아요?”


    -잘 모르죠.

    “그럼 어떻게 판결을 내리겠어요?”


    -전문가인 의사 말을 따르겠죠?

    “그렇죠. 그럼 뭐가 달라져요. 의사의 책임만 사라지는 거지. 의사 소견서에 입원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법원까지 갔을 거 아니에요. 정식 절차로 의사가 강제입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본인은 안 갈려고 하니까 법원에 간 거잖아요. 그럼 의사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소견서를 냈는데 판사가 입원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절차만 생기는 거죠.”


    -강제사법입원제도 반대하십니까?

    “반대합니다.”


    -대안이 뭐가 있습니까?


    “응급입원을 강화해야 돼요. 응급입원 체계가 안 돼 있어요. 우리가 무조건 강제입원 반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응급입원 필요한 당사자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입원하자라는 거예요. 우리가 늘 강제입원이 나쁘다, 폐지해야 된다 하니까 병원에 가지 말라는 소리 같은데 그건 아니거든요. 실제 급성기나 응급상황이 됐을 때 당사자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응급체계 안 갖춰져 있잖아요. 강제로 끌고 가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건 응급입원이 아니잖아요.

    교통사고 났을 때, 응급 상황 됐을 때 입원해도 될까요 물어보고 하나요? 응급상황은 의료적으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잖아요.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사람한테 수혈해도 될까요, 이렇게 안 하잖아요.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깨어나서 왜 응급상황에서 내게 안 물어 보고 했어 이렇게 하지 않잖아요. 사법입원은 의료계에서 원하는 거였어요. 그렇지만 의료계에서 당사자들이든 가족들이든 쉽게 찬성하지 않고 반대할 거 같으니까 못하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었던 거죠.”


    -강제입원 논쟁이 뜨거울 때 문제는 강제입원이 아니라 치료적이고 인권적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같은 생각입니까?


    “이제 우리가 강제입원 논쟁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강제입원이 법적으로 엄격해졌죠. 가족들도 예전 같이 재산이나 가족 간의 문제 때문에 강제입원 시키는 것은 더 어려워졌어요. 의사 두 명이 교차 진단하고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한 번 더 하잖아요. 그러니까 2차 진단을 하는 의사들은 더욱 신경을 쓸 수 있게 된 거죠. 저는 이차 진단까지 했는데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퇴원 판정이 나면 자기들이 의사가 좀 당황스럽겠죠. 사인할 때 책임감을 느낀다고요. 이중삼중으로 걸러지니까 강제입원에 대한 거는 많이 나아졌어요. 근데 실제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이 많이 있잖아요. 사회에 방치된 사람들이 많거든요.

    시설이나 센터 이용하지 않거나 집안에서 치료 거부하면서 중증화, 만성화될 때까지 방치되고 집에서도 어쩔 수 없고 강제입원도 못 시키고. 그렇다고 큰 사고를 쳤다든지 했을 때는 행정입원이 되겠지만 그렇게 방치되고 있는 환자들이 강제입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상태가 안 좋고 해도 안 가려고 해요. 그 병원 환경이 안 좋으니까.

    우리가 당사자를 많이 만나러 다녀요. 억지로 입원하자 소리를 못 해요. 입원을 권할 만한 병원이 없다 이겁니다. 전혀 없는 건 아니죠. 대학병원처럼 좋은 데도 있죠. 그렇지만 비싼 대학병원에 많은 당사자들이 갈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수급자는 대학병원에 가면은 2주 이상 입원 안 시켜 줘요. 그러니까 의사들은 강제입원이 어려워져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해서 전조가 된다 이래요.


    그렇다면 갈 수 있는 병원을 만들라 이거에요. 가고 싶은 병원을.”


    -강제입원 비율이 37%로 떨어졌습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하나요. 하나의 눈속임은 아닐까요?


    “제가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통계 자체는 동의입원도 자의입원으로 돼 있잖아요. 일부 통계적으로는 눈속임이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강제입원이 진짜 많이 줄었다. 그리고 자의입원이 많이 늘고 그거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긍정적으로 봅니다.”


    -정신병원은 모두 폐지돼야 됩니까?

    “저는 다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폐쇄병동은 다 없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병상이 있는 정신병원은 공적영역에 들어가야 된다고 봅니다. 국립이든 시립이든 공공기관화 돼야 한다, 병상이 있는 데는.”


    -전국 국공립병원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해체해야 한다?

    “아니 사립병원들 많이 있잖아요. 특히 대형병원 이런 데는 공공의료기관으로 들어가야 된다. 그렇게 전환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 공공의료기관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국가에서 책임지고 관리를 해야죠. 그리고 정신병원에 외래 다니는 사람이 엄청나잖아요. 그러니까 외래진료요. 일반인들 중에 정신건강 때문에 외래진료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병상 없는 데는 일반인 상대로 외래진료를 하고, 아니면 지역에 거주하는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당사자들도 있고요. 우리 정신장애인들도 외래진료를 다니는데 입원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병상을 갖춘 곳은 공적인 데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병상 수가 8만 병상입니다. 그럼 얼마 정도의 병상이 이상적이라 생각하십니까?

