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우리 병원 입원 기간은 최대 두 달…실제로는 한 달 안에 지역사회로 내보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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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인터뷰
정신재활과 정신분석은 상호배척의 영역이 아닌 상호교류
급성기 정신위기 대응에 ‘오픈 다이얼로그’ 접목...WHO도 권고
장기입원은 여전한 문제...입원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와 연계해야
위기 당사자 입원시 동료지원가가 병원 팀과 협업하려고 해
강박 대신 격리실을 불안시 휴식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만들어야
24시간 의사 상주하며 행정·야간입원 전담 병원은 우리가 처음
정신건강위기대응센터 도입...입원과 동시에 초기 집중 네트워킹 시작
인권 기반 치료로 빨리 내보내야...병상수 줄이고 전문요원 늘려
단기입원 최대 2개월만 입원...한 달 안에 내보낼 수 있어
정신병원에 낮병원·지역 기반 서비스 유도 위해 수가 책정 필요
병원 회복지원팀과 센터·경찰·유관기관이 같이 움직여 퇴원자 보호
1960년대 후반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서울로 이주해 도봉구 등지에서 살았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지방에서 교편을 잡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 집으로 왔다가 떠났다. 부재의 의미를 너무 일찍 가르쳐준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후 어머니는 남매를 혼자 키웠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일탈적 행위는 영화관에서 동시 상영 영화를 보고 교과서 대신 종일 소설류의 책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1988년 연세대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의대 공부가 어려워서 또 다시 일탈을 꿈꿨다. 작가가 되는 것. 실제 단편소설로 연세문학상을 탈 정도였다. 그리고 연극에도 빠졌다. 그저 커리큘럼에 따라 의대 생활을 보냈다면 평범했을 삶이었으나 그는 ‘자유’를 꿈꿨다는 죄로 의대에서 두 번이나 낙제를 받게 된다.
‘겨우’ 졸업하고 인턴까지 마쳤으나 그를 부르는 곳은 없었다. 그는 그때 전문 작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가 작가의 길로 나가는 걸 용인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의대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그에게 정신과를 권유했다. 아주대학교 의대 정신과에 지원해서 수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에게 인문학적 사유를 꿈꾸게 해 준 것은 정신분석이었다.
글을 쓰는 게 자기성찰이듯이 사람이 사람의 정신의 근원을 탐색해 치료적 대안을 내놓는 것은 치유와 삶의 깊은 소통의 통로였다. 그래서 주변에서 정신재활을 권유했지만 그는 정신분석을 고집했다. 당시 한국 정신의료계에서 조현병이나 조울병 등 중증의 정신질환자는 정신분석 치료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에게는 딜레마였다.
이후 자신이 일하기로 계획했던 병원에서 약속이 어긋나면서 대신 경기도에 위치한 만성정신질환자들의 정신병원에 취업했다. 의사 한 명이 70~80명의 환자를 돌보는 곳이었다. 내무반 식으로 만들어진 병실에서 왼쪽과 오른쪽 일자형으로 늘어선 침상을 회진하면서 정신장애인의 비인권적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2003년 무렵이었다. 그때 그는 분석가에게 3년 정도의 정신분석을 받던 중이었다.
처음 분석을 받을 때 그의 사유는 ‘와이(why)’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분석 3년이 넘으면서 질문은 ‘하우(how)’로 넘어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신의 환자들은 그냥 약 처방만 하고 사례자 몇 명만 대상으로 분석치료를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약 처방만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에 깊은 죄의식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몇십 명의 환자들에게 진정하게 다가서려면 정신분석을 포기하고 정신재활을 채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신분석가’가 되려는 꿈을 접었다.
이후 정신재활이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용인정신병원으로 옮겼다. 그렇게 15년 동안 정신재활 영역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영국에 학술대회 참여 차 갔을 때 영국 서점에서 정신병의 정신분석에 관한 책 한 권을 통해 유럽 정신치료가 정신재활과 정신분석이 같이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에서는 정신분석과 정신재활은 각각의 분리된 영역이었다.
그는 정신재활 안에 정신분석을 녹여내고 싶었다. 이후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으로 다시 간 그는 그 책의 저자에게서 지도받으며 석사를 취득한다. 석사 논문 제목은 ‘소비자 생존자 운동’이었다. 그러다가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gue·열린 대화)를 알게 된다. 1990년대 핀란드에서 처음 도입된 이 치료 시스템은 정신장애인이 정신과적 응급 상황에서 가족과 친구, 의사, 경찰 등 모든 사회적 관계인들을 소집해 치료 방안을 논의해 적절한 대안을 도출하는 정신 응급 체계다.
