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국 “도움을 요청하세요. 의사도 정신장애인과 같이 성장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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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교수 인터뷰
정신장애라는 명칭은 애매해…사회적으로 합의해 용어 바꿀 수 있어
중독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과 치료가 함께 작동해야
중독에는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 치료가 동시 개입해야
중독관리센터 100개 이상으로 늘려야
절차보조사업에서 절차를 누가 진행하는지 명확해야
급성기 환자 1~2주 뒤 회복되는 걸 보면 보람 느껴
탈원화를 위해 1년 이상 입원 환자 총조사로 실태 파악 우선
강제입원은 공공의료기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해야
의사 성찰 필요…환자 인권 관련된 국가기관이 공동 책임져야
느리게 가도 괜찮은 사회 꿈꿔
이해국 “도움을 요청하세요. 의사도 정신장애인과 같이 성장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위로 누나만 넷이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늘 바빴고 집에서는 엄마와 누나들에게만 놀았다. 어느 날 이렇게 자라면 나도 여자처럼 되고 말겠구나 하는 ‘위기 의식’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매일 ‘사고’만 치고 다녔다. 그런 그를 누나들은 미워했고 창피해 했다. 그나마 누나들이 공부를 잘 해 그걸 따라 공부하다가 재수하고 가톨릭대 의대에 들어갔다. 공부 빼고는 다 열심히 했다. 학생회에서 운동권으로, 축구부에서 공격수로, 그룹사운드 동아리 ‘딴따라’에서는 싱어로 활동했다. 학교 졸업은 겨우 했다. 유급 안 당한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 청춘의 삶을 거치면서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레지던트 선택을 할 때 뭔가 인문학적이고 인간학적인 어떤 과를 원했다. 정신과 전공은 그렇게 결정됐다. 군대 공중보건의사로 3년 근무한 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과에서 의료활동과 공부를 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중독환자들에게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 관심은 이후 그를 중독포럼의 이사로 만들었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50)를 만난 건 7일 차가운 날씨가 한풀 풀린 오후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타 과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애매모호하고 정체성이 불투명한 과로 분류해 본다고 하더군요.
“(웃음) 소위 다른 과에서도 정신과 애들은 의사들도 ‘좀 이상한 애들이야’ 그랬어요. 왜냐하면 주로 입원환자들은 보호병동에 있고 거기서 우리 일들이 주로 이뤄지니까. 의사들도 정신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편견이 의료인들이라고 결코 낮은 것도 아니고. 정신과 의사들도 환자를 되게 깊숙이 보는 습관이 생기다보니까 다른 과랑 소통이 별로 없고 주로 푹 박혀가지고 환자들하고만 같이 소통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과거에 그랬는데 이제 자살 문제라든지 정신건강 문제가 중증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인권 의식이 신장됐죠. 텔레비전에도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나오고 하면서 정신과에 대한 이미지가 좀 좋아진 셈이죠.”
-정신장애를 사회심리적 장애인으로 명명하자고 요청한 적이 있더군요. 어떤 이론에 근거한 겁니까.
“제가 사회심리적 장애를 요청했다기보다는 그 당시 발표했던 게 정신장애인의 장애라는 말은 디스에이블(disable), 그러니까 뭘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정신장애라는 큰 의미에서의 명칭은 정신 기능의 일부가 일시적으로 떨어져 있는 걸 의미하거든요. 그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정신장애라는 병에 의해 영구적 장애가 생긴 사람들은 별도의 명칭이 필요하다고 봐요. 정신장애라는 명칭이 장애라는 것과 헷갈린다면 차라리 다른 병 이름을 붙이는 게 낫겠다 (싶었죠). 정신장애라는 명칭이 애매하다는 데에는 동의해요.
근데 그거는 정신분열병이 조현병으로 바뀌었듯이 당사자나 치료진, 가족이 모여서 정신장애라는 명칭 자체가 편견을 조장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우리 문화에 맞고 사람들에게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다른 명칭도 새로 정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2013년 공청회에서 ‘마약보다 강한 중독이 게임에 있다. 차라리 중독에서 마약을 빼는 게 낫다’라고 발언했습니다.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 거 같은데요. 지금도 그런 생각입니까.
“당시 중독관리법 법안심사 소위원회 공청회에서 제가 했던 말인데 앞뒤 맥락 제거하고 그 부분만 따 가지고 게임업계에서 유포한 거여서 사실하고 다르고요. 그때 어떤 말이었냐면 이 법이 네 가지 중독을 대상으로 하는데 차라리 게임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논란이 많으니 게임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나머지 세 개를 대상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거든요).
