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존중받고 이해받는 당사자 중심의 치료 환경 필요”- 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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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0.02 22:50
당사자에게 치료의 기억은 학대의 기억
미국에서는 투약을 거부할 권리 있어
치유과정에서 실패할 권리 보장돼야
강제입원은 모멸감과 자기결정권 배제되는 경험
잦은 입퇴원은 사회적 관계망 모두 훼손
좋은 치료환경은 밀실과 광장이 보장된 곳
과거 ‘완치’ 개념에서 ‘관리’와 ‘케어’로 발전해 와
정신병원을 집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가고 싶은 병원 만들면 강제입원 필요없어
일을 한다는 건 삶을 산다는 것 의미
시설 입주 3년만 허락하는 건 정부 성과주의의 부작용
한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이 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정신장애인 단체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첫 번째 행사다.
발표에 나선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당사자의 치료의 기억은 학대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날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입원을 당하게 되고 시설과 가족,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낸 카르텔에서 당사자들은 올가미처럼 얽매여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c)마인드포스트
그에 따르면 강제입원의 공포는 치료거부 행동으로 나타난다. 응급실에서 시작된 폭력은 폐쇄병동으로 이어진다. 그는 “응급 케어를 한 후 하루이틀의 수면 후에 개방적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강제입원은 최후에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신질환은 가난한 계층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치료 환경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곳이 바로 정신병원이다. 극단적 첨예화가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치료환경 자체를 평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가장 잔인한 고문으로 ‘강제 투약’을 들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죄수들에게 당신의 사상, 범죄 경력을 뜯어고치기 위해 약을 투약하나”라고 물으며 “정신장애인은 코끼리주사에서부터 시작해 치명적 정신과 약물과 마주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강제적 투약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은 합병증을 얻게 된다. 비만, 고지혈증, 칼슘이 빠져나가 치아가 다 빠져버리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의료 권력은 그런 합병증에 대해 침묵한다.
미국의 경우 정신과 의사들이 약물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해주지 않으면 법원으로 갈 수 있다. 투약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이 대표는 정신장애 치유 과정에서 재발할 권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약 먹어도 재발한다. 그런데 재발을 죄악시한다. (치유에) 실패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당사자들이 강제입원 당하는 병원에 안 가려는 것은 싫기 때문”이라며 “병원에 가고 싶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강제입원이 필요 없다. 존엄한 치료 환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유롭고 존중 받고 이해 받는 당사자 중심의 치료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은일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당사자 활동가는 20살에 발병해 7번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응급이송단이 불법적으로 그를 제압해 강제입원 당한 적도 있다.
그는 “그때 당했던 모멸감과 나 자신의 의견, 즉 자기결정권이 배제되는 경험이었다”며 “그 경험이 나의 낮은 자존감과 자기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잘 표현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의 통제와 관리에 길들여지는 과정도 전했다.
전화를 하는 것이 외부와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스테이션 앞에서 공중전화만 가능했는데 1일 1회 시간을 지정해서 전화를 해야 했고 보호의무자와 싸우면 전화를 못할 때도 있었다. 통화 때는 보호사들이 통화를 엿들었다.
“처음에는 날뛰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전화를 하고 싶어서, 잠깐의 외출과 외박이 하고 싶어서 쥐죽은듯이 잠잠히 지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그 조그마한 자유가 힘겹게 허락됐다.”
잦은 입·퇴원은 그의 사회적 관계망을 모두 훼손했다. 외로워서 대화를 시도하지만 아무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센터 측은 보호의무자가 동의하지 않아 이용할 수 없다는 통고를 보냈다.
그는 “20살이 넘으면 성인으로서 권리를 갖는데 정신질환자만 만 30세가 넘어야 보호의무자 동의 없이 센터 시설 등에 등록해 재활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자의입원을 하게 되면 스스로 입원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자존감과 자기결정권을 보존할 수 있다”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의무와 책임이 필수적으로 따른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이영문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중국의 사회변혁 운동가이자 작가인 루쉰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빛을 못 보고 죽어가는 것이 행복한 건지, 그래도 빛이 있으면 빛을 보면서 죽어가는 게 나은지는 결국 알 권리와 관계된 것이다. 루쉰은 망치를 들고 빛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벽을 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삶과 치유를 위해 ‘밀실과 광장’을 예시했다.
광장에 있는 이가 밀실로 들어오지 않으면 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 활동가라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광장과 밀실을 오갈 수 있는 것이 있는 바로 인간이 사는 공간이다. 집, 학교, 직장, 정신병원 또한 광장과 밀실이 보장돼야 한다. 좋은 치료환경은 밀실과 광장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그의 설명이다.
