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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적 증상인 ‘환청’이 ‘목소리’가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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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8,757회   작성일Date 19-10-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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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사자의 경험적 지식이 주도하는 목소리 듣기 운동(hearing voice movement)에 대하여

    “저에게 정말로 들리는 목소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그렇다면 선생님은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신은 왜 믿으시나요?” 1987년 네덜란드의 정신과 환자 패치 하허(Patsy Hage)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마리위스 로메(Marius Romme)는 그 목소리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답답함을 느꼈던 하허는 진료실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저 말을 한 것이다.

    주위에 사람이나 사물이 없음에도 소리를 듣는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환청’이라고 한다. 그리고 환청은 일반적으로 정신증의 증상이거나, 뇌 질환으로 인한 의미 없는 증상으로 간주된다. 정신의학 영역에서 환청에 귀를 기울이거나, 관여하거나, 반응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무책임하고, 심지어 정신증적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것은 주류적 관점으로 로메 또한 환청에 대한 하허의 의견을 무시했고, 목소리 자체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했다.

    ‘환청’과 같은 증상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정신과 약물치료 개입이 제시된다. 하허 또한 약물치료를 받았고, 이는 불안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지만, 목소리를 ‘치료’하지는 못했다. 물론 약물치료와 같은 정신의학적 개입이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는 다수 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치료적 개입 뒤에도 목소리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당사자도 존재한다. 가령 미국의 ‘목소리듣기운동’을 다룬 <뉴욕타임즈> 기사(An Alternative Form of Mental Health Care Gains a Foothold. 2016.08.09.)에 나오는 캐롤라인 화이트 또한 목소리를 없애기 위해 10년 이상의 입원치료, 약물치료 등을 받았지만 목소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언급한다.

    하허는 목소리를 증상으로 보지 않고,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는 ‘실제'(real)이며, 의미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하허는 왜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지에 대한 자기 해석과 이론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결국 로메는 하허의 주장에 설득되었고, 그들은 함께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목소리 듣기 운동(Hearing Voice Movement, 이하 HVM)의 시초가 되었다.

    HVM의 중요성은 무엇일까? 환청은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환청을 듣고, 환청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 반응을 야기하여 목소리 청자를 고립시키고, 대중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끌 수 있다. 또한 목소리가 자신의 ‘세계’ 안에서 ‘실제’함에도 이를 계속해서 부정하게 하는 접근법은 당사자를 무능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다. HVM은 이를 모두 전복시킨다. 목소리를 수용하고 경청함으로써 병리적인 정신과적 서사를, 비병리적이며, 독특한 경험인 ‘목소리 듣기’로 재구성한다. 이는 목소리와 관련된 행동에 대한 명료성과 관용을 야기할 수 있으며, 목소리 청자에 대한 사회적 포용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것이 HVM이 추구하는 바다. ‘질병의 증상 환청’에서, ‘의미 있는 현상인 목소리 들림’으로 관점이 전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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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장애인&#160;당사자이자&#160;목소리&#160;듣기&#160;운동&#160;활동가로&#160;근무하고 엘레노어 롱든이 ‘The voices in my head’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TED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하허와 로메는 목소리에 대한 대안적 대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 가고 있는 ‘목소리 청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HVM의 원칙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의미 있는 경험이며, 개인의 정체성과 회복의 핵심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HVM은 목소리가 심각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목소리를 들어 줌으로써 그들과의 관계에 대처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목소리를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여하도록 요구하며, 자신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의 신념과 해석에 따라 자신의 용어로 그 목소리를 통제하는 방법을 반드시 배우도록 요구한다. 즉, 목소리 청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권장되고 장려되며, 그들의 경험적 지식은 전문지식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HVM에서 목소리 중단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들리는 목소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보다 더 건설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지표로 본다.

    또한 HVM의 핵심 중 하나는 ‘목소리 듣기 네트워크’라고 알려진 자조그룹이다. 앞서 살펴본 하허의 경우 ‘환청’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은 신뢰성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져 외면당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집단적 해석이 없었기 때문에 불리했다. 이로 인해 하허는 기존의 시스템이 규정한 방식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지속적으로 경험하였다. 목소리 듣기 네트워크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목소리에 대한 대처 전략들을 교환하며, 모든 관점이 유효한 것으로 존중되며, 특정한 틀(e.g., 심리학적, 생의료적, 영적 등)을 준수할 필요는 없다. 또한 목소리 청자로서 긍정적 정체성(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에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권리를 지닌 목소리 청자로)을 개발하기 위해 안전하고 수용가능한 공간 제공을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이자 목소리 듣기 운동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는 엘레노어 롱든(Eleanor Longden)이 TED에 출연하여 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두려운 목소리, 기괴한 환영, 괴상해도 떨칠 수 없는 망상들. (중략) 진단받고 약도 처방 받았지만 결국 포기했고, 목소리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해 제 머리에 구멍을 뚫어 그들을 꺼내 버리려고까지 했습니다. (중략) 우리는 정신건강 위기상황에 대한 이성적 대응은 조현병의 비정상적 증상을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목소리 들림을 생존 전략으로써 탐구해야 할 복잡하고도 분명하며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바라봅니다. 우리는 함께 목소리 듣기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고 또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욕구와 온전한 시민으로써의 가치를 지지합니다. 이러한 사회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 단계에 와 있습니다.”

    ※ 목소리 듣기 운동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사이트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인터보이스 홈페이지: www.intervoiceonline.org

    목소리듣기네트워크 홈페이지: www.hearing-voices.org

    엘레노어 롱든의 TED 강연 ‘The voices in my head’ : https://youtu.be/syjEN3peC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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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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