마약은 법적으로 불법이니까 차라리 마약을 빼자. 그리고 게임 중독성이 심하니까 중독 문제가 심각한 것들을 중심으로 이 법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그거를 앞뒤 맥락 다 빼고 게임이 더 중독성이 강하니까 차라리 마약을 빼는 게 낫겠다라는 하지도 않은 말을 딱 잘라서 그렇게 보도를 한 거예요.”
-우리나라 중독 질병이 네 개 유형으로 돼 있습니까.
“정식으로 병으로 등재돼 있는 거는 마약, 알코올, 도박 이 세 가지예요. 게임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내년 5월에 아마 게이밍 디스오더(gaming disorder), 여기서 디스오더는 게임 장애라고 번역을 하지만 게임을 비기능적으로 이용하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내년 5월이 지나면 세계보건기구가 그렇게 정의를 할 걸로 예상이 됩니다. 크게 보면 물질중독, 행위중독으로 나눌 수 있고요. 행위중독에는 마약하고 알코올, 물질중독에는 도박하고 게임, 인터넷 이런 것들이 포함되는 거죠.”
-게임업체에서 반발이 심했겠습니다.
“(웃음) 제가 블랙리스트 1호에요. 지금도 보면 차라리 중독을 빼라는 말이 2013년도 한 말인데 아직도 계속 앞에 타이틀로 뜨거든요.”
-게임중독이 마약보다 더 강력한 중독입니까.
“그건 중독이 강력하다 안 하다라고 볼 수는 없고요. 보다 흔한 중독이죠. 중독성이 있는 것은 연구를 해 봐야 되겠죠. 우리가 병을 얘기할 때 알코올중독, 게임중독 이렇게 부르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이 말에는 알코올이 중독을 유발한다, 게임이 중독을 유발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게임을 한다고 누구나 다 중독이 되지 않아요.
사람 중에도 아무리 중독 물질에 노출돼도 중독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있고 잘 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되는 건데 게임 회사에서는 우리가 자꾸 게임 이퀄(=) 중독 유발, 이렇게 주장을 한다고 자꾸 프레임을 짜는 거죠. 저희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는 않아요.”
-마약과 같은 비합법적 중독 수단을 더 이상 처벌만이 아닌 치료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약을 합법화하자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니고요. 마약 사범, 음주운전 사범들이 사회적으로 큰 폐해를 일으키는데 문제는 근본적으로 왜 계속 먹게 되는지, 이거를 해결해야 재범을 막는 거잖아요. 우리가 법으로 벌을 주는 것은 재범을 못하게 하기 위한 건데 중독자들은 이걸 하면 내가 어떤 벌을 받겠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걸 하면 좋지라고 생각하는 게 강하니까 중독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벌을 줘봤자 재범에는 영향을 못 주는 거예요. 그래서 법이라는 게 사회적 안녕을 목적으로 한다면 벌을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벌 플러스 치료를 해 줘야 된다. 그런 의미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걸 벌에다가 꼭 포함시켜줘야 하죠.”
-치료라는 게 어떤 겁니까.
“정신과나 중독질환에 가장 이상적인 치료는 세 가지 측면이 있어요. 생물, 정신, 사회. 생물학적인 치료는 뇌질환이라고 우리가 개념을 가지고 있고 연구에도 근거를 가지고 있거든요. 결국은 뇌를 치료하기 위해 약물학적 치료, 급성기 위기 개입,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관리가 개입되죠.
심리적 부분은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문제, 스트레스의 문제, 대처기술의 문제 이런 심리적인 상태들을 상담치료나 정신치료적인 접근을 통해 치료해 주는 게 필요한 겁니다. 사회라고 하면 사회의 여러 환경적 요인에서 정신질환이 영향을 받죠. 주거에 대한 문제, 사회복지적 욕구에 대한 부분들, 직업기술에 대한 문제 이런 부분들을 지지하는 것이죠. 이상적으로 보면 결국 생물, 정신, 사회 모두가 다 공히 제공되는 치료가 필요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미국 일부 주에서는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는데요.
