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가둬 놓은 ‘코로나 화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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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대남병원 소식을 듣고 터질 게 터졌구나 했습니다. 폐쇄병동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불’이 난 것과 마찬가지예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늘 걱정했던 것이 불이었어요. 작은 불이라도 나면 피할 틈도 없이 다 죽겠구나 했는데 코로나가 덮쳐 버렸네요.”(박민호∙가명∙46∙정신병원 입원 경험자).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발생한 뒤 첫 사망자는 지난 2월 19일 경북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나왔다. 숨진 사람은 몸무게 42kg의 63세 남성으로, 20년 넘는 장기입원 환자라는 것만 알려졌다. 이틀 뒤 2월 21일에는 대남병원에서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진 55세 여성이 숨지면서 두 번째 사망자가 됐다.
대남병원에서는 잇따른 사망자 발생과 함께 2월 20일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21일 15명으로 늘더니 22일에는 95명이 추가로 양성판정을 받으면서 사흘만에 확진자수가 111명으로 급증했다. 순식간에 불이 번진 것처럼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대구 신천지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확진자수를 기록해 ‘수퍼 전파지’로 떠올랐다.
폐쇄병동 면역력 저하, 순식간 집단감염
1년 8개월 동안 서울의 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는 박민호 씨는 18일 <단비뉴스> 취재진에 “(집단감염 뉴스를 보고)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며 목청을 높였다. 노숙생활을 하던 박 씨는 지난 2018년 7월 정신장애 진단을 받고 서울시 노숙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상태가 좋아져 올해 초 퇴원했다. 그가 지낸 폐쇄병동은 3개층으로 돼있고, 층당 1개 병동에 60여명이 병실당 9명씩 입원해 있었다. 일반 병원 6인실 만한 병실에 침상 9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미닫이 창문이 하나 있지만 밖을 내다보기 힘들 만큼 작았다. 바람은 통하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았다. 말이 병실이지 구치소 감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 국립중앙의료원이 2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페쇄병동 내부 모습. 박민호 씨가 지낸 폐쇄병동과 똑같은 구조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정신과보호병동(폐쇄병동)은 자연환기가 어렵고 밀접 접촉이 많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 국립중앙의료원
폐쇄병동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무 생각없이 복도를 걷는 게 전부였다. 자해나 극단적 선택 등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병원에서는 운동기구도 내주지 않았고, 정신과 치료를 위해 먹는 약물 탓에 활동성도 떨어졌다. 당연히 체력은 물론 면역력 등과 같은 신체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박 씨는 “병실을 오가는 사람들이 감기만 살짝 달고 와도 환자 절반 이상이 감기에 걸리는 곳이었다”며 “(환자들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 1~2주는 감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곳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됐으니 병동 내부가 어떠했겠느냐”고 말했다.
많은 환자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의료진도 상황 악화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박 씨가 입원했던 병원에는 병동마다 낮에는 보통 3명, 밤에는 2명의 간호사와 보호사가 근무했다. 환자는 60여명인데 간호사와 보호사는 2~3명이니 치료보다는 환자 관리에 중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두터운 유리창으로 된 간호사실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환자들을 지켜봤다. 병실에는 24시간 환자들을 지켜보는 CCTV가 켜져 있었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상태가 악화하면 환자 본인과 타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급성기’ 상태가 될 수 있어 간혹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대비한 조처다. 외부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은 전자카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해 환자나 외부인의 병동출입은 원천봉쇄돼 있었다.
“한 명의 간호사나 의사가 관리해야 할 환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치료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냥 환자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관리하는 수용소예요. 사방이 가로막혀 있고 간호사는 두세 명 뿐이니 불이 나면 60여명을 어떻게 대피시킬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늘 했죠. 불 나면 중증환자들부터 챙길 텐데 나머지 환자들은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그가 걱정한 불 대신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청도 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입원 환자 103명은 전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그중 7명이 숨졌다.
장기입원 수용시설로 변한 정신병동
정신병원 폐쇄병동의 집단감염 문제는 장기입원자가 많은 병원의 구조적 특성과 맞물려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코로나감염증으로 사망한 7명도 평균 입원기간이 2700여일에 이르는 장기입원자들이었다. 첫 사망자는 입원기간이 20년이 넘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국가정신건강 현황보고서 2018’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정신장애(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의 평균 입원기간은 237.8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두 번째로 높은 영국(99일)에 견주어 두 배나 높은 수치다. 정신과 질환 자체가 가족 등 일반인이 쉽게 간병할 수 있는 병이 아니어서 전문 진료가 가능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고, 정신질환의 특성상 장기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입원자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장기입원을 하면 가족의 의료비 부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입원비를 높게 책정하기 어렵고 그에 따라 정신병원 재정도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의료인력이나 시설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 입원 환자들이 좁은 병실과 열악한 의료서비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신질환자) 자신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 입원이 필요한데, 병원 시스템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회복적 치료 환경이 갖춰져야 병원인데, 지금은 무슨 중증장애인들의 생활공간처럼 변해버렸어요. 치료를 위한 병원이 아니라 주거시설이나 생활시설이 되어버린 거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따라서 입원 환자들은 단조로운 집단생활 속에서 따분하고 무기력해져서 타인에 종속된 삶,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며 “이런 장기입원으로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수용화증후군이 장기입원을 연장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은 “병원 중심, 병원 입장에 가장 최적화한 게 폐쇄병동”이라며 “환자가 병원 시스템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고 환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는 있지만 주장에서 끝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과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정신병원 폐쇄병동과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이정헌▲
