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삶도 '투명'한 존재"…들리나요, 이웃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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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웃'이 위태롭다①]
배제와 소외가 만든 '생명 사각지대' 정신건강 취약층
사회 편견과 낙인에 극단적 선택…"왜 나를 미워할까"
경제적 활동에도 제약…돌아온 건 빚더미와 인권 침해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말이기도 해요"
※ 배제와 소외가 만들어낸 '생명의 사각지대', 정신건강 취약층 이야기다. 정신질환을 겪거나 정신장애를 앓는 취약층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취약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다. 이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강원영동CBS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고통받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이웃들'을 들여다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생명의 사각지대'에서 눈물짓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지역사회, 나아가 정부 차원의 대책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박정애(여.24.가명)씨가 왼쪽 팔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자 울퉁불퉁한 곡선이 드러났다. 깊은 상처가 겨우 아물어 돋아난 살이 하나의 굴곡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얼마나 그었던 걸까. 성한 곳 하나 없는 박씨의 왼쪽 팔은 그가 얼마나 고통과 눈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씨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건 14살 때. 심한 우울증을 보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선생님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그에게 조현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4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저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는데 저를 싫어했거든요. '무능하다', '게으르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까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공중화장실에서 처음으로 손목을 엄청 긋고 그대로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그때가 17살 때.. 이후부터 힘이 들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계속 그었던 것 같아요."
마음을 다잡고 홀로 검정고시를 봐서 입학한 대학생활에서 박씨는 사람에게서 '또' 상처를 받아야 했다. 새롭게 사귄 친구에게 자신의 질환에 대해 힘겹게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반응은 "현대인의 감기지"와 같은 무심함이었다.
그가 조금씩 마음을 열수록 친구들은 멀어질 뿐이었다. 조현병이라는 '낙인'은 그렇게 잔인하리만큼 선명하게 찍혀 박씨의 마음을 할퀴고 또 후벼팠다.
그러던 중 박씨는 남자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박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제가 사람에 많이 의존하고 가족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이랑 생년월일 빼고는 다 거짓말이었어요. 그 사실을 알고 너무 큰 충격이었고 배신감이 컸어요. 사귀는 동안 데이트폭력도 당했고요, 9백만원 정도 돈을 뺏겼어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는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정신질환이 왜곡되는 게 화도 많이 나요. 저는 주변에서 정신질환을 공개했다 친구 관계가 끊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 같은 경우는 약 부작용으로 살이 갑자기 4~50kg 정도 쪘는데요. 그것 때문에 고용주로부터 '둔해 보인다', '게을러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단 취업이 힘들죠."
사회 편견은 이씨가 경제적 자립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앞으로 쌓인 빚만 수백만원. 울면서 버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이씨.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단 빚이 있고 가족 간 갈등도 있으니까요. 자살시도를 했다가 4일 동안 못 깨어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도 가족한테서 무시당하고 '쟤는 아프니까 저러는 거야. 병 때문이야' 이런 반응으로 돌아오니까... 그런데 자살시도든 자해든 어떤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수십 년 전 심하게 조현병을 앓아오다 정신장애로 등록한 이정하 대표 역시 수없이 많은 자살시도를 하며 고통을 겪어 왔다.
"정신장애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경우 없고 천박한지 몰라요. 배제하고 회피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당사자들의 증상으로 몰아가면 되니까요. 우리들의 고통은 죽어야만 끝나는 걸까요... 아무도 이 고통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마치 투명인간 같아요. 사는 것도 투명한데 죽음도 투명한 존재."