입원을 하면 장기화되고 만성화될 때까지 가두어두는 한국의 전근대적 치료 체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혁명적 치료 방안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용인정신병원에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시스템을 병원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민간위탁자가 나타나지 않고 적자가 이어진다는 이유로 폐업이 결정됐던 곳이다. 그렇지만 경기도의회 의원들과 병원 노조원들, 뜻을 같이 하는 의사들이 힘을 모아 재개원을 했다.
그는 이곳에 원장으로 취임했다. 김성수(51)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그의 직함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12일 경기 용인의 병원을 찾았다. 마침 인터뷰 전날인 11일,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이 정식 개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에서 ‘오픈 다이얼로그’를 도입한다고 해서 사실 놀랐습니다.
“저는 용인정신병원에 와서 정신분석을 포기했어요. 정신재활을 하기 위해 지역 병동에서 탈원화 작업도 해 봤어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용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을 맡으면서 주간재활 프로그램이나 아웃리치 가정 방문을 하면서 ‘아 이게 보람 있구나’ 생각했죠.
당시에 주간재활 프로그램을 하는데 5년이나, 10년이나 똑같은 프로그램을 하니까 회원들이 재미없어 하잖아요. 가만히 보니까 회원들이 전공이 각각 있고 재능이 있어요. 그래서 회원 당사자들이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는데 굉장히 잘 되더라고요.
2006년 학술대회 차 영국에 갔는데 영국 서점에서 조현병 등 정신증에 대한 정신분석적 이해에 대한 책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펼쳐보니까 내가 궁금해했던 게 다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정신병 환자는 정신분석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트레이닝 시키고 있잖아요. 그게 틀린 거구나.
우리나라는 미국 정신과의 영향을 받았는데 유럽은 다르더라고요. 유럽 정신분석은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환자들을 돌보면서 발전을 해요. 또 1950~60년대에 치료공동체나 환경치료라는 이름으로 정신재활을 시작한 분들도 다 정신분석가들이에요. 그러니까 지역사회 정신보건 현장에서 정신분석적 접근 방식으로 재활조직을 운영하는 게 그대로 있는 거예요. 나는 분석은 분석이고 재활은 재활인줄 알았는데 이게 같이 가는 게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죠.
여기서 일 년씩 연수 프로그램을 보내 주는데 그때 그 책의 저자를 만나려고 마음먹었죠. 그 분이 정신분석가이자 치료공동체 학파의 초창기 멤버예요. 영국의 지방 대학에 대학원 교수로 가 있어요. 임상에서는 은퇴해서 환자는 안 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거죠. 그 대학원이 사회학부에 속해 있어요. 정신분석 이론을 갖고 사회학을 하는 대학원이에요.
거기 입학해서 쓴 석사 논문 주제가 당사자운동이에요. 논문 제목이 컨슈머 서바이벌 무브먼트(Consumer-Survivor Movement·소비자 생존자 운동)예요. 생존자 운동이라는 게 정신보건 컨텍스트(맥락) 안에서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 정신분석이죠. 당사자운동에 대한 정신분석적 의의를 찾는 운동을 한 거죠. 그러면서 리해빌리테이션(Rehabilitation·재활)에서 리커버리(Recovery·회복)으로 넘어갔다고 보면 돼요.”
-오픈 다이얼로그를 도입하게 된 계기가.
“(오픈 다이얼로그를) 2010년경에 책 읽다가 알게 됐어요. 정신증의 비약물적 접근에서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건데 배경에는 대상관계 정신분석적 이론과도 연관돼 있고 가족치료적인 부분, 리커버리와도 연관이 있는데 핀란드에서 발전을 시킨 거죠.
2012년쯤에 이런 게 있다고 소개하면서 조금씩 공부를 했고요. 또 학회에서 오픈 다이얼로그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죠.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에 오픈 다이얼로그를 집어넣었냐는 질문이죠? (제가 일했던) 용인정신병원이 정신사회재활 WHO(세계보건기구) 협력 센터거든요.
