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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와 '예비 범죄자'... 조국 장관님, 이것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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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8,026회   작성일Date 19-10-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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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두 개의 길?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이나 '긍정적 마음가짐'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 시민으로서의 권리이다. 우리는 '약물을 잘 먹는 착한 환자'와 '그렇지 못한 예비범죄자' 사이에 놓이고 싶지 않다. 약물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입은 피해를 외칠 수 있는 권리와, 그렇게 얻은 장애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이다."
    (박은정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활동가, 8월 23일 제2회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 발표 중에서 - 출처 '정신장애로 고통받던 내게 삶을 찾아준 것은 의사도, 약물도 아니다' 2019년 8월 27일 비마이너)

     
    왜 길은 '착한 환자'와 '예비 범죄자'라는 두 개뿐일까? 마치 선택지처럼 놓인 두 개의 길은 역설적으로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증명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후보자 자격으로 나섰던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8월 20일 발표한 정책 자료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조국 당시 후보자는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범죄 피해 증가와 예방에 대한 대책이 인권 측면에서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요지의 질문을 받았고, 그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예방조치를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명쾌해 보이는 이 답변은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현실의 열악함과 복잡함에 비해 단순하다.

    '치료를 통한 범죄 예방'이 타당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착한 환자=보호, 예비 범죄자=통제'라는 제도적 도식은 권리가 숨 쉴 틈을 만들지 못한다. 위에서 인용한 박은정 활동가의 발언은 바로 이 점을 비판하고 있다. 조국 장관이 보인 관점은 정신장애인을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호명하는 것을 통해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논리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범죄자라는 '낙인'을 '동정'으로 대체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의사이면서 이탈리아 정신병원 폐쇄 운동에 앞장선 프랑코 바살리아는 "온정주의가 끝나고 새로운 협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환자의 인생은 다른 방식을 허용하는 상호작용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보호의 대상이기만 하면 협상할 수 없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비껴가려 하지 말고, 정책의 문제를 반성해야 한다. 단순한 대답에 맞서 복잡한 질문을 던져 보자.

    정신장애인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정신장애인 그룹 안에는 성별, 나이, 경제상황, 성적지향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 등은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채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 공포를 확산한다. 정신장애인 내의 복잡 다단한 차이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정신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젠더 폭력, 노동자로서 겪는 차별, 교육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빈곤의 문제 등 다층적 인권 현실을 외면한다. 다양한 정체성만큼 다양한 삶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치하고 '정신질환'만을 특수화시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규정한다. 소수자를 한 가지 정체성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얻는 효과는 분명하다. 해당 집단에 대한 낙인효과를 극대화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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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인은 삶을 보이지 않게 한다. '장애인은 착하다, 순수하다, 돌발적이다'라는 식의 편견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이는 한 장애인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장애인 모두의 문제로 돌려진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명명하며, 공포를 퍼트린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떠올려 보자.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경찰이 내놓은 대책은 '묻지마 범죄'와 '정신장애인 강제 입원 강화'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묻지마 범죄'에서 묻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불안과 실패한 삶에 대한 분노는 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할 수밖에 없는가. 청년실업, 공공성의 후퇴, 사회복지의 시장화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실존을 위협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불안한 삶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는 이와 다른 대책을 바란다. 불평등이 가져오는 혐오와 차별, 그에 파행되는 범죄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라는 프레임으로 중요한 논의점을 뭉개지 않아야 한다. 국가가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물어야 한다. 이는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대한민국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의 주책임자는 바로 조국 법무부장관이다.

    '우리 가족과 이웃이 안전한 세상'에서 '우리'란 누구인가
     

    치료가 중요함에도 위험의 감소만이 정책의 목표로 설정된다면, 당사자의 인권은 존중받기 어렵다. 프랑코 바살리아가 지적한 대로 "법적 프레임이 여전히 위험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상태라면 정책적 대안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조국 당시 후보자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신장애인을 호명하는 정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자료를 통해 "국민들 일상의 안전"을 확보하고,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우리'란 누구일까? 과연 정신장애인은 포함되어 있을까?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진영에서는 '치료를 위한 최선은 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지역사회가 변화하고, 장애 당사자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두고 치료와 범죄만 운운할 때, 이웃의 관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사건이 국민들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결론이다. 장애인,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와 같은 특정한 정체성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동해선 안된다. 이런 기준은 인권침해를 초래하는 제도로 이어진다.
     

    정신병동의 억압과 학대에 대해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한 장면.
    ▲  정신병동의 억압과 학대에 대해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한 장면.
    ⓒ 다음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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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병원, 감금의 역사를 반복해선 안된다

    <자유가 치료다>를 쓴 백재중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정신 보건 시스템을 이식한 것이 한국 사회 정신장애인 감금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대인 1975년 12월 내무부 훈령 410호를 통해 '범법자, 불순분자 등의 활동을 봉쇄한다'는 행정적 근거를 마련했고, 이른바 부랑인 대감금이 이뤄졌다. 전두환 정부에서도 410호는 유지됐다. 안보와 정화의 논리는 감금을 통한 배제를 강화했다.

    백재중이 책에서 소개한 토마스 쉐퍼의 주장대로 "규범을 어기는 자를 일단 사회가 정신질환자라고 낙인찍게 되면 그는 반사회인으로 규정되고, 결국 사회 통제 기능에 의해 그는 '목표 대상'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다. 시간이 흘러 1995년 정신 보건법이 제정되었지만 강제입원과 장기입원을 합법화하며, 정신병원은 팽창하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처참한 수준에 이르렀다.

    2016년 강제 입원 등에 대한 조항이 담겨 있는 정신보건법 24조의 위헌판결로 강제입원 비율이 줄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진영에선 자의적 입원 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가족 등 주변인들에 의한 입원 설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이들이 가진 취약성을 이용한 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선행한다면 다른 방안이 보일 것이다.

    매드 프라이드, 10월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하자

    사회 안전에 대한 대책을 논하며, 특정 소수자 집단을 탓하는 것은 쉽다. 또, 복잡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것 또한 쉽다. 과거 성소수자의 인권,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유지했던 조국 법무장관이 청문회장에서 보인 후퇴적인 발언을 목격하며 우려와 비판이 커진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법무부는 보편적 인권을 지향해야 하며, 국가인권기본계획을 세우는 주무부처다. 보편적 인권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법무부가 낙인과 차별을 심하게 받는 집단의 위치에서 정책 구상을 시작하길 바란다. 제3차 국가인권기본계획(NAP)에는 "사회적 편견으로 정신장애인들이 퇴원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시설에 재입소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 자립 지원정책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법무부장관의 책임을 다해 주길 바란다.

    마르코 까발로. 이탈리아 산지오바니 정신병원의 당사자들이 세탁물을 나르던 말과 같은 이름을 붙인 커다란 말 조형물을 이끌고 1973년 자유를 외치는 행진을 했다. 세탁물을 나르는 말이 시설 담장을 넘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들은 4미터가 넘는 조형물을 시설 밖으로 가져가기 위해 시설 문을 부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설화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국 법무부장관이 펴나갈 정책이 안전과 보호를 강조하며 시설 담장을 탄탄하게 만드는 오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범죄예방이 인권정책과 반대된다는 인식의 담장을 바꾸어내길 절실하게 원한다. 정신장애인의 차별과 권리를 말하는 자부심의 행사인 매드 프라이드가 10월 26일 광화문에서 열린다.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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