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을 '열등 시민' 취급하는 사회…헌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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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정신장애인당사자포럼 이룸센터서 열려
정신장애인에 필요한 것은 약물이 아니라 사회적·시민적 권리
약물치료 선택은 나의 몫…필요한 것은 차별받지 않고 살 권리
정치적 의제에 참여보다 약 잘 먹는 환자로 기능해 와
정신장애인 임금은 최저임금법에도 적용 안 돼
정신장애 밝혀 받을 불이익이 이익보다 크다고 여겨 장애등록 미뤄
미디어가 정신장애인 편견 해소에 ‘결자해지’ 자세 가져야
1인가구 560만 시대…가족의 정신장애인 돌봄 한계점 와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이 공동 주관한 2019년 정신장애인 당사자포럼이 23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공동체 회복을 향하여 스스로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지난해에 이어 2회째를 맞았다.
박은정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활동가는 “나를 거쳐간 그 어느 의사도 내게 삶을 찾아주었다고 생각은 못 들었다”며 “그저 고통을 완화해주는 약물을 처방하는 전문가, 그 이상은 못 되었다”고 토로했다.
박은정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그는 “그러나 내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삶을 찾았다”며 “내가 겪은 것이 약물을 꾸준히 먹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지난한 고통의 삶과 역사이며 나의 일부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고서야 나는 나를 찾았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우리가 민주사회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는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인정하는 사회일수록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존재하는 사회”라며 “(한국사회는) 정신장애와 인권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교육이 이뤄지기는커녕 ‘살인마’ 혹은 ‘범죄자’라는 낙인을 학습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그 어느 언론에서도 쉽게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가 살인사건이 나고서야 곧장 반(反)인권의 이름으로 호출된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이나 긍정적 마음가짐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 시민으로서의 권리”라며 “약물치료를 선택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입은 피해를 외칠 수 있는 권리와 차별받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또 “정신장애인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며 “강제입원을 당했고 정치적 의제에 참여하기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약을 잘 먹으면 되는’ 환자로 살기를 강요받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거주하고 싶은 곳에서 거주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원하는 직장을 얻는 등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 살아왔다”고 밝혔다.
박 활동가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노동권과 주거권을 잃은 이유가 정신장애인이 ‘위험하고 불안정한 개인’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기인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예측불허의 위험한 상태로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 활동가는 또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당사자가 사회구조적 모순의 피해자라는 부분을 희석하고 가로막는 한계가 있는 의학용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심리적장애인(Psychosocial Disability)은 세계 공식 명칭”이라며 “우리가 겪는 장애를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구조적 문제가 우리의 심리적 장애를 초래했음을 인정하는 명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누구도 대놓고 정신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며 “정신장애인을 열등 시민 취급하는 진실은 은폐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공허한 헌법 조항만 남는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비당사자와 다르지 않으며 동등한 삶의 질을 원한다”며 “정신장애인이 자유롭게 일자리를 갖고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으려면 보다 높은 차원의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할 것”이라며 “정신장애를 결함으로 취급하여 권리를 빼앗고 치료만을 강제하는 사회에 반기를 든다. 정신장애인에게 시민으로서의 삶을 달라”고 주장했다.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당사자 활동가는 정신장애인의 일자리와 근로의 권리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당사자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현행 최저임금법은 정신장애인의 노동에서 그 규정을 배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정신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100원이라면 정신장애인은 이 최저임금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
김 활동가는 “사용자가 피사용자인 정신장애인의 작업에 대해 비용을 최저임금 이하로 주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며 “정신장애인의 근로는 원천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는 환경이라고 보더라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취업을 하는 유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등록 정신장애인의 경우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통해 취업하는 경우가 있다. 이어 자신의 정신장애 유무를 밝히지 않고 비장애인과 같은 선상에서 취업하는 이른바 ‘독립 취업’ 형태가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질환을 관리 받으며 고용촉진 수단으로 직업유지를 이어나간다는 점이다.
김 활동가는 “젊은 정신장애인들은 ‘독립 취업’으로 큰돈을 단시간 안에 벌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장애 등록을 꺼려하거나 나아가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2016년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는 도민 1200만 명 가운데 약 110만 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신장애 등록자 수는 1만7000명으로 다른 장애 유형에 비해 등록률이 낮은 편이다. 그러다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게 되는 45세를 기점으로 정신장애 등록률이 올라가는 현상을 낳고 있다.
김 활동가는 “정신질환이라는 낙인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자기 낙인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인해 질환을 밝혀서 얻는 불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인식한다”며 “현장에서도 정신질환을 앓는 장애인의 작업능률이 비장애인의 그것보다 65% 정도에 머문다는 것도 사용자들이 임금을 적게 줘도 되는 이유로 본다”고 지적했다.
2012년 자료에 따르면 신체장애인들이 한 달에 127만 원을 받을 때 정신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다음인 약 54만 원의 수입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장애진단을 받게 된 중증의 정신장애인은 장애연금이라는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장애수용이 이뤄지지 않는 이들에 대한 지원은 문턱이 높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생산 가능 연령대의 정신장애인들은 기타 장애인에 비해 장애등록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장애 등록 순간부터 이로 인해 얻을 불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나서서 장애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사회는 역설적으로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c)마인드포스트.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은 “미디어가 정신장애인을 담은 기사 텍스트는 늘 불안과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이는 미디어가 정신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시민을 타자화하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고 분석했다.
기자들 역시 이 같은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국장은 “기자들 역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 같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접해보지 못한 이질적 존재, 그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타자성의 존재에 대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집단적 ‘상징 살해’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며 “정신장애인의 배제와 격리를 합리화시키도록 이데올로기를 공모한 언론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역에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 발표했다.
2017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는 총 5142만 명이다. 전체 가구 수는 2017만 가구이고 이중 1인 가구 비중은 28.6%로 약 561만 명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가족 중심의 삶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게 되는 문화가 됐음을 방증한다.
유 소장은 “이는 정신장애인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가족에게 지원을 받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정신장애인의 생활지원이 가족의 역할로만 국한하는 것이 한계점에 닿았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그는 당사자에 대한 주거지원이 여전히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정신병원 장기입원과 강제입원원으로 인해 독립주거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을 퇴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유 소장의 지적이다. 병원을 퇴원했을 때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이어갈 주거생활시설 등에서 거주하는 상황이나 독립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것, 혹은 가족과의 불화로 고시원에서 자취하는 경우가 많다.
유 소장은 “이 같은 주거유형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당사자의 의사가 배제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사자에게 가장 기본적인 주거에서부터 본인의 결정으로 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변의 권유가 앞섰기에 삶에서 주체적인 입장을 갖기 어렵다”며 “타의가 개입된 삶은 생활상 생기를 떨어뜨린다. 이런 한계점을 갖고 있는데도 정신장애인이 시설, 병원 생활에서 게으르다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취업의 유지와 관련해 유 소장은 “현재의 국가 기관 평가지표는 정신장애인의 취업의 질적인 만족도 혹은 유지보다는 단순한 취업률에만 평가를 두는 구시대적 지표”라며 “공공의 영역에서 질적 평가를 도입해 정신장애인의 취업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평가지표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신장애 당사자의 문제가 일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생애에 걸쳐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다양한 소수자로서 옹호하는 단체와 연대를 통해 권리 옹호 영역의 확장성과 다양한 사회 이슈에 고민하면서 문제 대응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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