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조울증 정신장애인들의 그림..."남들과 틀린 것 아니라 조금 다를 뿐이죠"
페이지 정보
본문
김민호 기자 입력 2022.11.23 16:30
서울 강남구 경애갤러리에서 전시회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경애갤러리에서 파도손 쉼터가 있는 을지로 인쇄골목 전경을 그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는 당사자들과 지역사회가 어울려 지낸다면서 전국이 을지로 인쇄골목 같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그림 예술로 보여주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당사자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어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대중에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정하 파도손 대표
정신질환을 앓는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갤러리에 걸렸다. 정신장애인의 권익 옹호 활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대표 이정하(52)씨를 비롯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조현병 등 다양한 정신질환과 함께 살아왔다. 세상의 편견을 의식해 자신의 병력을 숨기기 일쑤지만, 이들은 전시 공간에 나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정신장애인의 그림을 읽다, 시대를 보다’ 전시가 22일부터 27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경애갤러리에서 열린다.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정하 대표는 근무 환경이 열악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서 일하다가 지난 2000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로도 TV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으나 병이 낫지 않아 8차례 강제 입원을 겪었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의료 환경이 개선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파도손이 자리 잡은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 전경을 펜으로 그린 작품 제목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다. 지난 2017년 처음 자의 입원했던 경험을 담은 그림도 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가 그린 파도손 쉼터가 있는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 전경(우리가 여기에 있다1). 그는 이곳에서는 당사자들과 지역사회가 어울려 지낸다면서 전국이 을지로 인쇄골목 같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경애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정신장애 예술인 6명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민호 기자
전시된 작품 가운데 입원 당시 겪었던 아픔을 설명한 그림들도 있다. 김민호 기자
하경이씨가 22일 서울 강남구 경애갤러리에서 자신의 웨딩드레스 인형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이 대표는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가난한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감옥처럼 시설이 열악한 병원에 강제로 입원돼 병세가 악화하기도 한다”면서 “자의로 입원했던 국립정신건강센터 개방병동은 입원비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소지품 통제도 별로 없었다. 산책을 하거나 펜 등 개인 물품을 가져가서 그림을 그려도 의료진이나 환자들이 모두 응원해 주는 분위기였다”고 돌아봤다.
정신장애인의 꿈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전시장 가운데 자리 잡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인형들은 대학에서 캐릭터 창작을 전공한 하경이(35)씨가 선보인 작품이다. 그는 2005년 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미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파도손에서 다른 정신장애인들을 도우면서 틈틈이 무대 의상 등을 제작해 수익을 얻는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하씨는 “남들과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를 뿐이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개성이 강한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도 위험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며 작품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가뜩이나 장애인 예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적은데, 특히 정신장애인에게 그 기회는 더 협소하다. 이 대표는 “정신장애인들도 기회가 주어지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며 "이번 전시로 당사자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