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을 집단적으로 비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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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내담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뒤 국가는 정신장애인의 감금과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사진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이 임세원법 공청회에서 벌인 항의 시위 장면 (c)소셜포커스.
2020년 8월 5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한 60대 남성이 이 병원 정신과 의사(50대)를 흉기로 찔러 사망하는 사건입니다. 지난 2018년 12월 31일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가 내담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지 20개월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봐라, 이토록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공동체에서 함께 살게 하자고? 안 그래도 뒤숭숭한 세상인데 이런 ‘미친’ 인간들에게까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나. 이 자들을 모두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해야지.”
저는 이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 법이 선처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타인의 생명을 부정한 이는 분명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용인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강도 높은 사회적 비판은 당연한 것이고요.
그런데 살인 사건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졌을 때, 그가 인간이라는 범주 외에 질병적 범주에 놓일 때, 그래서 피의자가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그 의미 하나로 세계는 정신장애인을 집단 호명해 낙인을 찍습니다. 병리적 정체성만으로 세계는 정신장애인을 역겨워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런 인식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 이 살인사건입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언론들이 무더기로 관련 사건을 기사화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해시태그에 정신질환, 조현병, 정신병원이 들어가면 대중의 공포는 극대화됩니다. 두려운 존재로 표상됐던 자들이 실제적으로 사회적 사건을 일으키면 두려움은 증폭되기 마련입니다. 이는 혐오로 전환됩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있습니다. 운동의 요청은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폭력적 치료 환경의 변화와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요구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대중은 이런 요청에 관심을 두기 보다 정신질환자가 사건사고를 일으킨 것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서사는 후퇴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제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정신질환자가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왜 마인드포스트는 외면하느냐”고요. 외면한 게 아닙니다. 그럼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이 일어나면 마인드포스트가 편견에 사로잡힌 대중의 시선에서 사건을 해석해야 할까요.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의 정체성에 기반해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체성은 곧 정신장애인의 자유와 정치적 해방 운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 언론은 정신장애인을 다시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그 표상의 끝에는 관리의 강화가 들어가고 이의 실제적 움직임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감금’으로 이어집니다. 왜 정신장애인은 사건이 발생하면 똑같은 문법으로 관리의 대상이 돼야 할까요.
언론에 요청합니다. 사건은 사건으로만 기술해주십시오. 극단적 사건이 정신장애인에 의해 발생했을 때 전체적으로 낙인을 찍고 집단적 타자화를 만들어버리는 기사 쓰기를 이제는 멈추어주길 바랍니다.
정신장애인이 일으킨 사건에 대해 저희는 대중에게 사과드립니다. 인간의 생명을 부정한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될 수 없습니다. 심신미약이라는 병리적 가면을 쓰고 그가 감형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의 법적 처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정신장애인이 공동체로 호명돼 다시 낙인찍히는 과정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 낙인찍기를 멈추게 하는 통로가 언론입니다. 언론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소수자는 폭압적으로 낙인찍으면 정신장애인은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저 사회가 던지는 돌팔매질을 맞고 있어야 합니다.
사건으로 숨진 50대의 그 의사 분과 유족에 사과드립니다. 비통한 심정으로 있을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다만 이 사건으로 정신장애인을 폭력적으로 매도하는 행위에 대해 저희는 저항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사망할 때 언론은 이를 외면해 왔습니다. 정신장애인은 ‘악마’도 ‘괴물’도 아닙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제,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삶을 지지해주길 바랍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참담하다는 감정 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출처 : 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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