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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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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장애로 고통받던 내게 삶을 찾아준 것은 의사도, 약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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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3,713회   작성일Date 19-09-2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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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6893094_66124.jpg23일 열린 제2회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에서 발표하는 박은정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활동가. 사진 박승원

    - 사회 속 이물질로 살던 나, ‘정신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만나다

     

    열네 살 때 처음 정신과 병원에 갔다. 그곳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이 내 정신장애인으로서 삶의 시작이었다. 이십 대가 된 지금은 조현정동장애라는 진단명을 갖고 약을 먹고 있다. 이제까지 폐쇄병동에는 네 번 입원했다.

     

    현재 나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학생이다. 사실 내가 소개할 나의 ‘정상적’ 사회 멤버십은 그것밖에 없다. 가정 내 학대 속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며 항상 ‘이상한 아이’로 여겨져 따돌림을 당했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는 몇 년간 우울증에 시달려 방 안에만 있다가 어느 날 대학에 가고 싶어 갔다. 내게 있어 대학만큼은 놓칠 수 없는 ‘공평한’ 시험대 같았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면서 항상 나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가정 내 학대는 나 혼자 끌어안고 가야 하는 사생활에 지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따돌림을 당해도, 정신질환에 걸려도, 내 경험들은 내 개인의 몫이었다. 대학에 가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대학은 정말로 공정한 곳이 아니었다. 강의실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시시때때로 죽을 것만 같은 우울감에 시달리는, 집 밖으로 도저히 나올 수 없어 수업에 결석하는 나는, 왼팔에 커다란 자해흔을 가지고 등교하는 나는, 그렇지 않은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겪는 불편함을 호소해본 적도, 이를 지원받아본 적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정신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몹시 불편해했다. 대학 사회 속 이물질은 나였다.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불안상태가 심해지고, 심장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우울할 때도 나는 지하철 교통약자석에 앉을 수 없다. 정신질환자는 기피 대상이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내가 겪는 이러한 경험이 부당하며, 나 역시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아래 파도손)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고, 인터뷰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말해주었다. 장애인. 나는 이름을 찾은 기분이었다.

     

    나를 거쳐 간 그 어느 의사도 내게 삶을 찾아주었다는 생각은 못 들었다. 그저 고통을 완화해주는 약물을 처방하는 전문가, 그 이상은 못 되었다. 그러나 내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삶을 찾았다. 내가 겪은 것이 약물을 꾸준히 먹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지난한 고통이 삶의 역사이며 나의 일부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고서야 나는 나를 찾았다.

     

    그렇게 ‘파도손’의 활동가가 되고 나서, 나는 수많은 정신장애인들이 나와 같은 정체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정신장애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신과 약물뿐인가?

     

    한국 사회는 정신장애와 인권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고 교육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정신장애인에게 연일 ‘살인마’ 혹은 ‘범죄자’라는 잘못된 낙인을 부여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언급은 그 어느 언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가, ‘살인 사건’이 나고서야 곧장 반(反)인권의 이름으로 호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빵이다. “나는 배고프지 않아”라며 스스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심어주자는 발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허기짐을 느끼지 못하게끔 약물을 처방하는 것도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더군다나 빵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약물을 먹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주객전도의 발상은 다분히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빵이 없다는 문제를 논의 선상에서 삭제해버리고, ‘치유’의 주도권을 당사자가 아닌 의료계가 선점하게 하니 말이다. 배고픈 사람은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릴 뿐이다.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이나 ‘긍정적 마음가짐’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 시민으로서의 권리이다. 우리는 ‘약물을 잘 먹는 착한 환자‘와 ’그렇지 못한 예비범죄자‘ 사이에 놓이고 싶지 않다. 약물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입은 피해를 외칠 수 있는 권리와, 그렇게 얻은 장애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이다.

     

    -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임을 드러내면 안 된다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너무 쉽게 ‘치료의 대상’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에게 있어서 치료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장치이지 정말로 정신장애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정신장애인의 삶을 지난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병뿐일까? 정신장애라고 불린다는 것은 질환이 고착되었다는 의미이고 병은 이미 그의 삶의 일부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체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를 가졌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그 여건이란 바로 사회적 권리에서 비롯된다.

     

    정신장애인들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에 이제까지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자기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취급받아 ‘강제입원’ 당했고, 정치적 의제에 참여하기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약을 잘 먹으면 되는’ 환자로 살기를 강요받았다. 거주하고 싶은 곳에서 거주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원하는 직장을 얻는 등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것이다.
     
