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김성규의 말] “통제와 처벌만으로 한국사회 자살 문제 해결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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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원인과 이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족 문제, 대인관계 문제, 성적과 취업 문제, 이성 문제 등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모든 자살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병리 현상에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살의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자살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하고 거의 방치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이 지난 13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2018년 리투아니아가 새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2위의 자리로 물러났다. 하지만 자살률이 낮아져서 순위가 하향된 것이 아니라 새 회원국이 추가되면서 밀려난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우리나라는 한때 자살률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33분마다 1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살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돼 왔고 또 자살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사회와 대중은 통감하고 인식하고 있지만 자살을 예방하려는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자살예방 법안들을 내놓지만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고 시민사회 역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행동을 취하려는 움직임 또한 미미하다.
정부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하는 행복권 추구를 위한 의무를 가지지만 아직 눈에 띄는 자살 예방 결과가 나오지는 않고 있다.
병든 닭은 병든 알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가 건강해야 국민들이 건강해지고 또 국민들이 건강해지면 자연스레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병든 닭이 병든 알을 낳고 있는 형국이다.
또 대중은 자살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자살을 한 당사자에게 전가시킨다.
정치권의 자살예방 관련 법안은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사람들이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아예 막아버리자’는 막무가내식의 형식으로만 발의돼 문제의 겉만 핥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떠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하고 어떤 분야에 우선순위를 둘 지에 대한 첫 번째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산'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불과 218억 원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약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자살예방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지만 예산이 보여주듯이 자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우선순위가 상당히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 72조 5148억 원 중 자살예방 예산은 1% 이하다.
각 개인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가 되어 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애초부터 잘못 출발했던 정신보건법의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은 1960년대 정신위생법에서 시작됐고 1995년에 정신보건법으로 개정되면서 오히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강화돼 온 점이다.
둘째, 사회적 인식과 편견, 선입견 등의 문제점이 정신과의 문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당사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거부, 방치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언론 매체들이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긴급한 치료를 꺼리게 만든 결과다.
특히 미디어는 조현병에 대한 확대 해석과 거짓 프레임, 불필요한 공포감 조성 등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해 조현병 환자가 흉악한 범죄자로 연결 짓고 있다. 이는 조현병을 가진 당사자를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격리시켜야 할 대상, 혐오하고 피해야할 대상으로 구조화해 보편적 인권을 유린시키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셋째, 병원 중심의 정신보건 정책이다. 이 정책은 탈원화의 실패로 나타났으며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병원 입원 절차 등을 강조해 당사자의 권리와 복지는 선언적 의미로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임세원법을 예로 들어보자.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31일 자신에게 내원한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의해 숨졌다. 이 사건 이후 정치권은 다수의 임세원법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 바뀐 것이 있는가?
오히려 국회는 ‘정신질환자가 차별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 임세원 교수의 뜻을 외면하고 격리에 치중한 법안들을 발의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정책이나 법안은 사회의 공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장애인이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고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려 있는 현실도 자살 문제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지난 1997년 IMF 당시 자살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당시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와 신문에 자살 사건사고가 보도됐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 위기나 개인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살 사건사고가 급증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인 이코노사이드(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의 한 현상이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의식주를 필요로 한다. 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은 바로 ‘돈’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인 우리나라는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善)’이 된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야만적이기도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부인할 수 없는 생존의 현실이기도 하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동반 자살 사건 등이 이같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의 한 예를 보여준다. 이 대표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의 실제 사례이다.
다섯째,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자살예방 교육의 부재가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신체적 질병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예방을 하고 치료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하고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결국 치료의 기회와 시기를 놓쳐 악화를 불러오고 병의 악화는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여섯째, 사회 인프라의 부재다. 당사자가 사례 관리를 받고 치료받을 수단이 병원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 선진국들처럼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병원뿐 아니라 직접적 사례관리와 사회복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환자 중심적인 정책에 대해서 논의돼야 한다.
일곱째. 학교 폭력, 직장 내 따돌림, 태움 문화, 가족 해체 등 정신질환의 잠재력을 갖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직·간접적 문제점들도 자살로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 자살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간호사 태움으로 인한 자살 등 모두 타인에 의해서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경우이다.
여덟째. 현 존엄사법에 대해서 대상을 확장해 안락사법을 만들어 우리나라도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처럼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한다. 조력자살과 안락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죽음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안락사 제도가 있었다면 애초 벌어지지도 않았을 사건들로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2014년 부산 발달장애아 상윤이 사건 등이 있다.
자살의 문제를 접근할 때는 반드시 근본적인 고리를 잘 봐야 한다. 자살을 강제적으로 막는다고 해서 자살률이 가려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살을 부추길 뿐이고 법적 처벌이라는 상처만 남을 뿐이다.
자살예방법은 단순히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까지 법적 단죄를 내리는 통제와 처벌의 방향성만으로는 근본적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결국 자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과 자살로 발생하는 비용과 손실은 매년 천문학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통제하고 처벌하는 것으로는 자살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살 문제를 공론화해 다중이 동의하는 법을 만들고 무엇보다 사회가 더 섬세하게 당사자들을 보살필 수 있다면 더 이상 OECD 1~2위의 자살률이라는 부끄러운 현실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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