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라는 이름의 폭력…부모의 지나친 사랑과 간섭 또한 윤리적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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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의 필요성은 ‘자기결정’ 못하는 걸 요건으로 해
입원 결정 기관은 공정하고 독립적이어야
정신보건 우선순위는 중증정신질환에 초점 맞춰야
20대 청년층 정신건강 서비스 받을 기회 결핍돼
호주는 정신보건 예산 15%로 증액 요구…한국은 1.5% 불과
치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폭력에 정신장애인 고통 받아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보다 한 걸음 물러나야
폭력적 환경 아닌 새로운 치료적 환경에서의 재경험 필요
2019년 대한사회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가 12일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어울림홀에서 열렸다.
비자발적 치료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동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국가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원 기준으로 자·타해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이 이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자·타해 위험의 역사적·철학적 기반이 폴리스 파워(경찰력·police power)에 근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옛날에는 정신질환자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다가 어느 순간 같이 하는 게 위험하다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위험한 사람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게 폴리스 파워의 출발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신의학이 발전하면서 정신질환자가 ‘아픈 사람’이라는 합의가 생기면서 유치장 대신 병원으로 옮겨 약을 줘야 한다는 사고로 넘어왔다.
이어 경찰법이 발전해오면서 자타해의 위험성의 개념이 지나치게 넓게 해석돼 왔는데 경찰은 즉각적이거나 상당히 커 보이는 위험성으로 위험 개념을 좁히기 시작했다. 자신의 대한 위험성이 위험의 기준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 자살과 자해를 공적 위험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치료의 필요성’의 경우 치료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숨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정신건강복지법도 이 같은 요건을 숨기고 있다.
그는 “정말 나아지는 사람이 있고, 나을지 안 나을지 모르겠는데 한 번 시도는 해보자는 사람이 있고, 정말 가망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많은 조현병 연구의 경험은 많이 (범주를) 조이는 것보다 풀어놓는 것으로 변해왔는데 여전히 숨어 있는 이슈가 있다”고 지적했다.
치료의 필요성의 범주는 전 세계적으로 ‘자기 결정’을 할 수 없을 것을 요건으로 채택하고 있다.
치료의 필요성이 제기되더라도 지역사회에 치료지지 기반이 있으면 강제로 할 필요는 없다. 자발적으로 하기 어렵다면 아웃페이션트 트리트먼트(outpatient treatment·외래치료)를 국가가 내리는데 이 치료 옵션은 세계적인 대세다.
이 교수는 “외래치료명령의 효과는 말을 안 들으면 입원을 당할 수 있으니까 말 들으라고 더 세게 말하는 게 주된 효과이고 또 하나는 그런 장치가 있으면 쫓아다니면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게 수월해진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비자의입원에서 가족의 위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선진국의 경우 입원 동의자로 가족보다 믿을 수 있는 관계(person in trust)를 우선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가족과 비슷한 정도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 상당수 나라들에서는 어떤 한 대상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경찰 등에 입원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과도한 권한이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른 대안은 정신건강 전문요원처럼 훈련된 이들에게 권한을 주고 치료의 필요성이 있는 이들을 대면해 입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입원의 결정을 누가 할 것인가. 이 교수는 법원에서 이를 결정하는 모델과 위원회를 구성해 집행하는 두 가지 모델이 있는데 중요한 건 공정하고 기능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지만 “정신질환이 뭐고 어떻게 판단되느냐는 건 법이 정할 수 없다”며 “그건 정신의학 안에서 발전하는 거고 그걸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차적인 요건에서 환자의 권리와 관련해 청문(hearing)은 입원을 거부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것으로 이 경우 당사자의 청문을 도울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신뢰관계인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당사자 단체에서는 임의후견을 통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입원의 결정권한을 위임해 그들이 결정하게 하고 비자의 입원을 없애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외국의 경우 소수지만 이런 제도가 있기는 하다. 일종의 자의입원 형태로 자신의 향후 입원 여부에 대해 ‘사전 동의’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미성년자와 관련된 문제다. 현재 이 문제는 이슈화되지 않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론화될 것으로 이 교수는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성년은 자기가 판단능력이 있으니까 스스로 판단하라는 게 현대 법의 추세”라며 “미성년자는 판단 능력이 있지만 친권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게 돼 세계적으로 미성년자에 대해 비자의입원을 별도로 배려하는 경우는 예가 굉장히 드물다”고 말했다.
이어 “미성년자는 어떻게 입원해야 하냐는 모호한 영역이고 많은 경우 부모의 친권행사로 입원시킬 수 있는 것처럼 돼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부모와 미성년자의 입원의 경우 부모와 본인의 결정이 다를 경우 둘 다 찬성을 해야 하는지, 혹은 둘 중 한 명만 찬성해도 입원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모호한 경계에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김성완 전남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김 교수는 “정신보건의 개혁 방향에 대해 결론을 말하자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원래 하는 걸 하자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정신보건사업 지침도 바뀌고 명칭도 바뀌고 사업 방향성도 조금씩 바뀌었지만 우선순위는 늘 중증정신질환 사업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중증정신질환이라고 할 때 만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중증정신질환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다 보살핀다는 것”이라며 “조기 중재와 탈원화가 구체적인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가 가진 기능 중 자살예방의 문제도 그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생명은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있고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자살예방사업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영역이어야 한다”며 “위기개입 중심으로 센터가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효과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 배치를 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들은 여유가 있을 때 하도록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정신증 미치료기간(DUP)의 장기화로 국가 보건예산의 비효율적 지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조기 치료의 필요성이다.