    올해만 해도 부산 금곡동에서는 정신재활시설이 들어선다고 하자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지역주민들은 재활시설을 ‘혐오시설’로 부르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렇게 일부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 내에 정신장애인이 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서 자신이 정신장애인임을 숨겨야만 한다면, 정신장애인에게는 주거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정신장애인은 사회복지사가 될 수 없다. 정신장애인은 아이돌보미, 산후조리원 종사자, 주류제조관리사가 될 수 없다. 정신장애인이 미용사, 응급구조사, 조리사, 약사, 의사, 화장품제조업자, 영양사가 되려면 전문의의 적합판정이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장애를 이유만으로 취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인권침해적이지만, 사실 정신장애인은 이러한 직업들만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정신장애인임을 밝히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가? 한국에서 대학교수가 정신장애인임을 커밍아웃한다면, 그는 오로지 장애를 이유로 온갖 지탄을 받으며 결국엔 교수직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왜 정신장애인은 위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지 못하는가? 만일, 당신이 정말 정신장애인은 미용사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말할 수 있겠는가? 정신장애인에 대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오해와 편견이 없다면, ‘꺼림칙하다’와 같은 사회적 배제의 논리를 차용하지만 않는다면,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 USC 법대 교수인 앨런 삭스는 정신장애인이다. 그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성이 우리 중 일부만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정신장애인이 원하는 것은 비정신장애인이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신장애인에게는 일자리를 얻어 정당한 임금을 받고,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 치유다.

     

    1566878942_16861.jpg23일 열린 제2회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에서 발표하는 박은정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활동가. 사진 박승원
     

    - 정신질환이 아니라 사회심리적 장애, 개인의 질환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다

     

    정신장애인을 ‘위험하고 불안정한 개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정신장애가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서적 변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측불허의 위험 상태라고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장애인 당사자가 사회구조적 모순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희석하고 장애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는 한계가 있다. 세계 공식 명칭은 ‘사회심리적 장애인(Psychosocial Disability)’이다. 우리가 겪는 장애를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구조적 문제가 우리의 심리적 장애를 초래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 뇌’이다. 인간의 뇌 기능은 생후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하나 형성되고 변화, 발달해나간다. 즉 인간의 정신은 선천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다. 사회적 뇌로서 인간의 두뇌는 그 어떤 조건보다 폭력적인 조건, 즉 다른 사회구성원들과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 격리 상황과 같은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정신질환 또한 이러한 다양한 삶의 과정이자 결과물인데, 특히 공동체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정은, 『정신장애와 민주사회』, 기억과 전망(Memory & future vision) p.57~58)

     

    한 사람의 정신장애는 아무런 맥락 없이 그의 삶에 던져지지 않는다. 이를 단순히 '뇌 질환'이라고 일축해버리는 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신경증, 욕망, 일탈, 정신증. 일련의 경험들은 명백히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발현되고 사회문화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일어난다. 정신장애는 한 사람의 삶과 억지로 분리해낼 수 없는 일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정신장애는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신호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성폭력, 가정폭력, 산업재해 등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다. 강제투약한다고 당연히 이들이 ‘멀쩡해지는 것’은 아니며 왜 그러한 증상을 호소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올바르다. 그 원인이 묵과되지 않는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일반 시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신장애인의 사회 복귀를 말할 때, 자립이란 것은 정신장애인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립은 정신장애인 혼자 이룰 수 없다. 기존과는 다르게 불편하고 독특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공동의 생활양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은 비당사자들이다.

     

    - 차별받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차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

     

    정신과 폐쇄병동에 있으면 통신과 외출이 제한된다.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알 수 없고 친구, 가족과 연락할 수도 없다. 병원에 있자면 대통령 선거일이 언제인지도 모를 것이다. 실제로 폐쇄병동에 갇힌 당사자들은 투표하기는커녕 관련 정보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곳에 정신장애인들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십 년을 갇혀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다시 갇혀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이를 시민권의 박탈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사회로 복귀한 후엔 ‘정상적인 시민의 위치’를 다시 확보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정신장애인은 여전히 ‘약물을 잘 먹고 관리당하기만 하면 안전한’ 존재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에게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 할 수도 없고,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거의 자유조차 침해당하며, 국가적으로 직업의 종류조차 제한당하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시민으로서의 삶인가?

     

    21세기 한국에는 노예제가 없다. 봉건사회의 신분 계급도 없고, 그 어떤 기업인이라도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겠다고 선언했다가는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대놓고 정신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정신장애인을 열등 시민 취급하는 진실은 은폐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공허한 헌법 조항만 남는다.

     

    차별받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현실적인 구제책이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 우리는 비당사자와 다르지 않은, 동등한 삶의 질을 원한다. 정신장애인이 자유롭게 일자리를 갖고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으려면, 일반 시민들의 보다 높은 차원의 시민 의식 함양이 필요하다. 정신장애를 결함으로 취급하여 당사자들의 권리를 빼앗고 ‘치료’만을 강제하는 사회에 반기를 든다. 정신장애인에게 시민으로서의 삶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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