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치료다(백재중 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표지
이탈리아가 세계 최초로 정신병원 폐쇄법인 ‘바살리아법’을 제정한 지 40년을 맞이하였다. 1970년대 이탈리아 정신보건 개혁 당시 정신병원에 수용된 사람들이 외친 ‘자유가 치료다(La liberta e terapeutica)’라는 명제는 여전히 자유와 치료를 병행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정신보건 개혁에 관한 담론을 열어가는데 큰 영감을 주고 있다.
23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열린 ‘제2회 정신장애인 당사자포럼’에서도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자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병원과 시설에 갇혀 지내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따졌다. 이 자리에 함께한 『자유가 치료다』 저자 백재중(녹색병원 의사, 인권의학연구소 이사)은 이탈리아 바살리아법의 탄생과 제정 뒤 개혁 과정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정신보건 현실을 돌아보고 참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라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을 버리고 이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정신병원이 없는 나라’라고 불리는 이탈리아도 과거에는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정신질환자를 수용한 어두운 역사가 있다. 1904년 제정한 법률 36호를 보면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해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는 정신질환자 입원을 판사가 결정했다. 입원은 치료가 아니라 사회 보호를 목적으로 했고, 입원 기록은 범죄 기록이자 시민권 상실로 이어졌다. - 정신병원 의사 바살리아가 정신병원 폐쇄의 필연성을 깨닫기까지 이렇듯 훈육과 처벌을 목적으로 정신질환자를 수용소에 가두는 현실 때문에 낙담한 어느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바로 정신병원 폐쇄법의 이름이 된 프랑코 바살리아(Franco Basaglia, 1924~1980)다. 그는 1960년대 초반 이탈리아 북부 고리찌아 지역 정신병원 원장으로 처음 부임하면서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비인권적 실태와 의학적 효과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당시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를 결박하거나 신체적으로 학대하고 전기 충격요법, 인슐린 쇼크 요법 등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가 오히려 환자의 병세를 악화시킨다는 결론을 내린 바살리아는 처음에는 정신병원을 ‘좋은 환경’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그는 폭력적인 진료(전기 충격 요법, 격리 수용, 억제대 사용)를 금지하고, 직원들 재훈련, 근무자와 환자 사이에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환자 자치회 구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내 곧 정신질환자의 ‘문제적 행동’들이 정신병원을 벗어나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닫고는 병원을 완전히 폐쇄해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 뒤부터 바살리아는 정신병원 폐쇄를 위한 운동에 매진한다.
- 이탈리아 정신보건 혁명의 상징 ‘마르코 까발로’
정신보건 개혁을 위한 노력은 정신의학자들의 노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정신병원 환자 당사자들이 직접 정신병원 폐쇄를 위한 운동에 뛰어들고 있었다.
1973년 2월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 주(Trieste province) 거리에서 4m 높이의 파란 목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지오바니(San Giovanni) 정신병원 환자 당사자들이 직접 만든 조각품 ‘마르코 까발로(Marco Cavallo)’의 행진이었다. 마르코 까발로는 실제 산지오바니 병원 세탁물을 병원에서 외부 세탁소까지 나르던 말의 이름이었다. 1959년부터 운반 일을 해오던 마르코 까발로가 나이가 들어 더는 일을 하기 힘들어지자, 1972년 6월에 정신병원 환자들은 주정부에 탄원을 해서 말이 은퇴해서 쉴 수 있게 도왔다. 그로써 환자들 자신은 여전히 정신병원에 갇혀있으나, 말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며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생과 환희’를 의미하는 스카이블루 색을 띤 마르코 까발로에는 수용소나 다름없는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의 해방을 향한 염원이 담겼다. 훗날, 이 목마는 바살리아법으로 불리는 1978년 법률 180호, 나아가 이탈리아 정신보건 혁명의 상징이 된다.