    “병상 수로는 모르겠어요. 병상 수 갖고 얼마만큼이 적절하다라고 이야기하기 곤란한데.”


    -정신병원 외에 대안이 있습니까?

    “정신병원이 완전히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환경이 바뀌고 공적인 부분이 들어가야 된다는 점이 중요하죠.”


    -커뮤니티케어가 준비 중입니다.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치유를 모색하는 게 커뮤니티케어의 이념적 부분인데요. 동의하십니까?

    “전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서 하는 정책이 사실은 이름만 바꿔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정권 바뀌고 무슨 큰 일이 있거나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이름만 바꿔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봐요. 취지대로 한다면 커뮤니티케어 좋죠. 외국에서 잘 되고 있는 것처럼 지역에서 돌봐 주고 한다면 좋죠. 그렇지만 실제 커뮤니티케어는 정신장애인에게 얼마나 실효성 있게 할까, 그건 의문스럽습니다.”


    -어떤 부분이 의문스럽습니까?

    “실제 지역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제일 어려운 게 주거와 일자리잖아요. 우리 사회 전체가 힘들어요. 지금도 많이 그렇죠. 주거 문제로 많이 대기하고 있고. 그럼 이때까지 정신장애인만 특별하게 생각해서 해준 게 있나. 장애인 대상으로 하더라도 결국은 정신장애인만 배제됐잖아요. 구체적으로 장애인복지법 15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잖아요. 근데 장애인복지법 15조를 폐지하고 일반 장애인들 있는데 들어간다고 했을 때 실질적으로 우리 정신장애인이 혜택 볼 수 있는 게 있느냐 하면 그게 없단 말이에요.” (장애인복지법 15조는 이 법의 적용에서 정신장애인을 배제시키고 있다-편집자 주)


    -커뮤니티케어가 필요하지만 정신장애인들에게 돌아오는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취지대로 잘 되면 좋은 거죠. 의료계에서는 선진국처럼 지역에서 전문의하고 동료들이 가정방문해 가지고 그날 약 복용할 거 갖다 준다든지 혹은 의사들이 지역에서 섹터를 나눠서 방문서비스 도입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의료계 쪽에서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기가 어려워서 법 때문에 입원하기 힘드니까 외래치료명령제를 활성화해야 된다고 해요. 왜 그러면 의사는 직접 가서 방문 서비스해야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거죠. 안 갈려고 그러는 거죠. 안 오려고 하면 내가 가면 돼. 그 생각은 안 하잖아요. 법적으로 강제입원 억지로 시키려고만 하죠. 그 시각 자체가 우스운 거예요. 관리하고 강제하는 것만 생각하는 거죠.”

     

    original.jpg

    ©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 운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뭡니까.

    “당사자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점이 많잖아요. 일반 지체장애 쪽하고도 다른 측면들이 많아요. 저희가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 데 참여도 어려워하고 시선도 의식하는 사람들도 많고 가족들이 특히. 지금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거 같아요. 발달장애 같은 데는 가족들이 많이 나서서 하잖아요. 근데 정신장애는 가족도 잘 안 돼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가 있지만 사단법인 만들어놓고도 지금 완전히 내분으로 엉망이고 역할을 못하잖아요.”


    -개인적으로 향후에 하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

    “저는 좀 저보다 좀 더 유능하고 뜻이 있고 이런 비당사자가 결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해체된 가족관계들을 복원시켜야 된다. 가족 단체들과 많은 소통을 하고 있어요. 당사자하고 가족들이 근본적으로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워낙 정신장애인 쪽이 열악하고 목소리가 작고 당사자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연대하고 조직화하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네트워크 조직을 갖춰졌으면 합니다.”


    -결혼도 포함되십니까?

    “결혼은 사적인 부분이라서(웃음)”


    -정신장애인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돼야 된다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좀 더 주체적이 삶을 만들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을 내가 개척할 수 있다는 그런 의지를 가져야 되지 않나. 좀 더 도전해보자. 어떻게 되든 내 인생. 다들 시설과 병원에서 관리돼 왔죠. 근데 이제는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해야 해요. 재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들을 한 번 극복하면, 그런 시기를 잘 지나면 한 단계 또 올라가는 거거든요. 늘 전혀 변화 없는 똑같은 식으로만 가면 지금 살아가는 게 내 인생일까. 어느 게 나에게 더 소중한 인생일까. 좀 도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는 녹음기를 껐다. 그러자 박 사무총장이 “분노가 내 운동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기자는 수첩에 그 말을 천천히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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