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으로 정신장애인들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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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매서운 바람에 가로수 나뭇잎이 속절없이 떨어지듯 정신장애인들이 가난 때문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끼니를 이을 수 없는 극심한 가난이 정신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어느 날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갔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형제의 우애가 무척 각별했다”고 말했다. 그 예로 “형이 정신장애가 있는 동생을 수용시설이나 병원에 보내고 편하게 살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막노동을 하며 동생을 돌봤다”고 했다.
단지 주민들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안타까워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날 오전 앞서 언급한 형제가 단지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형제는 40대였다. 동생은 1급 정신장애인이었고, 형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알아보니 정신장애인 동생은 사망하기 전 몇 군데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전전한 전력이 있었다. 작업장에서 한 달에 5~10만 원을 받고 일하다가, 그마저도 작업장이 이사하면서 거리가 멀어 혼자 다닐 수 없게 되자 그만두고 집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
장애가 없는 형은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정시 출퇴근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수년째 이른 새벽 집을 나서 인력시장에서 어렵게 건설 일을 구해 일용직 노동을 해왔는데, 사망하기 전에는 겨울이어서 그마저도 일이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래서 형제의 수입은 동생이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받는 월 40만 원의 생계비와 당시 15만 원의 장애연금이 전부였다.
사망 후 형제가 살던 좁은 아파트에서는 ‘장애인 동생을 보살피는 게 너무 힘들어 살고 싶지 않다’는 형의 유서가 발견됐다. 기가 막힌 건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집안 곳곳에 빈곤의 흔적인 라면 봉지만 가득 쌓여 있었다.
우애 깊던 형제는 그렇게 라면 봉지만 나뒹굴고 있던 집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해 3월 30일,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에 있는 한 주택 반지하방에서 동거 중인 장애인 남녀가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시신은 이미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셋방에 배달된 쌀포대가 며칠째 문밖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숨져 있는 남녀를 발견했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은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어 타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동반자살이라고 했다.
현장에 가서 이력을 추적해 보니, 정신장애 3급의 장애를 갖고 있던 이들 남녀는 법적인 부부는 아니었다. 좋아서 만나 동거했던 관계였다. 남녀는 사망하기 전 별다른 수입 없이 남자가 받고 있던 한 달 기초생활수급비 43만 원과 장애수당 3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여성도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호적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이렇게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남자는 지병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치료를 위해 병원비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변 슈퍼마켓 주인은 이들 남녀가 “잉꼬부부였다”고 말했다. “어디를 가든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고 했다.
그로부터 3년여의 세월이 흐른 2015년 10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주택 셋방에서 50대 정신장애 2급 남성 박모 씨가 굶어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 발견자는 80대 노모였다. 함께 살고 있던 형도 심한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이들을 먹이고 돌본 사람은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80대 노모였다. 자주 아팠던 노모는 그즈음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기 위해 6주간 집을 비웠고, 집에 돌아왔더니 작은 아들이 숨져 있었다. 형은 동생이 죽은 줄도 모르고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방안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지만 다행히 쌀과 라면은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장애를 가진 형제가 쌀로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기밥솥에는 밥 대신 생쌀만 가득차 있었다.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러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정신장애인 동생은 밥을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다. 그나마 형이 잠에 취해 살아남은 게 다행이었다.
이렇게 정신장애인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는데 바뀐 건 무엇인가? 돌아보면 오금동 사건의 경우 동생을 돌보는, 장애는 가지지 않았지만 수입이 없었던 형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해서 생계비를 지원했으면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었다. 성남시 사건의 경우도 장애를 가진 여성을 호적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하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해서 생계비를 지원했으면 동반자살은 막을 수 있었다. 마포구 사건의 경우, 심한 정신장애를 가진 형제를 80대 노모가 돌봐야 했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 중 유독 정신장애인들이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되어 있다. 갈 곳은 정신병원, 요양윈, 재가밖에 없는데 요행으로 병원과 요양원에 보내지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도 장애인이지만 지원을 받지 못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끼니를 이을 수 없어 투신하고, 병원 치료비가 없어 비관자살하고, 밥솥 취사 버튼을 눌러 줄 사람이 없어 사람이 굶어 죽는, 이런 참담한 현실은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이 참담한 현실이 이 나라 현실이라는 점에서 비록 과거 이야기지만, 정부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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