제가 거기 센터장을 맡으면서 WHO와 공동 작업을 했어요. 2015년에 WHO가 퀄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라고 해서 (환자의) 리커버리와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 가이드라인이자 실행 매뉴얼을 개발했어요. 내용을 훑어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리커버리라는 단어를 안 지는 몇 년 됐지만 구체적으로 리커버리 프랙티스(Recovery Practice)에 대해서는 스탠다드(표준)한 교재가 없잖아요.
현재 WHO가 올해 말에 발표 예정인 지역 정신보건 가이드라인을 작성 중이에요. 저도 그 작업에 참여 중인데요. 그래서 모든 나라가 정책을 세울 때 이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지역 정신보건 정책을 세우라는 거죠. 이게 범주가 있어요. 첫 번째 범주는 크라이시스 리스펀스(Crisis Response·위기 대응). 급성기 위기 대응 서비스 안에 어떤 게 제일 필요하냐를 제안하는 거죠.
두 번째가 동료지원이에요. 피어 서포트(Peer Support). 첫 번째 위기 대응에 들어가는 게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오픈 다이얼로그예요. WHO가 지역 환자에 어떤 위기가 생겼을 때 심리사회적 약자들에 오픈 다이얼로그를 해야 한다고 제안을 한 거예요. 두 번째 요소는 비강압 치료. 환자를 치료할 때 묶거나 가두지 말라는 거죠.”
-오픈 다이얼로그 사례자가 나타나면 병원에서 진행합니까. 아니면 당사자의 집에서 진행하는 건가요.
“애초에 오픈 다이얼로그는 지역기반이에요. 당사자 집을 찾아가는 거죠. 그런데 핀란드처럼 지역기반으로 진행되는 곳도 있지만 병원에서 치료가 시작되는 나라도 있어요. 뉴욕의 경우 오픈 다이얼로그를 네트워크 미팅(Network Meeting)이라고 해서 응급병원에 찾아가서 하기도 합니다. 아일랜드나 스페인처럼 첫 치료가 병원에서 이뤄지면 병원에서 하기도 하고요.
저희 병원은 위기대응센터로 급성기 환자를 처음 치료하는 걸 맡았잖아요. (원래) 이 병원 설립 취지는 24시간 행정·응급입원을 한 환자를 가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라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제가 정책 제안을 하면서 이건 안 된다고 했어요. 이 환자들은 소외돼요. 갇혀서 소외되는 게 아니라 들어옴과 동시에 지역사회와 연계를 해야 해요.
저희는 오픈 다이얼로그라고 하지 않고 초기 집중 네트워크 개념으로 접근해요. 입원 초기, 적어도 일주일 내에 환자의 소셜 네트워크(사회 관계망) 안에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모든 분들을 불러 모아서 이런 형태의 다이얼로그를 하려고요.”
-일단 병원으로 와서 시작하는 건가요.
“저희가 하는 오픈 다이얼로그는 응급입원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형태로 보시면 됩니다.”
-동료지원가제도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겁니까.
“제가 용인정신병원에 있을 때는 일 년짜리 동료지원가 양성 과정을 만들어서 세 분을 트레이닝해서 고용을 했어요. 저희가 올해 시작할 때는 곧바로 동료지원가를 고용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어요.
지금 경기도에는 절차보조사업들이 있죠. 지역에도 동료지원 프로그램들이 개별적으로 있고요. 그러니까 우리 병원에 위기 당사자가 입원했을 때 절차보조사업 활동가나 지역 동료지원가가 병원에 들어와서 우리 팀과 협업을 할 수 있게 우선을 시작하려고 해요. 병원 안에 동료지원가나 절차보조 관계자가 들어와서 사무를 보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 확보도 해 놨어요.
또 경기도 정신건강 위기 대응 체계 구축에 대한 조례가 최근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를 통과됐어요. 본회의 통과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조례에 위기대응센터 이야기도 있고 동료지원가에 관한 것도 있어요. (거기다가) 동료지원가를 지역 정신건강 증진시설에 고용하도록 도지사가 지원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동료지원가들이 장애인 고용 형태로 할 수밖에 없었잖아요.
(이 조례가 통과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각 지역에서 예산을 받아서 정식 인건비가 생기죠. 저희도 동료지원가를 고용하고 양성하는 걸로 조례에 들어가 있어요. 내년부터는 저희도 소규모로라도 동료지원가를 양성하고 고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절차보조 사업에서 절차보조인을 폐쇄병동에 들어올 수 있게 할 계획입니까.