- ‘이탈리아의 미친법’이라고 조롱당한 바살리아법이 바꾼 변화들
1961년부터 1978년 사이 고리찌아, 아레쪼, 트리에스테, 페루기아, 페라라 등 여러 도시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탈시설화 실험이 진행되면서 이탈리아 정신보건 혁명의 토양을 갖추게 된다. 마침내 1978년 5월 13일 정신병원 폐쇄법인 바살리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바살리아법은 이탈리아 정신보건 역사에 있어 땅과 하늘이 뒤바뀌는 것만큼 대격변의 영향을 미쳤다. 시행 당시 환자들을 퇴원시켜야 하는데 어디로 보내야 할지, 환자들은 나가서 뭘 하면서 지낼지, 사회적 위험은 증가하지 않을지, 정신병원을 폐쇄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되며 건물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 많은 논란이 따르면서 ‘이탈리아의 미친법(Italy’s mad law)’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초기 많은 논란에도 바살리아법은 조금씩 구체화하면서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새롭게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신규 입원을 금지하고, 기존 환자도 1982년 1월부터는 공공병원 입원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지역사회와 종합병원에 재배치하도록 법으로 보장했다.
바살리아법 시행에서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은 핵심 과제다. 정신병원 폐쇄 뒤 병원이 차지하던 공간을 ‘지역사회’로 흡수시키기 위해 지역마다 정신보건 사업을 총괄하는 정신보건국(Department of Mental Health)을 설치했다. 정신보건국은 담당 지역 내에서 정신 질환 예방, 치료, 재활을 증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365일 24시간 문을 열어 정신장애인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신속히 대응하고 지역사회 불안을 해소할 정신보건센터를 설치했다.
정신질환자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에서는 정신보건국을 중심으로 직업 교육과 훈련을 하고 고용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정신장애인의 고용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협동조합이었다. 협동조합은 카페, 식당, 가죽 공장 등 다양한 유형의 사업을 하는데 정신질환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울리오 만프레도니아(Giulio Manfredonia) 감독이 만든 영화 「위캔두댓(We Can Do That, 2008)」에 나오는 협동조합도 이탈리아 북부 지역 ‘논첼로(Noncello) 협동조합’을 실제 모델로 했다. 이 협동조합은 바살리아법으로 문을 닫은 포르데노네 주 정신병원에서 나온 의사 3명과 환자 6명이 처음 시작하는데 그 뒤 약 600여 명의 조합원과 연 매출 100억 리라(약 60억 원) 규모로 성장한다.
- 이탈리아, 공공정신병원 완전 폐쇄까지 20여 년 걸려
이탈리아의 공공정신병원은 2000년 12월 31일, 마침내 모두 폐쇄됐다. 바살리아법이 시행되고나서도 20여 년이 걸린 것이다. 1978년 당시 78,538명을 수용한 국립정신병원 76곳은 모두 문을 닫고 지역 정신보건센터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뀌었다. 이로써 정신보건 시스템은 기존 정신병원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으로 완전히 변화했다.
당시 이탈리아 정신병원은 대부분 국공립이었기에 바살리아법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반면, 민간병원의 경우, 바살리아법 시행 뒤에 병상 수는 증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면서 단기간 급성기 입원 치료의 54%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민간 분야의 병상율이 18%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23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열린 ‘제2회 정신장애인 당사자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백재중 녹색병원 내과의사. 사진 박승원
- 정신보건개혁의 상징 ‘마르코 까발로’, 10월 광화문광장에 선다
저자인 백재중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는 이탈리아 개혁 과정을 소개하며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여러 장벽이 있다고 전한다.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 정신병원은 이탈리아와 달리 대부분 민간병원이고 공공병원은 극소수이기에, 이탈리아처럼 법률 제정만으로 일시에 전국 정신병원 문을 닫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는 “바살리아의 성취는 민주정신의학회라는 진보적 정신의학자 그룹이 함께 이룬 것이다”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병원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신의학자 단체가 아직 없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신병원을 대체하여 위기관리까지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여전히 정신병원에만 많은 예산을 투여하고 있어 지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은 턱없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직원 대부분이 계약직이라는 점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사례는 우리나라 정신보건 체계에 깊은 울림을 준다.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이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도 ‘마르코 까발로’가 선다. 46년 전, 이탈리아에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인간으로서의 삶을 박탈당했던 사람들이 해방의 염원을 담아 만든 ‘마르코 까발로’말이다. 그날은 한국 최초로 ‘매드프라이드’가 열리는 날이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바스티유 감옥문을 열어젖히며 가난하고 힘없던 사람들이 권리와 자유를 되찾은 날을 기념하여 전세계에서 7월 14일을 전후로 열리는 매드프라이드가 드디어 한국에서도 열리는 것이다. 정신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그래, 나는 미쳤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들의 힘찬 행진이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한다. 그날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우리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탈원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마침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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