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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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3월, 문을 닫은 국내 1호 정신의료기관인 청량리 정신병원.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 없음. / 이상훈 선임기자이정인씨(63·가명)는 최근 보도되는 조현병 관련 범죄를 접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다. 이씨의 남동생은 40년 가까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 순한 성격의 동생이 강력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80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게 될 동생이 걱정이다.
보통 조현병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의 동생도 24살에 첫 증상을 보였다. 당시 집안은 택시회사, 물류회사 등 여러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었는데 대표인 아버지가 병석에 눕는 바람에 20대 초반인 동생이 모든 걸 도맡아 해야 했다. 믿고 사업을 맡길 만큼 명석했다.
그런 동생이었기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여도 의심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조현병에 걸린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어느 날 동생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면서 큰아버지가 북한에서 장군이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믿었다. 그게 증상인 줄 전혀 몰랐던 거다.” 가족들에게 이씨의 큰아버지는 보도연맹사건 당시 수장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주내에 입원해야 하지만 한국은 56주 회사 직원들까지 알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지만 가족들은 몰랐다. 잠을 안 자고 밥을 안 먹어도 일이 바빠서 그러려니 했다.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하는 증상은 없었다. 직원 중 한 명이 “우리 집안에도 그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사장이 정신병인 것 같다”고 해서 동생을 대학병원 정신과에 데려갔다.
증상이 나타난 후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신질환 미치료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이 짧을수록 치료가 잘 되고 이후 경과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2주 이내에 치료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환자들은 치료까지 약 56주가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병에 대한 지식이 없고 사회적 편견이 심해서다. 증상이 악화돼 가족도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선택지는 입원뿐이다. 입원은 대부분 강제로 이뤄진다. 질환이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기 때문에 입원기간도 길다. 2013년 한국의 정신의료기관 평균 재원 기간은 176일이다. 이씨의 동생도 이 과정을 밟았다. 유럽에서 입원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인 이탈리아는 13.4일이다.
이씨는 처음 동생을 면회 갔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동생이 마치 ‘로봇’이 된 것 같았다.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약이 너무 독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현병에 대해 지식이 없으니 가족으로서 의견을 내기는커녕 치료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묻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냥 병원만 믿었다.
그런 식의 치료가 30년 이상 지속됐다. 퇴원 후 잘 지내다가 다시 증세가 보이면 강제로 입원을 시켰다. 돌이켜보면 입원을 하기 전 동생의 모습은 늘 비슷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도 안 잤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사람이 피폐해졌다. 가족이 계속 치료를 권하자 집을 나가기도 했다. 삐삐(호출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실로 믿는 동생이 답답했다. 입원을 권유하면 동생은 자신은 미치지 않았는데 왜 병원에 보내려 하느냐고 반발했다. 이런 갈등은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 사이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조현병이 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뇌세포 간 신경이 전달되고 반응하면서 사고와 판단이 이뤄지는데, 조현병은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가 보고 듣는 게 가짜”라고 아무리 말해도 조현병 당사자에게는 생생하게 존재하는 소리(환청), 장면(환시), 냄새(환취)다. 이씨는 조현병이 뇌의 문제라는 것, 그래서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끊으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망상과 환청, 환시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몇 년 전에야 알게 됐다.
그럼에도 가족은 동생을 놓은 적이 없다. 집을 나가면 전국 곳곳을 찾아 헤맸다. 대구에 있다고 하면 대구로 갔고 부산에서 누가 동생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산으로 갔다. 입원을 시킨 후에는 같은 병동의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 간식까지 챙겼다. 퇴원 후에는 몸에 좋다는 한약은 다 지어 먹였다.
일러스트 김상민당사자에게 환청·환시는 ‘실재하는 세계’ 이런 노력 덕분인지 몇 달 입원을 하고도 집에 돌아오면 한두 달 만에 멀쩡해졌다. 로봇 같던 몸이 풀렸고 조리있게 말도 잘했다. 어머니는 혹여나 자식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늘 옷도 깔끔하게 입혔다. 증세가 없을 때는 누구도 동생을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도 몰랐다.