“저희는 오히려 와달라고 해요(웃음). 파도손(정신장애인 인권 단체)이 제일 정통인 거 같아요. 거기는 정말 당사자들이 처음부터 시작한 곳이죠. 그런데 파도손은 서울이라서 경기도하고 협업이 어렵더라고요. 경기도에서 절차보조사업이랑 해야죠.”
-강박과 격리도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일시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정신장애인은 어떻게 돌보게 됩니까.
“말레이시아에 퍼메이 병원이라고 있는데 거기가 740병상인데 2009년에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1년 후부터 전 병원에서 강박을 없앴어요. 10년 동안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고 있어요. 우리나라 광주의 성요한병원도 끈으로 환자 묶는 강박이 없잖아요. 이거 역시 WHO에서 제안한 퀄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 가이드라인에 있는 내용이에요.
당사자들은 병보다 치료 때문에 힘든 게 더 큰 거 같아요. 특히 치료 과정에서 강박을 당하면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이걸 줄여나가야죠. 격리나 강박을 하는 이유는 안전 확보 때문이잖아요. 이걸(격리·강박)을 줄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 훈련이 필요해요.
첫 번째가 안정화 기법이죠. 당사자들이 행동으로 표현하게 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적절한 타이밍에 이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누적되다가 빵 터지는 거죠. 그래서 이 누적되지 않는 부분에 치료 문화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 다음에 위험스러운 상황이 생겼을 때 굉장히 잘 훈련된 응급대응팀이 작동해야 돼요. 응급대응팀이 가서 팀의 리더가 최대한 시간을 들여서 면담을 시도하고 앉혀서 얘기하도록 하죠. 정 어려울 경우에는 손으로 신체 억압을 한다든지 해서 안정실로 데려가 약을 투약할 수는 있지만 끈으로 묶지는 말아야죠. 이게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강박실, 격리 공간이 마음이 불안할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만들어야죠). WHO가 이런 걸 제안하고 있고 저희도 한 번 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원장님의 치료 철학이 있을 거 같습니다.
“제 정체성은 조현병을 보는 의사에요. 의사로서 조현병에 대해 약물도 해 보고 다 해 봤잖아요. 그런데 당사자들과 협업해서 리커버리 작업을 하고 인권 기반 회복 치료를 해 나가면 환자가 낫더라고요.
전에 리커버리 프랙티스(Recovery Practice) 하기 전에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약 처방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선생님, 제 진단명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조현병이라고 얘기를 못 해 줬단 말이에요. 이 병은 안 낫는 병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치 암 선고하는 것 같아서요. 지금은 회복될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아요.
또 리커버리 기반의 치료를 하게 되면 당사자들이 회복되니까 낙관을 하고 있죠. 가능하다. 당사자와 가족, 여러 자원들이 협업해서 해 나가는 게 조현병 치료에서 제일 좋은 방법 같아요.”
-폐쇄병동을 없애고 개방병동으로 가려는 의지 같습니다.
“입원 치료는 짧을수록 좋죠. 저는 폐쇄병동은 병원에 따라서 필요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정신증 치료는 지역에서 이뤄져야 된다. 심지어는 입원 시설도 지역과 연결이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입원 시설은 지역과 분리가 돼 있잖아요.”
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한국의 정신보건 체계가 전근대와 근대, 현대가 다층적으로 포개져 있습니다. 병원 내 폭력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처럼 환자 인권을 보장하는 병원도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정신병원은 어떻게 변할 거 같습니까.
“기자님과 같은 생각인데 정신의료에 아주 진보적이고 희망을 주는 요소들이 있는 반면 너무 막막한 요소가 공존하거든요. 막막하거나 전근대적인 요소들은 아직 어떻게 할 수 없는 시설들이 있어요.
진보적 요소들은 지난 10년 동안 당사자들과 가족의 힘이랄까, 조직화가 굉장히 눈부시게 성장을 한 거 같습니다. 저는 걱정이 지역사회에서 당사자와 가족의 욕구와 눈높이가 높아졌는데 이걸 못 따라가는 거 같아요.
정신의료가 소비자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제일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정신병원이 이렇게 계속 되다 보면 정신병원에 남아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겠지만은 당사자들이 정신병원 안 가죠. 누가 가겠어요.”
