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약물, 이대로 괜찮나 ③] 약물 외의 대안은 지지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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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포스트'는 도파민을 증상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정신의학의 도파민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지지를 통한 비약물치료로 증상의 고통을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이용표ㆍ정유석ㆍ배진영ㆍ송승연, 정신장애인의 항정신병약물 복용 경험에 대한 연구: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을 중심으로'(한국장애인복지학, 2019)를 재구성해 연재기사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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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에 압도된 당사자의 삶은 그 자체로 수단으로 전락한다. 약물 복용을 치료의 중심에 놓고 일상생활을 맞추다보면 아침 기상, 낮 시간의 활동, 저녁식사 이후 활동까지 당사자의 모든 스케줄은 약물의 영향으로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 당사자 A씨는 약물 복용으로 일찍 출근하는 삶이 불가능해졌다고 토로했다. "이 약은 또 늦게까지 자게 만들어요. 사람을 늦게까지. 일찍 일어나면 몸이 그렇게 무거워요. 그래서 힘들었던 게 뭐냐면 보통 출근시간이 9시, 10시였단 말이죠."
늦잠 때문에 아침 시간이 몽땅 사라졌다면 낮 시간은 어떨까. 불행히도 아침 약을 복용하면 졸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져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약물의 작용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당사자들은 이 때문에 정신재활시설을 비롯한 사회활동을 영위하기가 힘들게 된다. "저 같은 경우는 오전 약 먹고, 저녁 직후 약을 먹으니까요. 저녁에 무엇을 할 경우엔 1시간30분이 고비더라고요. (...) 가장 생생할 때는 보통 저녁 직전, 그러니까 약 먹기 직전일 수밖에 없죠."
이제 저녁을 살펴보자. 당사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저녁 식사를 하고 약물 복용을 한 뒤에는 저녁 시간을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친구를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죽은 듯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저녁 약을 먹지 않고 건너 뛸 수는 없다. 당사자에게 있어 저녁 약물 복용은 절대로 넘어선 안 되는 금기의 선이다. "그 선을 넘어서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죠. (...) '나는 어쨌든 간에 매일 저녁 6시30분이 되면 저녁 식사를 하고 7시가 되면 잠이 오든 안 오든 누워 있는다'(라는 금기)."
조현병 치료 약물의 종류
결국 약물에 종속된 당사자의 삶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약물로 인해 기능이 저하되면서 자신감이 사라지고 박탈감이나 자괴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성인으로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해야 하잖아요. (...) 그러다보니까 그 약물 때문에 좀 퇴화되었던 기능들이랑 사안들이 성인이 되니까 제가 좀 박탈감, 상대적 자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 이제 나는 자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좀 많이 떨어진 상태구나..."
기능저하는 기존의 회사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거나 사회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사자 B씨는 기능저하로 인한 사회생활 포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진짜 힘든데도 꾸역꾸역 나가봤어요.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야. 회사에서 전에는 1시간이면 할 수 있던 일이 이제는 1주일이 걸려."
당사자는 이제 약물에 지배되어 약물의 종이 되는 새로운 노예제의 희생양이 된다. 당사자 C씨는 정신과 약물의 중독 경험을 금단현상으로 비유하면서 약물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게 약물에 대한 중독인지, 이 약물이 나를 이 정도로 나의 정신세계와 나의 모든 컨디션을 좌지우지할 정도면 참 문제가 있는 약물이 아닌가? (...) 마약 금단증상이라고 할 정도로 힘든데 정신과 약물이 이 정도로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 이 약을 먹으러 가야한다는 것도 싫었던 것 같아요."