병원이 이렇다 보니 입원환자도 상당수는 통제와 관리에 초점을 둔 폐쇄병동에 자신을 동화하려는 경향을 보여 장기입원을 더 장기화한다. 서울 관악구에서 만난 정신질환자 남민주(가명∙53) 씨는 “그냥 가만히 의사 말 잘 듣고, 간호사 말 잘 들어야 내 보내줄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답답하다고 항의하거나 빨리 나가고 싶다고 하면 (의료진이) 전부 정신과 증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소한 문제도 증상으로 여겨져 약물 강도가 높아지면 자연히 퇴원은 멀어진다. 남 씨는 “폐쇄병동에서 의사가 아침 회진을 하는데 자세히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며 “의사가 뭘 보고 약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정신질환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던 남민주 씨가 17일 취재진에게 장기입원이 길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짧은 대화로는 의사에게 증상을 다 설명하기 어려워 평소 전화기에 증상을 메모해 두었다가 진료 때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 이정헌
정신병원 폐쇄병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치료시설이 아니다. 환경과 여건이 아주 열악한 장기입원자들의 장기주거 및 생활공간으로 변질돼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청도 대남병원 집단 감염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2월 22일 코로나19 확진자를 해당 병원에 코호트 격리(전체봉쇄) 조처를 한다고 밝히자 의료계가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의료계와 정신장애계는 성명을 내고 “제대로 치료할 체제가 안 돼 있는 폐쇄병동에 코로나 감염자를 수용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고, 2월 26일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정신건강센터 전문가 현장 평가에서도 ‘치료환경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도 대남병원에 이어 대구 제2미주병원 등의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병원 내 음압병실은 고사하고 전문인력이나 전문치료장비 등이 부족한 상태여서 오히려 감염을 확산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높은 사회복귀 문턱이 장기입원자 늘려
헌법재판소가 2016년 9월 29일 정신장애 당사자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보호자 동의에 의한 입원(강제입원)’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2017년 5월 ‘비자의(非自意)입원’의 절차적 요건을 강화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지만 정신병동 입원환자는 거의 줄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10월 발간한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 치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12월 31일 대비 2018년 4월 정신의료기관의 입원 환자 수는 3.9% 감소에 그쳤다. 비자의입원비율은 대폭 감소했지만 본인 신청과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동의입원 환자 수가 크게 늘었다.
비자의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지역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더 제공한다고 해서, 폐쇄병동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은 “가정이나 지역에서 정신장애인들을 돌볼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야 장기입원환자가 줄어들 텐데 그런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다”며 “그런 상태에서 법으로만 입원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6년 한 해 동안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지출된 의료기관 진료비는 4조2000억원에 이르렀지만, 지역사회 서비스를 위한 재정지출은 1890억원에 그쳤다. 이와 함께 정신장애인들이 사회로 복귀하려면 자립해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는데, 정신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2019 장애통계연보에 등록된 정신장애인 수는 10만2140명이었는데 2018년의 장애인일자리사업에 배정된 정신장애인 인원은 867명에 불과했다.
▲ 보건복지부에 등록되지 않은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장애인복지법은 정신건강복지법을 이유로 정신장애인의 장애인복지시설 이용을 제한한다. Ⓒ 이정헌
35년만에 정신병원에서 나온 정신장애인을 돕고 있는 이용훈(가명∙38) 씨는 “장기입원한 정신장애인은 컵밥 끓이는 법부터 버스카드 충전 사용법까지 알려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며 “병원에서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장애 당사자들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있지만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올해 초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박민호 씨는 “사회적응 기간이 꼭 필요하다며 병원에서 교육을 한다고는 하는데, 잘 적응도 안 되고,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간재활시설 늘푸름의 김미경 대표는 “정신병원에 오래 입원한 정신장애인들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나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잘 모른다”며 “이들을 위한 주간재활시설이 경기도에 8개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국 정신과 입원환자 14만여명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전국정신건강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 해에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수는 14만3156명이다. 이 중 폐쇄병동 입원 환자수는 별도로 통계를 내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같은 해 정신과 폐쇄병상수는 6만5069개이고, 개방병상은 1만6234개이다. 폐쇄병상이 다 차 있다면 폐쇄병동 입원자수는 6만5000여명에 이르고 그중 80%만 입원해 있어도 어림잡아 5만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좁은 병실의 다닥다닥 붙은 침대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턱없이 부족한 의료인력으로 의료 서비스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코로나 감염의 위험과 공포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다행히 4월 중순 이후 코로나19 1일 확진자수가 10명 안팎으로 줄어 소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은 사회 전체가 잠깐 방심하는 순간 언제 어디서 코로나 감염 확진자가 집단발생할지 모르는 코로나 화약고로 남아 있다.
전염병은 우리 사회가 눈감아온 병폐들까지 남김없이 드러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펼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는가 하면, 고립돼 있으면서도 서로 혐오하고 배제하고 ‘위험의 정치화’를 꾀하는 모습들도 목격된다. 직격탄을 맞은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 무한 연기된 채용시험에 공부할 곳조차 폐쇄된 취업준비생, 일하는 부모의 갈 곳 없는 어린이, 영세 요양원과 정신병원에 버리다시피 방치해온 노인과 환자들은 우리 정치경제 체제와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벌거벗겨 놓았다. 그럼에도 힘있는 세력들은 부끄러운 참상을 얼른 가리고 싶은 걸까? 일부 교회는 구원의 주체가 되기보다 질병 전파의 매개체가 되고 있고, 상당수 정치세력과 기성 언론은 정략과 정파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대로 가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우리 사회가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병폐는 다시 잠재된 채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까. 비영리 대안 매체 <단비뉴스>가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단면들을 부각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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