-2018년 3월 청량리정신병원이 폐원했을 때 폭압적이고 훈육적인 정신병원 시스템의 전면적 파산 선고로 생각했습니다. 2020년 6월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인권적 정신보건 시스템의 시대정신을 의미하는 첫 출발점이 아닐까요.
“저희는 해 보려고 하는 거고요. 비강압 치료에 있어서는 성요한병원이 최고에요. 그건 병원 전체 치료진들의 철학이나 문화가 녹아 있어야지 가능한 거죠. 성요한병원은 60년 동안 그걸 만들었거든요. 저희는 일이 년 동안 그걸 따라가 보려는 거고요.
어떻게 비강압 치료를 구현할 수 있는지는 성요한병원에 이요한 선생이라고 계시는데 그 분이 우리나라 최고에요. 우리도 그분한테 배우고 있어요.”
-경기도의료원이 직접 운영합니다. 민간위탁이 아닌 직영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저희는 경기도가 경기도의료원에 위탁을 줘서 운영하는 거죠. 직영 아니에요. 경기도의료원에서의 수탁기관이에요. 이 병원 전체 직원들은 경기도의료원 직원이 아니고 원장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무기계약직 신분들인 거죠.”
-정규직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병원 개설자가 경기도지사가 직접 개설한 걸로 돼 있어요. 개설자가 도지사라는 건 그만큼 사업 안정성이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정규직화될 가능성이 많고 경기도에서도 그렇게 계획을 할 거 같아요.”
-정신과 의사가 상주하는 24시간 공공 응급정신대응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병원 모델이 한국에 또 있습니까.
“24시간 정신과 의사가 상주하면서 행정·야간입원을 전담으로 커버하는 모델은 저희가 처음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국립정신건강센터라든지 그런 데는 의사들이 많으니까 (24시간 상주하죠). 저희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응급위기 대응 입원에 특화돼 있는데 이런 모델은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정신건강위기대응센터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이 센터는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크게 다섯 가지 사업이 있습니다. 24시간 정신 응급진료를 하고요. 두 번째는 민간병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 환자들을 빨리 입원시키는 겁니다. 입원할 때 병원을 못 찾아서 헤매고 다니잖아요. 빨리 입원시켜서 적절한 치료를 하는 입원 기능이죠.
세 번째 기능은 치료하는 데 있어 비강압으로 치료하는 걸 사업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걸 달성하자는 거죠. 우리가 처음부터 100% 강박을 쓰지 않고 가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걸 1년 계획을 세워서 아예 없애는 게 계획이에요. 네 번째 사업은 한국형 오픈 다이얼로그, 입원과 동시에 초기 집중 네트워킹을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다섯 번째 사업이 동료지원·가족지원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경기도 정신건강위기센터의 기본이에요.”
-서울에서 정신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이쪽으로 응급·행정입원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위기대응센터가 가동되면 경기도 위기대응 회복지원 네트워크를 가동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좋은 병원이 하나 있다고 해서 전체 경기도 서비스가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이 병원이 전체 경기도에서 좋아지는 것과 연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역에서 위기 당사자가 발생했을 때 광역응급대응팀을 통해서 연계가 되겠죠.
그리고 저희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가서 끝이 아니고 입원과 동시에 이 분이 나가서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 전환시설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 동료지원 연결을 해서 쭉 팔로우업(추적)해야죠. 그래서 여러 서비스들이 환자를 중심으로 연결이 되는 게 중요하죠. 그 기능을 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기관입니다.”
-서울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경기도 이쪽으로는 못 오는 거죠.
“아마 외래진료는 가능할 수 있겠죠.”
-단기 입원 형태로 환자를 관리하겠다고 했습니다. 보통 입원하면 얼마 정도의 기간 동안 입원시킬 계획이십니까.
“저희는 맥시멈(maximum·최대) 두 달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고요. 실질적으로는 한 달 정도로 하려고 해요. 장기입원이 필요한 경우가 간혹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우리 병원에서 병실 제한이 있고 계속 모실 수 없으니까 가급적 경기도와 협약이 돼 있는 병원에 자의입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저희가 믿고 있는 건 열심히 치료하면 두 달 지나면 지역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열에 아홉은(웃음).”
-퇴원한 이후는 어떻게 돌봄을 받게 됩니까.