그는 “40대 조현병 환자가 센터에 가서 서비스를 받는 기회보다 20대 청년이 조현병과 관련해 지역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결핍돼 있다”며 “DUP를 단축시키고 청년들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훨씬 효과적인 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근래에 나타나는 현상은 당사자 스스로 센터를 찾아와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등록자의 절반 이상이 자발적 참여이며 나머지 절반은 의료기관의 권유를 받고 찾는 경우다.
그렇다면 치료감호를 받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센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김 교수는 “치료감호를 받는 이들이 센터에서 서비스를 받는 경우는 5%에 불과하다”며 “치료 감호, 의무 치료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지역사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정신질환자가 가진 잠재적 폭력성의 위험에 대해 안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장애인의 재범률이 비정신장애인보다 높다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다.
김 교수는 “미국은 정신과 병상수의 제한이 정신질환자의 폭력, 구속, 자살의 증가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왜냐하면 미국은 병상수가 적어서 병상이 법의학적(forensic)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치료적 필요성에 의한 입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평균 병상수를 허수(虛數)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치료감호소가 없지만 외국은 20%가 치료 감호소다. 이는 정신과 병상 수에서 빠진다. 20%를 제외한 80%가 OECD 평균에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치료감호소에 있어야 할 사람이 민간병원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적정수의 치료감호소 병상수를 제외한다면 OECD 평균의 밑이라고 보는 게 옳다.”
김 교수는 버드킨 보고서 등 정신질환자의 인권 옹호의 선진 국가인 호주의 경우에도 정신건강 보건 예산 등과 제도적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분석했다.
호주의 경우 최근 정신보건 예산이 7천억 원의 추경예산이 잡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이 호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다.
김 교수는 “호주는 정신건강 예산을 기존 5%에서 15%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호주정부의 정신질환에 대한 낮은 인식과 탈원화를 하지만 정부가 지역사회에서 손을 빼고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 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은 1.5% 수준에 불과하다. 그가 “현재의 어려움들을 피하려 하지 말고 재정의 증가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어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이탈리아 정신의학자 바자리아의 삶과 철학에 대한 특별강의를 했다. 바자리아는 이탈리아 전역의 정신병원을 1980년부터 폐쇄하도록 유도한 최초의 정신의학자다. 그의 철학은 2000년 국공립 정신병원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폭력의 진화, 폭력의 역사’를 주제로, 이영문 서울특별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 ‘폭력과 윤리의 철학적 탐색’을 주제로 각각 발표를 했다.
이어진 종합토론 시간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권혜경(여·47) 씨가 플로어에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지인(知人)은 정신질환을 겪는 아들의 폭력성이 너무 심해 원룸을 얻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아들의 내면에는 부모가 자신을 정신과 환자로 낙인 찍었고 약물 부작용으로 일상이 힘들어졌다는 분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약물치료조차 거부가고 있는 상황이다.
권씨는 “그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바라볼 때 착잡한 감정이 든다고 한다”며 “폭력적인 아들을 (치유로) 이끌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영문 대표이사는 “정신과적인 치료가 치료라고 생각하지만 정신과 치료가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이사는 “치료라는 이름으로 감금되고 환청을 없애기 위해 갑자기 투여되는 약들이 증상을 없앨 수는 있지만 폭력화된 기억은 남는다”며 “마찬가지로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나 간섭이 폭력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이 공부를 잘 하라고 학생들에게 강요하면 윤리적 폭력이 될 수 있다”며 “부모는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자유롭게 놔두는 것이 폭력이 아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선완 가톨릭대 관동의대 교수는 “연로한 어머니가 가지는 과도한 관심과 치료에 대한 열망이 애한테 폭력적으로 느껴지겠구나를 인식하도록 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기 교수는 “환자가 폭력적 환경이 아닌 새로운 치료적 환경에서의 재경험이 필요하다”며 “부모는 좀 물러서면서 도와줄 건 도와주더라도 환자 스스로 치료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태연 대한사회정신의학회장은 “미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타자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 윤리적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 학회장은 “우리가 조현병 환자를 옹호하면서 사회가 이들의 증상과 폭력의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고 사회에 요구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윤리적 폭력이 될 것이냐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타자에 대한 폭력의 경우 기독교가 성소수자 문제에 폭력적인 것을 볼 수 있다”면서 “원래의 기독교 사상은 죄인들, 한센병자, 여성도 포용하는 게 근본인데 중세 시대에 기독교가 권력이 되면서 나와 다른 것들, 타자에 대한 폭력성을 가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권력이 일방성을 가질 때 그런 폭력성이 나타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대한사회정신의학회가 주최하고 국립정신건강센터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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