“저는 상업적 욕구가 되게 크다고 봐요. 그 지역에서 마약이 하나의 관광상품화가 된 측면도 있고요. 실제 마약이 중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담배랑 거의 유사하거나 담배보다도 덜하다라는 연구 결과도 상당히 나와 있어요. 마리화나는 이미 의학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외국은 더 심각한 마약들이 문제가 돼서 마리화나 정도는 담배랑 뭐가 다르냐(라는 생각이 있겠죠). 그리고 이게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논리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중독관리센터들을 더 늘려야 합니까.
“현재 중독관리센터가 50개 정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 ‘파랑새 플랜’이라고 국가계획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알코올중독 국가종합대책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국가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했는데 그때 목표가 100개였어요. 근데 최근 7~8년 동안 50개밖에 없거든요. 더 늘려야 한다고 봐요.”
-게임중독법은 현재 어떤 입법 단계에 있습니까.
“없어요. 현재 계류된 것도 없습니다. 이전 19대 국회 때 발의됐던 법이 3~4개가 있었는데 폐기됐죠. 일부 의원실에서 재발의를 이야기하고 있기는 한대요. 이번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이나 게임의 산업적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까 의원들도 그거에 대해 눈치를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차보조인 사업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절차보조사업 제도가 동료활동가 사업을 메인(주 역할)으로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절차를 지원하는 것인가. 절차를 지원하려면 지금의 절차는 누가 어떻게 수행하는가. 이런 부분들이 명확하게 검토가 돼야 하는데요. 복지부는 어찌됐건 절차보조인 사업이 헌재의 판결문에 언급이 돼 있고, 절차보조사업에 예산을 만들어 놨으니 어떤 형태로든 추진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은 이해를 하겠습니다.
일부 법대 교수들이나 당사자 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권리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하나의 지렛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봤을 때 당사자들이 참여해서 한다면 어떤 게 가장 효율적인가. 그럼 정말로 치료가 더 잘 되게 하고 회복을 도울 수 있는 것들이 현재 수준에서 가장 적절하게 할 수 있는 협력모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각각의 입장을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조금씩 다르거든요.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닌데 상대를 비난할 뿐 서로 소통이 너무 안 되는 거예요.
전체적으로 입원 제도와 관련된 환자의 인권보호라고 하는 게 절차보조사업의 주 내용이 아니거든요. 당사자 활동을 강력하게 지원하기 위해선 이를 지원하는 별도의 플랫폼이 필요할 수도 있고, 당사자가 회복을 돕는 활동은 현재 서비스 체계와 같이 가야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거든요. 근데 이 세 개를 다 합쳐버리니까 각각의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느 입장 하나에도 동의가 안 된다고요.”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의료기관에 위탁하게 돼 있어요. 이 문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죠.
“저는 그 활동의 목적이 강제입원에 대한 절차를 설명한다, 회복을 지원한다라고 하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게 현실적으로 그런 기능을 빨리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활동이라고 했을 때는 잘 안 맞죠. 그리고 인권법 쪽에서 얘기하는 절차보조라고 하는 것에 제3의 독립적인 어떤 스탠스(입장)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할 땐 안 맞죠.
하지만 과연 절차보조사업이 현재 법적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틀인가라고 하면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절차보조사업이 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예로서 헌법소원 규정 판결이 나왔던 거라면 이건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라든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다 설치를 해 가지고 그것들이 제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지를 보는 게 맞거든요. 이건 당사자 중심주의와 회복을 돕는 활동과 환자들의 인권을 강조하는 활동을 기계적으로 묶어놓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서로 얘기하는 입장이 틀릴 수밖에 없죠.”
(c)마인드포스트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데요. 예컨대 서로 좀 다른 거예요. A를 주장하면서 그 안에 B, C, D가 다 같이 들어가 있거든요. 한 가지를 얘기하면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이 포함돼 있다 보니까 모 아니면 도식으로 찬성한다, 반대한다 이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저는 예컨대 심판위원회에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부분이라든지 전체적인 당사자 참여의 로드맵도 필요하다고 보고요.
그 과정에서 절차보조인 사업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이런 것들을 같이 넣어줘야 된다고 봐요. 당사자의 주체성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사업이 있고 지역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들과 협력이 강조되어져야 하는 사업도 있거든요. 그런 것을 전반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정신장애인에게 고발을 당해서 그를 설득해서 고발을 취하하게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고발이 아니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었어요. 보통 양극성 환자들이 조증일 때 입원하면 되게 공격적이고 요구사항도 많고 에너지가 막 넘치고 이러거든요. 그거를 의사가 한 마디로 못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니까. 그래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나가서 이 일을 하면 손해가 분명히 많이 날 거고 엄청나게 피해가 올 건데 그 분 입장에서 보면 이건 이미 다 된 거나 마찬가지고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상태에서 그걸 못하게 하니까 부당하게 나를 탄압했다라고 진정서를 많이 쓰죠.”