“저희 병원에 회복지원팀이 있는데 이 팀이 네트워크 회의를 정기적으로 가동하게 돼 있거든요. 거기에 지역에 있는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경찰, 유관기관들이 다 같이 움직이면서 실적 평가를 하기 때문에 퇴원하신 분들이 어떻게 지내게 되는지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치료가 중단되면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과 퇴원 이후에 일 개월 이내에 재입원하는 비율이 40%쯤 되죠. 그리고 퇴원 이후에 자살률이 10배쯤 되잖아요. 치료받고 나왔는데 자살률이 그만큼 높다는 건 정신과 치료가 잘못 된 거죠. 우리 병원에서 드롭아웃(dropout·치료를 그만둠)이 되는 경우에 소식이 끊겨서 오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경우는 없게 만들려는 건데요.
우리 병원 사회사업 파트나 회복 지원 정신보건전문요원이 환자를 사례관리하고 있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소통을 해야 된다는 거죠. 애초에 여기 병원으로 환자를 데리고 오는 분이 경찰이나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들이잖아요. 그럴 경우 이 분들이 환자만 (병원에) 내려주고 가는 건 안 됩니다.
우리 병원에 내려주고 간 이상 우리가 요구할 때마다 와서 같이 회의를 해야 돼요. 그게 기본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환자가 재입원을 안 하지 않겠습니까. 응급입원 사례가 상반기에 10여 건 있다고 칩시다. 제가 볼 때 그 중의 상당수는 같은 사람이 ‘뺑뺑이’ 돌고 있는 거예요. 재입원하지 않게 사례관리로 가야죠.”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이 애초에 160병상으로 하려고 했다가 50병상으로 줄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의 전신인) 구 경기도립정신병원의 규모가 그 정도였거든요. 150병상에 의사 3명. 처음 이 사업 계획이 세워질 때 정책을 맡은 분들이 그 모델로 예산을 세워놨더라고요. 제가 여기 (지난해) 9월에 고용됐는데 설득을 했죠. 우리가 교정기관도 아니고 응급입원·행정입원 환자 받아서 가둬야 한다면 천 병상이 있어도 모자란 거라고.
그게 아니라 인권 기반의 치료를 해서 빨리 내보내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을 하면서 병상수는 줄이고 대신 정신건강전문요원을 늘리자고 했죠. 그럼 적자가 날 수밖에 없겠죠. 당연히 적자가 나야 되는 거고. 그걸 도에서 받아준 거죠. 작년과 올해 합쳐서 50억 원 정도가 투입이 됩니다.”
-공공병원이니까.
“이게 굉장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50병상에 정신과 전문의가 5명인 건 대학병원급 인력이라고 하더라고요.
“대학병원만큼은 아니죠. 대학병원은 대개 50병상 이내고 전문의가 5명인데 전공의가 있죠. 전공의까지 치면 레지던트도 있고 해서 대학병원에 의사가 10명 정도 되는 셈이죠. 대학병원 만큼은 아니지만 전문 정신병원 중에서는 아마 제일 환자 비해서 (의사) 숫자가 제일 많을 겁니다.”
-경기도 내 정신병원 중 5~10개 병원을 선정해 퇴원 환자를 전담 관리할 수 있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을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건 제가 하겠다는 게 아니라 현재 경기도에 PPM(Public Private Mix) 사업이라는 게 있어요. 그건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미 했던 사업입니다. 민간 정신병원 중에 10여 개 병원을 지정해서 인건비 좀 지원해 주고 전담 사회복지사를 고용해서 그들이 민간병원에서 환자들이 퇴원한 다음에 지역으로 연계하는 기능을 하는 네트워크가 이미 있어요. 저희가 환자를 어디로 보낼 때 아무래도 PPM 병원으로 보내는 게 지역사회 복귀에 낫지 않을까 (싶죠).”
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이탈리아처럼 정신병원을 모두 폐쇄하는 게 바른 방향일까요.
“이탈리아나 아일랜드처럼 애초에 정신보건 시스템 디자인이 지역기반으로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우리나라는 역사가 좀 다르죠. 또 그렇게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있었던 거고. 지금 많은 수용 (위주의) 병원들이 민간에서 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걸 강제로 폐쇄시키기는 어렵고요.”