삶도 죽음도 '투명인간'이라 스스로 지칭하는 그들의 눈에 비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존 신호'를 보내면서도 관심받지 못하는 이들은 오늘도, '생명의 사각지대'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강원영동CBS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고통받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이웃들'을 들여다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생명의 사각지대'에서 눈물짓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지역사회, 나아가 정부 차원의 대책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신장애를 앓는 한 당사자가 그린 그림으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힘들 때마다 그었어요. 왜 다들 나를 미워할까... 계속 살아도 반복될 것만 같은 고통이었어요..."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박정애(여.24.가명)씨가 왼쪽 팔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자 울퉁불퉁한 곡선이 드러났다. 깊은 상처가 겨우 아물어 돋아난 살이 하나의 굴곡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얼마나 그었던 걸까. 성한 곳 하나 없는 박씨의 왼쪽 팔은 그가 얼마나 고통과 눈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씨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건 14살 때. 심한 우울증을 보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선생님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그에게 조현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4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저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는데 저를 싫어했거든요. '무능하다', '게으르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까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공중화장실에서 처음으로 손목을 엄청 긋고 그대로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그때가 17살 때.. 이후부터 힘이 들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계속 그었던 것 같아요."
박정애(여.24.가명)씨가 수많은 자해로 상처가 난 왼쪽 팔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가정에서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 박씨는 학교에서마저 학우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며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했다. 초·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한 박씨는 '괴롭힘 망상'에 시달리다 결국 자퇴를 하기에 이르렀다.마음을 다잡고 홀로 검정고시를 봐서 입학한 대학생활에서 박씨는 사람에게서 '또' 상처를 받아야 했다. 새롭게 사귄 친구에게 자신의 질환에 대해 힘겹게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반응은 "현대인의 감기지"와 같은 무심함이었다.
그가 조금씩 마음을 열수록 친구들은 멀어질 뿐이었다. 조현병이라는 '낙인'은 그렇게 잔인하리만큼 선명하게 찍혀 박씨의 마음을 할퀴고 또 후벼팠다.
그러던 중 박씨는 남자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박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제가 사람에 많이 의존하고 가족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이랑 생년월일 빼고는 다 거짓말이었어요. 그 사실을 알고 너무 큰 충격이었고 배신감이 컸어요. 사귀는 동안 데이트폭력도 당했고요, 9백만원 정도 돈을 뺏겼어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는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박정애(여.24.가명.가운데)씨와 이환위(40.가명.오른쪽)씨가 함께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 (사진=유선희 기자)
조현정동장애를 앓고 있는 이환위(40.가명)씨는 벌써 19년째 약을 먹고 있다. 망상에 시달린 이씨는 홀로 끙끙 앓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 정신질환 사실을 알게 됐다. 조현정동장애는 정신분열과 함께 기분장애까지 함께 겪는 것을 의미한다."정신질환이 왜곡되는 게 화도 많이 나요. 저는 주변에서 정신질환을 공개했다 친구 관계가 끊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 같은 경우는 약 부작용으로 살이 갑자기 4~50kg 정도 쪘는데요. 그것 때문에 고용주로부터 '둔해 보인다', '게을러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단 취업이 힘들죠."
사회 편견은 이씨가 경제적 자립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앞으로 쌓인 빚만 수백만원. 울면서 버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이씨.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단 빚이 있고 가족 간 갈등도 있으니까요. 자살시도를 했다가 4일 동안 못 깨어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도 가족한테서 무시당하고 '쟤는 아프니까 저러는 거야. 병 때문이야' 이런 반응으로 돌아오니까... 그런데 자살시도든 자해든 어떤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가 사무실에 앉아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어리고 약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내몰린 겁니다. 배제와 소외가 '생명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어요"라고 현실을 진단했다.수십 년 전 심하게 조현병을 앓아오다 정신장애로 등록한 이정하 대표 역시 수없이 많은 자살시도를 하며 고통을 겪어 왔다.
"정신장애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경우 없고 천박한지 몰라요. 배제하고 회피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당사자들의 증상으로 몰아가면 되니까요. 우리들의 고통은 죽어야만 끝나는 걸까요... 아무도 이 고통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마치 투명인간 같아요. 사는 것도 투명한데 죽음도 투명한 존재."
삶도 죽음도 '투명인간'이라 스스로 지칭하는 그들의 눈에 비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존 신호'를 보내면서도 관심받지 못하는 이들은 오늘도, '생명의 사각지대'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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