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자기결정권 보장하는 절차보조사업, 의미와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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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의료 및 사회 서비스 전반에 걸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강조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부산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신건강서비스 패러다임 전환과 당사자 활동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 정신장애 당사자 중심 활동의 과정과 의미를 나눴다. 그 일환으로 부산 등 3개 권역에서 시범 운영 중인 ‘절차보조사업’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3년 동안 입원했어요. 한두 달 만에 퇴원하니까 병이 안 고쳐지는 거라고 친척들끼리 회의했던 모양이에요. 6개월 이상 입원이 불가능해 근처 병원으로 보내졌다가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기를 반복했어요. 그 전까지 ‘완치’에 대한 기대가 있었어요.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나도 노력해서 잘나가는 친구들처럼 살자’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했어요. 3년간 폐쇄된 병원에 갇히면서 ‘퇴원하더라도 다시 강제 입원 당할 수 있고,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살 수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어요. 어떤 결정이든 가족들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모든 걸 포기하게 되고, 결국 제 자신은 사라졌어요.” - 정신장애 당사자 발언 인용 “현행 보호 입원 제도가 (중략) 입원의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을 정신과전문의 1인에게 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그의 자의적 판단 또는 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점, 보호의무자 2인이 정신과전문의와 공모하거나, 그로부터 방조·용인을 받는 경우 보호입원 제도가 남용될 위험성은 더욱 커지는 점, 보호입원 제도로 말미암아 사설 응급이송단에 의한 정신질환자의 불법적 이송, 감금 또는 폭행과 같은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점, 보호 입원 기간도 최초부터 6개월이라는 장기로 정해져 있고, 이 또한 계속적인 연장이 가능하여 보호 입원이 치료의 목적보다는 격리의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도 큰 점, 보호입원 절차에서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절차들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점 (중략) 등을 종합하면, 심판 대상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 -2016년 헌법재판소의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 인용
‘전문가’에서 ‘당사자’로 패러다임 변화 그동안의 국내 정신건강 정책과 서비스 전반은 1995년 제정된 정신건강 최초의 법률인 <정신보건법>을 근간으로 의료모델을 지향해왔다. 20여 년 이후 정신건강 패러다임은 2016년 있었던 두 사건을 계기로 전환기를 맞았다. 헌법재판소의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과 <정신건강복지법> 제정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당사자의 자기결정에 의한 입원 치료를 지향 원칙으로 제시했으며, 이 원칙에 의거해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비자발적 입원규정을 강화했다. 이 둘은 모두 의료 과정에서 정신장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정신보건서비스 현장의 패러다임 전환’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한 김문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건강복지 분야를 오랜 기간 지배했던 의료중심 패러다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당사자 중심 패러다임의 의미를 강조했다. “의료모델이 지난 25년간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장기 입원, 장기 시설 수용 등 명백한 부작용도 있었다. 의료모델 패러다임에서는 치료 이후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통합된 삶을 살기 어렵다. 2016년 두 가지 계기로 우리 사회는 정신건강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덧붙여 김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의료모델에 초점을 맞춰 치료와 재활을 강조하는 정신건강 현장을 비판하는 한편, 패러다임 변화에 맞춘 각성을 촉구했다. “2000년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정신장애’도 하나의 장애 유형으로 정의됐다. 지금까지 등록된 정신장애인만 10만 명 이상으로, 15개의 장애 유형 중에서 6번째로 등록 숫자가 많다. 그럼에도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 역시 생소해 한다. 지난 25년간 현장에서는 ‘정신질환자’라는 용어가 표준 개념으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 입장에서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당사자의 역할과 자아 그리고 행동이 변화하고 있다. 향후 의료모델은 당사자 중심 패러다임에 의해 견제를 받고 조정을 거칠 것이다. 전문가와 더불어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이 변화에 호응해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시도, 절차보조사업 정신장애인의 당사자 운동과 권익옹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국가에서는 권익옹호서비스가 진행 중이다. 그중 영국의 IMHA(Independent Mental Health Advocacy, 독립적정신건강옹호)는 대표적 권익옹호서비스로 꼽힌다. '정신장애인 자기결정권과 절차보조서비스’를 주제로 발표한 송승연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강사는 IMHA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2007년 영국 정신보건법 개정 이후 등장한 IMHA의 목적은 강제치료 대상자가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법률 규정과 권리 보호 조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한 당사자들은 입원 기간 동안 치료 만족도 증가, 퇴원 후 후속 상담에 더 많이 참석했으며, 비자의적으로 구금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현재 부산을 포함해 서울과 경기 등 세 개 권역에서 시범 사업 중인 ‘절차보조사업’은 대표적인 한국형 권익옹호사업이다. 동료상담가, 사회복지사 등 옹호자를 파견해 입퇴원 과정에서 그동안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 능력을 옹호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시범 사업 이전에 진행된 절차보조연구사업에 참여한 송 강사는 “절차보조사업이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의미 있는 시도며, 특히 경험과 공감의 힘이 있는 당사자 활동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IMHA보다 진일보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절차보조사업은 강제적 치료 중심으로 작용되기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전반적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권익옹호서비스가 확장돼야 한다. 즉 권익옹호서비스는 지역사회서비스 및 인프라 없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위기 대응 시스템 부재…당사자 중심 선택지 늘어야 ‘정신질환자 위기대응에서 절차보조서비스의 의의’를 주제로 발표한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먼저 국내 위기 중재시스템의 한계를 언급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자해 △자살시도 △공격성 △급성기 △번아웃 등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신장애인은 △처벌 △강제입원 △불통 등을 경험한다. 정신장애인의 위기상황에서 귀결되는 지점은 결국 폐쇄병동 입원이다. 이 대표는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의료중심 위기대응 시스템은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위기중재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어 절차보조시범사업에 대해서는 “정신건강서비스의 당사자 중심 모델이며 위기대응시스템 공백의 새로운 대안이다. 그간의 치료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사회로의 진출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또 이 대표는 “자기결정권의 손상은 곧 기능의 퇴화, 무능과도 직결될 수 있다. 자기옹호란 그래서 중요하다. 당사자를 치유하고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절차보조사업과 같은 선택지가 더 늘어야 한다”며 다양한 당사자 중심 서비스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희정 절차보조사업단 ‘프렌즈’ 동료지원가 역시 당사자로서, 또 이번 절차보조시범사업의 참여자로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료지원이 함께 가는 절차보조사업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병원에 입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나가서 잘 살 수 있을지, 그냥 병원에서 평생을 조용히 사는 게 나을지 고민될 때 나의 상황을 공감하는 한 사람의 ‘할 수 있다’는 말이 큰 힘이 됐다. 퇴원 이후 전환시설, 자립지원주택 등의 정보를 제공해주며 꾸준한 정서적 지지를 보내줄 사람이 필요하다. 절차보조사업, 그중에서도 동료지원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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