-주식도 있었습니까.
“주식도 있었고 사업도 있었고 뭐 엄청나게 벌려놨죠. 당신 때문에 내가 피해를 받았다고 진정을 한 겁니다. 한 두 분 정도 있었어요.”
-화해는 잘됐습니까.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당황스러워서 인권위원회에 전화도 했는데 거기서 화해절차가 있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그분들도 이해를 하니까. 그래서 증상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한 2주 정도 지나서 환자분한테 조용히 말씀드렸죠.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됐다, 그때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다 얘기했더니 오히려 본인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없던 일로 하겠다. 자기가 직접 국가인권위에 전화해서 진정서 안 낸 걸로 하겠다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회의감 같은 건 들지 않나요.
“근데 다른 과는 주로 환자분들이 이 병을 치료해주세요 하고 병원에 오거든요. 근데 정신장애의 경우는 본인은 급성기에 현실 검증력이 없으니까 가족이나 의사가 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나는 병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오고 의사 입장에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알코올중독자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중독 아니다 하거든요. 그런 분들을 설득해서 치료를 해야 할 때가 많지요. 그럴 때는 회의감을 느끼죠.
오늘도 할머니 한 분이 치매 플러스 조증과 겹쳐 행동조절이 안 되셔서 강제입원됐는데 도저히 병동에서 협조가 안 됐어요. 연로하신데 공격적 행동을 하시니 난감했지요. 대여섯 명의 치료진이 겨우 협력을 해서 안정제 주사를 드리고 겨우 진정이 됐는데 그럴 때 좀 회의가 느껴질 수 있죠.”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그분들이 드라마틱하게 한 1~2주 만에 좋아지거든요. 그럴 때 보람이 있죠.”
-정신장애인들 중 주치의나 정신과의사 전반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많죠. 저는 일부는 의사들의 책임도 있고 일부는 제도적인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이라고 하는 게 개인의 변화하는 동기가 중요한데 일부 의사 중에는 개인의 변화 동기를 무시하고 의사 환자 관계를 일방적이고 권위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거든요. 환자들이 병식이 없다는 이유로 설명을 제대로 안 하거나 환자가 설명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거나 하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환자들의 불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강제입원이라는 제도를 계속 두고 그것을 의료기관의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불신을 조장하는 문제가 있고요. 그리고 의료급여제도처럼 비용을 국가에서 대는데 차별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나 의사 입장에서 다른 신체질환에 비해서 충분히 치료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오는 불신은 분명히 제도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기억에 남는 내담자가 있습니까.
“제가 일 년 차 정신과 레지던트 시작할 때 스무 살짜리 남자아이였는데 성 정체성 문제 가진 친구였어요. 키가 작고 귀엽게 생긴 남자친구였는데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군대 문제도 생기고 해서 괴로워했던 친구였죠.
당시만 해도 성정체성 문제에 대한 편견이 굉장히 심했어요. 그때 제가 동성애자 동호회 같은 데도 들어가 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해서 그 아이가 편견을 스스로 안 가지게 해 주고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도 하고 했습니다. 한두 달 가까이 입원을 한 후 많이 좋아져서 공익근무요원도 무사히 끝냈죠.
그리고 최근에는 26살 조현병 환자인데 입원 한 번 했고 저랑 7년 가까이 봤어요. 근데 한 3년을 그렇게 재발하고 고생하다가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많이 좋아져서. 지금도 이 주에 한 번 보고 있는데 그 환자에게 얘기했어요. 나중에 행사 있으면 우리가 아주 잘 치료된 회복 사례로 같이 나가서 출연하자고요(웃음).”
- 동성애 그분, 동성애를 안 하도록 치료하셨단 말씀입니까.
“아니죠. 동성애 자체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 편견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아라. 동성애적 성향은 네가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이기 때문에 그걸 억지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직업도 가질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네가 직업적 능력을 가지는 것과 동성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남자로서 여성의 섬세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직업 선택이나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편견을 스스로 가지지 않도록 해 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기억이 나요.”