-궁극적으로는 그쪽으로 가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쪽으로 가야 된다고 봐요. 그런데 정신병원들이 입원 기능만 하지 않고 낮병원이나 지역 기반의 서비스로 유도하려면 여기에 대한 수가가 있어야 돼요. 지금은 입원 기능에 대한 수가는 충분히 책정돼 있는데 지역 기반의 재활프로그램에 대한 수가는 상대적으로 부실하게 돼 있습니다. 지금 보건복지부가 낮병원 시범사업을 통해 수가를 책정하려 하잖아요.
굳이 환자를 입원시키지 않고 지역 기반 낮병원 프로그램을 해도 충분히 직원들 월급 주고 병원 경영에도 좋다면 병원들이 낮병원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입원 병상은 줄이고 지역 기반으로 갈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유인책이 필요해요. 비강압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보험 수가체계를 보면 응급치료라고 해서 환자를 격리하고 강박하는 데 대한 수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격리·강박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대한 수가는 아직 없어요. 그럼 병원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환자를 안 묶으려고 애쓸 수 있는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신요법수가 중에서 장기 면담수가는 없잖아요. 그건 격리·강박 전후에는 청구를 못하게 돼 있어요.
예를 들어 응급 상황의 환자에게 묶는 처방을 내릴 수 있지만 말로 설득해 보려고 열심히 면담을 하지 않습니까. 그걸 길게 했지만 결국 그 분이 격리 조치된다면 면담한 수가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격리·강박을 대체할 수 있는 안정화 기법이라든지 시설 이런 것들에 수가 책정이 돼야 많은 병원들이 기꺼이 비강압 치료를 하겠죠. 보건복지부가 이런 것들에 대한 시범연구를 시작했고 저희도 기여를 할 예정입니다.”
-궁극적으로 약물 없는 정신병원을 우리가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무조건 약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말씀하신) 노르웨이 병원 알아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임상과에는 두 가지 이론이 공존하거든요. 한쪽에서는 약물 처방을 할 때 심한 증상이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약물을 쓰거나 안 써야 된다라는 쪽의 연구들이 많은데 들어보면 말이 돼요. 또 하나는 부작용이 없을 정도로 충분한 약을 써야 된다는 논문들이 있는데 이것들도 말이 돼요. 환자들도 이 경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저 경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약물 치료는 적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YTN 인터뷰를 보니까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회심리적 약자’라고 표현을 했더군요.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건 유엔과 WHO의 표준 표현이었어요.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인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슬로건이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예요. 또 WHO의 슬로건 중 하나는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종사한다’죠. 우리가 종사해야 할 사람들은 사회심리적 약자인 거죠.”
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 치유에서 ‘자기결정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리걸 커패서티(Legal Capacity·법적 행위 능력)이라고도 하고 자기결정권이라고 하죠. 일단은 CRPD(유엔 장애인권리협약)가 굉장히 중요해요. CRPD를 채용한 WHO의 컬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에 따르면 지적·인지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지라도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누가 대체해 주는 건 안 된다고 해요. 이 분이 자기 힘으로 결정내릴 수 있도록 어시스트(조력)을 해 줘야 된다고 돼 있어요.
이 부분이 굉장히 논쟁적이에요. CRPD가 뭘 요구하느냐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다른 법을 만들어서 그 법에 의해 구금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굳이 정신보건법을 만들어서 입원시킬 수 있게 하는 건 안 된다는 거예요. 핵심은 장애인도 똑같은 권리를 가지면서 똑같은 책임을 가지는 거예요.”
-어차피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의 이념도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추구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절차보조라든지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과 협업을 하는 거죠.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저는 CRPD와 WHO를 지지합니다만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봤던 당사자들 중에는 해외에서 발병했던 분들이 있어요.
CRPD가 (정신장애인에게)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걸 기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어떤 사례가 벌어지냐면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다른 환자랑 싸우거나 때렸어요. 그럼 곧바로 체포돼서 감옥으로 가는 거예요. 정신과 질환을 갖고 있다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당신도 똑같은 법적 책임이 있으니까 포렌식(forensic·과학수사) 법 시스템으로 가 버리면 전과가 돼 버리거든요. 이게 가혹하다고 얘기하는 분이 있는데 그래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CRPD를 지지합니다만.”
-원장님에게 정신장애인은 어떤 의미입니까.
“(침묵) 동반자죠. 살면서 제일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힘들 때 힘이 나고 그렇죠.”
출처 : 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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