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의 손. 사진 언스플래시
“벧엘장애인의집에 오기 전까지 나는 양평 ○○○이라는 시설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폭행과 착취를 당했다. ○○원장은 나중에 폭행죄로 감옥에 갔지만, 나는 그 직전에 ○○○을 나와 벧엘장애인의집으로 오게 되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다. 원장이 어느 날 아무 설명 없이 봉고차에 타라고 했고 1시간 이상 달려 내리라고 했는데 내린 곳이 여기 벧엘장애인의집이었다. 나는 이곳 농장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돈은 받지 못했다. 이사장은 모든 장애인들을 때렸고, 나는 어느 날 대걸레로 등을 셀 수 없이 맞았다.” (‘벧엘장애인의집’ 거주 장애인 김 아무개 씨의 진술 재구성. 출처 ‘우석대인지과학연구소 관찰진단보고’ 보고서. 진선미 의원실 보도자료 재인용)
강제 전원조치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전북 장수군 ‘벧엘장애인의집’이 마침내 국감에도 등장했다.
시설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을 당사자 의사 확인 없이 전원조치 시키는, 이른바 ‘시설 뺑뺑이’에 대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향후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장수군 ‘벧엘장애인의 집’은 발달장애인 거주시설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제노동, 폭행, 성추행, 장애인 연금 착취, 입소비 횡령 등의 범죄 행위가 오랫동안 반복됐다. 그러다 지난 2월 직원들의 내부고발로 그 실상이 알려졌다. 장애인들을 학대해온 이사장과, 아내(원장) 그리고 아들(생활교사)은 모두 경찰 조사를 받은 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진선미 의원이 보건복지부, 전라북도, 전라북도지방경찰청, 장수군, 우석대인지과학연구소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벧엘장애인의집’에는 15명의 발달장애인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가축을 키우는 일과 농사일에 강제로 동원되어 왔고 이사장 가족에 의한 폭행과 성추행에 시달려 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전 시설에서 폭행과 착취를 당하다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벧엘장애인의집’으로 강제 전원 되었고, 다시 ‘벧엘장애인의집’ 이사장 가족으로부터 폭행, 성추행, 강제노동을 당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자료 갈무리
장수군은 ‘벧엘장애인의집’에 대해 현장조사를 마치고 지난 7월 1일 시설폐쇄 명령을 내렸으며, 거주 장애인 4명을 전원조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시장·군수·구청장이 시설폐쇄 명령을 내리는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은 시설 거주자의 의사를 파악하여 자립을 지원하거나 다른 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으므로 장애인 본인이 시설을 벗어나 자립지원을 원하는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하는지, 다른 시설로 이동하기를 원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장애인상담전문가의 세심한 관찰과 상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장수군은 전원조치 실시 이전에 전라북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거주인 욕구상담 진행 결과보고’와 우석대인지과학연구소의 ‘관찰진단보고 보고서’를 통해 장애인의 의사를 확인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진선미 의원은 “두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전원조치된 장애인에게서 다른 장애인 수용시설로 이동하고 싶다는 의사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 제40조와 제38조를 보면, 시설폐쇄 명령을 내린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은 거주 장애인에 대해 권익보호 조치를 하고 자립을 지원하도록 되어있다. 같은 법 제54조에서 ‘시설 거주자 권익 보호조치를 기피하거나 거부한 자’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법은 장애인 권익보호 조치를 보건복지부령에서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권익보호 조치를 하지 않을 때에 대한 처벌 규정도 유명무실해지니, 지방자치단체는 업무수행에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진선미 의원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장애인들을 학대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수용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라면서 “학대 시설들을 적발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 당사자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해 이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구체적 절차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인권보호에 소홀함이 없도록 보건복지부는 누락된 보건복지부령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