-현재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있는 10만 명의 당사자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역사회로 나오게 할 수는 없는 겁니까.
“저는 총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최근 2년 사이에 일 년 이상 입원한 환자라든지 일정 기간 이상 입원해 있는 환자들에 대해서 한 명 한 명 다 조사를 해서 이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수용돼 있는 것이 정말로 병의 문제인지, 아니면 시설의 문제인지, 아니면 돌볼 가족이 없어서의 문제인지 이런 것들을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이 사람들을 다 탈원화해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준비를 해야 되겠죠. 그러면 도대체 이 분들을 탈원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인프라와 인력이 있어야 하고 이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일단 알아야 된다는 거거든요. 10만 명 전체 조사하는 데 돈 많이 안 들어요. 한 20억 정도만 투자해도 한 명 한 명 한 6개월 기간 안에 조사할 수 있다고 봐요. 이걸 통해서 국가가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겠다라는 그런 계획이 있어야죠. 그러려면 일단 정확한 실태부터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돼야 합니까.
“몇 가지 행정적인 부분들을 개정해야 합니다. 입원 제도와 관련해서 보호자동의입원 제도를 존치시키고 있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입원 제도와 관련해서 절차만 복잡하게 만들어놨지 실질적으로 환자들의 인권이나 탈원화를 도울 수 있는 조항들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개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국가정신건강종합대책에서 예산추계까지 되는 획기적이고 실질적인 변화가 먼저 있어야 됩니다.”
-강제입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강제입원은 국가에 의한 공공의료기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을 해야 된다고 판단합니다.”
-최근 정신장애인과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제 동료가 얘기하더라고요.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사회라고. 정신질환의 특성이 급성기에 행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그건 치료의 영역이거든요. 급성기를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치료적 환경을 갖춰놓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병이 악화됐다는 결과만으로 수용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려고 하는 걸 국가가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원을 폭력적 규율과 억압의 체계로 만든 건 의사들입니다. 이에 대한 의사들은 성찰은 있어야 한다고 보지 않을까요.
“이전의 폭력적이고 인권 탄압적인 병원에서 일어났던 행태들에는 경제적 유인 효과라든가 제도적으로 치료 환경을 열악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게 한 부분이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개선하지 않고 현장에서 방치하면서 그걸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해결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환자의 인권은 의사들을 비난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대로 일을 했는지, 법조계는 정말 제대로 환자들의 인권을 관심을 갖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정부는 제대로 정책을 만들었는지 등 주변의 이해 당사자들을 함께 다 봐야죠. 제가 볼 때는 의사가 반성을 해야 되지만 환자들의 인권이나 치료와 관련된 역할을 해야 되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단은 미안해요. 어떨 때 제일 미안하냐면 한 달에 한 번 오시는데 저를 만나는 시간은 5~10분 정도 되겠죠. 그럼 결국은 (그 시간 제하고) 한 달의 시간은 온전히 혼자서 지내야 되는데 이 분이 과연 그 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제대로 돼 있는가. 그렇지 못한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 부분이 미안한 마음이 제일 많이 들어요.”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십니까.
“(웃음) 글쎄요. 진보 쪽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의료권력에서 좀 벗어나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중독분야에서는 제가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까. 혹은 꿈꿉니까.
“느리게 가도 괜찮은 사회가 좋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나라는 서양이 200년에 한 거를 50년에 압축해서 성장한 나라거든요. 너무 성장을 이야기하고 SNS 같은 미디어들이 발달하다 보니까 누구나 많이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이 말은 누구는 가난해서 좋다 이렇게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걸 강조하기 보다는 소소하게 커뮤니티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경제적인 거를 배제하고라도 느낄 수 있는 인간적 힘들 이런 것들을 늘려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얻은 게 뭐가 있습니까.
“현실적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있고요(웃음). 다른 거는 아내나 가족, 친구들이 봤을 때 아이들 키우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뭔가 현실 생활에서 관계나 스트레스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그럴 때 조금 보람을 느끼죠.”
-정신장애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한계를 많이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적극적으로 의사들에게 요구하고 진료실 내에서 소통하면 좋겠어요. 의사들도 결국은 환자하고 같이 성장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어떤 의사들은 환자에게 잘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환자들 자신도 의사를 너무 믿지 않는 분도 있거든요. 의사들한테 더 많이 도움을 요청하고 또 소통하고 그리고 요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출처 : http://www.mind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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