클로자핀
약물에 대한 사유
당사자들은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해도 생활의 고단함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주변 세계와의 관계에 더 큰 영향을 받아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당사자들은 약물의 용량을 증가하거나 바꾸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지지체계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새로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약물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면서 당사자는 여러 가지 약물 복용에 대한 시도를 하며 약물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약물 복용을 저항하면서 당사자는 자신과 자신의 세계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지배하던 약물의 실체를 파악하면서 참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당사자에게는 약물 복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물을 도구로 두고 삶의 주체성을 찾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무조건 약물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은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찾는다. 당사자 D씨는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통해 약물의 작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약을 먹을 때랑 안 먹을 때랑 증상 차이가, 호전이 좀 있는 거, 다른 거 같았어요. 그래서 그때 약을 계속 먹어보니 환청은 확실히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약물이 정신적 현상을 감소시키는 것을 경험한 경우 외에도, 당사자 A씨는 정신적 현상 자체를 견디게 해주는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크게 동요는 안 되고, 견디는 힘이 좀 있긴 하더라고요. 들리는 거는 비슷한데, 조금, 내가 감기 걸리면 항생제를 먹으면 기침을 덜 하는 거 있잖아요? 그 정도는 되더라고요. 좀 견디는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약물은 '반쯤은 보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약물은 정신적 현상을 완벽히 퇴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해주도록 도와주는 보조제 역할은 한다는 것이다. "약이 차지하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저의 기조를 유지해준다? (...) 약은 반 보험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보험 상품을 드는 데 저는 약을 보험으로 든다고 생각하거든요."
(c) Medical Daily
동료의 지지와 위로
약물을 복용할 때도 가라앉지 않는 증상들은 동료들의 위로와 주변 사람들의 지지로 힘을 얻어 고생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당사자 A씨는 힘들 때 언제나 응대해주는 동료와 사회복지사가 있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큰 위로를 받는다고 고백했다. "밤에 힘들면 ooo 형에게 전화해요. 그게 굉장히 큰 위로가 되고, 그러다가 정말 환청이 들리고 진짜 미칠 것 같으면 선생님한테 o톡을 쳐요. 그러면 선생님이 위로해줘요. 그 o톡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어요."
당사자들은 약물 복용이 절대적으로만 간주하는 의료진과 가족의 입장과는 달리 고유한 의지로 약물을 줄이거나 중단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 때문에 약물 복용이 더 증가하거나 강제로 입원을 당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약물의 작용과 부작용을 완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약물 대신 단전호흡과 같은 효과적인 대안책을 찾아 도전하기도 한다. 당사자 E씨는 운동을 택했다. "일단은 (...) 절에서 해독을 한거야. 거기 아침마다 두 시간에 걸쳐서 산에 올랐다가 운동하고 또 예불도 운동이에요."
당사자 C씨는 재발을 하지 않기 위해 최소량의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했다. "지금 나는 조울증약 최소량에, 조현증약까지 먹으니까 하루 4알 먹고 있거든요. 지금은. (...) 재발 안 하겠다,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은 거죠."
당사자 B씨는 무엇인가를 학습할 때는 약을 먹지 않지만, 위기상황 때는 선택적으로 약물을 복용한다고 말했다. "지금 환시가 굉장히 심해졌기 때문에, 환청, 목소리가 엄청나요. 웬만하면 견디는데, 못 견딜 때만 약을 먹어요. 그러면 (증상이) 많이 줄어들거든요. 기능은 (...) 뭐지, 두뇌회전은 좀 떨어져요."
삶을 주체적으로
당사자 D씨는 약물 강요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보라고요. 사회적 삶을 봐야지. 그만큼 약을 끊어보는 것은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이잖아요. 내 인생을 복구하기 위한. (...) 당사자 운동을 하는 건 당사자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지, 뭐 약을 잘 먹으려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이처럼 당사자들은 약물이 증상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또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편,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지지와 위로가 약물 효과와 유사하게 견디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을 경험한다. 이는 사회적 지지를 통한 비약물 치료의 가능성에 근거를 제공해준다. 비록 약물이 급성기에 상호보완작용을 해주긴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약물 복용이 정신장애의 치료나 회복을 저해할 수도 있다.
약물을 복용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현상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의 또 다른 원천은 주변의 위로와 지지다. 당사자들은 주변의 동료 당사자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정신적 고통을 이겨낸다고 입을 모은다. 정신장애인 동료 지원 상담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때다. 또 위기상황일 때 강제로 입원시키기보다는 당사자 동료지원상담가를 비롯한 정신건강 사회복지사가 개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출처 : 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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