하지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병이 10년, 20년 넘게 이어지자 이씨도 지쳐갔다. 또 동생을 입원시키고 나오던 날, 정신병원의 상담사가 이씨에게 “누나가 너무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동생이 아프고 난 이후 그렇게 울어보긴 처음이었다. 동생이 안타깝고 또 이를 평생 짊어져야 할 가족의 앞이 막막했다.
이씨와 동생이 60대가 되고 어머니가 80대에 접어들면서는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닥쳤다. 이씨가 경제활동을 할 때는 동생에게 주는 돈이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일을 관두자 짐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동생까지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동생에게 “어떻게 나를 한평생 이렇게 괴롭히느냐”고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 이씨는 40년 동안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동생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의 병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했다. “동생이 입원을 하게 되면 ‘알리바이’를 만드는 게 우리 가족의 일이었다.”
정신장애인이나 질환자로 등록하면 지원금이 나오는 등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개인정보가 쉽게 유출되던 때라 등록하지 않았다. 혹여나 정보가 유출돼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을까봐서다. 결국 가족이 모든 걸 떠안았다.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비단 이씨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의 ‘중증’ 조현병 환자는 44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중 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환자는 9만명 수준이다. 나머지 33만명은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국가의 지원시스템 밖에 있다. 지원시스템을 모르기도 하고 또 이씨처럼 불신해서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가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집을 나갔는데 아무도 찾지 않았다면? 병원에 5년, 7년, 10년씩 방치했다면? 같이 살지만 매일 싸우기만 했다면?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강력범죄를 저지른 조현병 환자들은 병 이외에도 고립, 단절, 가족과의 불화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고 낙인은 다시 고립으로 이어진다.
고립은 낙인으로, 낙인은 다시 고립으로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사람을 해친 안인득은 60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도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은 안씨를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 대화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에서 위층에 사는 75세 노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10대 청소년 역시 사회와 단절된 채 집에서 애니메이션에 빠져 지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현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러 요인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병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조현병 환자는 모두 위험하며 그래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조현병 유병률은 지역, 인종, 문화에 관계없이 1% 정도로 알려져 있다. 격리가 답이라면 100명 중에 1명이 격리된다.
지난 4월 조현병을 앓던 10대가 할머니를 흉기로 숨지게 한 현장을 취재진이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문제는 모든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 이씨 같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케이스는 극소수다. 그나마 한때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고 이씨와 동생의 사이가 좋았고, 이씨의 남편이 이런 상황을 이해해주어서 40년 동안 버텨온 셈이다. 가족의 희생 덕분인지 동생의 주치의는 “이 정도 생활하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에야 동생의 병명과 증상을 제대로 알게 된 이씨는 ‘국가의 역할’을 생각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정신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있었더라도 동생이 증상이 나타난 이후부터 병원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을 터였다. 입원기간이 짧았을 것이고 40년 동안 강제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동생이 약에 취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이마에 물에 젖은 수건을 둘둘 말고 결박된 채 전기치료를 받았을 때도, 수 개월을 좁은 폐쇄병동에 갇혀 있을 때도 가족이 의지할 국가는 없었다. 의지는커녕 물어볼 곳도 없었다. 정보를 얻는 곳은 주치의가 유일한데 사실상 주치의는 ‘복불복’에 가깝다.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조현병은 발병이 아니라 고혈압처럼 관리가 더 중요하지만 누구도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애초에 이를 알았더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40년 동안 동생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족은 모든 돈과 시간, 에너지를 다 써버렸고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이씨는 지금이라도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 정신장애인·질환자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까지 환자를 포기하게 되면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국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가족에게만 맡겨놨는지 모르겠다. 이건 어떤 국민에 대한 무책임이고 폭력이 아닌가.” 이씨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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