1995년 미국 조지아 주립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두 정신장애 여성이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루이스 커티스와 일레인 윌슨이 그들이다. 병원이 자신들이 지역사회로 나가는 걸 막았고 자신들이 격리된 환경에서 감금돼 있는 것이 부당하다는 소송 이유였다.
1999년 미 연방대법원은 정당하지 않은 시설 격리는 미국장애인법 상 차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옴스테드 판결’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이후 미국에서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이사는 “병원을 집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옴스테드 판결의 기본 이념”이라며 “치료환경에 대해 개별 병원을 소송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보건법과 정신건강복지법 제정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치료의 개념도 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완치’ 개념에 매달렸지만 이후 정신질환 자체가 완치보다는 관리와 케어의 문제로 변화해 왔다는 설명이다.
2000년 전만 해도 치료사들이 바라보는 최고의 치유는 ‘일하는’ 정신장애인이 되는 것이었다. 직업재활의 중요성이 그만큼 강조됐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권을 얘기한다.
이어 “어떤 상태이든 치료적인 환경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지지적 보호, 지지체계, 명확한 구조, 참여, 상호치료적 타당성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은 성모다움 시설장은 정신장애인에게 직업은 ‘삶’이라고 강조했다.
“정신장애인들이 직장을 다니면 표정이 달라진다. 시설 안에 있을 때는 재활 대상자이지만 지역사회로 나가면 주민인 거다. 취업시키면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고 더 고용하겠다는 말도 듣는다. 정신장애인들이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일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그러면서 “예전에는 회원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 지금은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며 “취업이 다가 아니라 회복과 인권, 삶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원들에게 무엇 때문에 일을 하고 싶냐고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좋은 물건을 사고 싶어서, 여행을 가고 싶어서, 집도 얻고 싶고 배우자도 만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일을 한다는 답변들이 나왔다.
장 시설장은 “일을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일을 하게 될까. 삶이기 때문”이라며 “누군가에게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일한다”고 주장했다.
일은 목적이 아니라 회복의 한 과정이라는 지적이다. 정신장애인은 학창 시절에 발병을 겪는다. 따라서 공부할 기회, 동료를 사귈 기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과 함께 ‘동료 활동’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는 “(동료 활동은) 정신장애인이 힘들 때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경제적 지원과 함께 당사자 활동가들이 활동할 영역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장애인 취업지원센터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현재 위탁으로 두 군데의 직업재활시설이 생겼지만 아직 취업지원센터는 없는 현실이다.
교육의 기회도 강조됐다. 평생교육과 직업 훈련, 문화 활동 역시 필요하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반 학원에 가면 정신장애인은 따라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신장애인에게 맞는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여러분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여러분들이 움직여야 당사자 자립생활센터에 힘을 실어줄 수 있고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재현 목동하늘샘 공동생활가정 시설장은 정신보건 영역에서의 예산이 절감되는 형식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없었던 공동생활가정 이용 기간이 3년으로 제한된 것이 그렇다.
그는 “3년 만에 퇴소할 수 있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더 많은 서비스를 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걸 막고 있다”고 말했다. 장영은 성모다움 시설장 (c)마인드포스트현재 전환시설은 전국에 7개소가 있다. 복지사 인력은 회원이 7명 이상일 경우 2명이 필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6인으로 줄어들면 복지사가 1명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밤에 일하는 종사자가 없는 셈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 빈 시간대를 메우기 위해 시설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하도록 했다. 복지사들이 인권 침해라고 반대했고 정부는 회원들이 반대하면 설치를 하지 않도록 지침을 바꾼다. 정부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서 절감하려는 한 에피소드다.
전 시설장은 “정부가 예산을 절감하려고 3년 안에 취업하고 독립하게 하는 성과주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지역사회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는 20% 수준이다. 나머지 80%는 집에 고립돼 있거나 방치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서비스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주거에 있어서도 정신장애인들은 정부의 한정된 서비스로 인해 주거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타 장애와 비교해 자가 소유율이 떨어지고 월세에 사는 비율이 높다.
“발달장애는 부모가 미리 주거 안정을 위해 준비를 한다. 유산을 상속하거나 후견인을 찾는다. 정신장애는 20대에 발병해 준비할 기회가 없다. 가족 안에서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고 고용과 주거에 대한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장애인복지시설의 경우 자립생활 가정이 있어서 시설에서 퇴소해도 그곳으로 가 생활할 수 있고 자립할 때 자립생활 지원금도 준다. 하지만 정신재활시설은 이 지원에서 배제돼 있다.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은 정신건강복지법을, 여타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에서 박탈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중간집 형태가 필요하며 자기결정권을 위한 절차보조인 제도 역시 같이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결국 목적은 같다. 지역사회 정착과 자립생활의 강화”라며 “한곳에 모여 살거나 개별독립을 지원하거나 임대료로 다른 다양한 민간 유형들을 모델화해서 정신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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