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아닌 고혈압 환자가 병을 휘둘러도 뉴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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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을 도발하는 질문을 던지겠다. 비장애인의 범죄율은 정신장애인에 비해 15배에 달한다. 반면 정신장애인이 범죄 피해자가 될 확률은 비장애인보다 높다. 언론은 정신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을 가두라고 써야 하지 않나?”
정신장애를 범죄‧폭력성과 연결하고 국가적 관리 대상으로 묘사하는 등 정신장애 혐오 보도가 양산되는 이유는 언론인의 무지와 함께 사회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취재 관행에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정신장애를 범죄 보도로 다루는 데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해결 방안을 내놨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이 기성 언론 관심사를 변화시킬 가능성도 제시됐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 자립생활(IL) 콘퍼런스에서 정신장애 언론 표현 문제와 해결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언론은 정신장애 이슈를 주로 단순 사건‧사고와 범죄 보도로 다룬다. 송승연 카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강사는 “2018년 진행된 연구를 보면 국내 정신질환 관련 기사에서 사건 보도가 57.3%로 비중이 가장 컸다. 그 가운데 범죄 관련이 58.5%로 가장 많았다”고 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 자립생활(IL) 콘퍼런스에서 정신장애 언론 표현 문제와 해결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사진=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사소한 일화도 정신장애인이 관련됐다는 이유로 뉴스가 된다. 정신장애인이 행인에게 빈 플라스틱병을 휘두른 사실을 단독 보도한 MBN 리포트가 대표 사례다. 정신장애 이슈 전문지이자 당사자 언론 마인드포스트의 박종언 편집국장은 “고혈압을 가진 50대 남성과 정신장애인 남성이 행인에게 병이나 우산을 휘둘렀다면, 기자는 두말할 것 없이 정신장애인이 휘두른 사건을 기사 가치가 있다고 택할 것”이라고 했다.
실상 2018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범죄율(0.136%)은 전체 범죄율(3.93%)에 비해 30분의1 수준이다. 반면 정신장애인이 강력범죄 피해자가 될 확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높다. 미국 스탠퍼드대 케이시 크럼프 교수팀은 2013년 영국의학저널에 “어떤 종류든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이 살인을 당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9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박 편집국장은 국내 보도 경향에 “정신장애인을 위험하고 비체계‧비이성,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하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다”며 “기자가 인간으로서 지닌 그릇된 편견, 즉 정신장애인을 두려운 미지의 존재로 보는 편견을 기사에 그대로 투영한 결과 정신장애인이 위험한 존재로 타자화됐다”고 했다.
박 국장은 기성 언론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체계적 관리’를 동시에 요구하는 이중모순도 지적했다. 정신장애를 사회경제적 차원이 아닌 생물학적 이슈로만 접근한 탓에 심층 보도마저 정신장애인을 ‘관리’의 대상, 즉 정신병원 등에 시설화할 존재로 묘사해왔다는 지적이다.
▲박종언 마인트포스트 편집국장. 사진=한자연 제공
박 국장은 “소위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이 벌어진 경남도는 정신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지자체 예산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지자체 예산이 왜 낮고 어디
에 헛되이 쓰이는지 들여다본 매체가 있기를 바랐지만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한편 정신장애 혐오 발언은 언론뿐 아니라 정치인 입에서도 반복돼 왔다. 윤삼호 장애인아카데미 인식개선교육센터 소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달 17일 업로드한 유튜브 대담 발언을 사례로 들었다.
안철수 대표는 “제가 의과대학 다닐 때 정신과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부모가 아이를 기를 때 말과 행동이 다르면 아이가 커서 심하면 정신분열증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윤 소장은 “의사 출신 유명 정치인조차 정신장애인 문제를 나쁜 이미지로 활용해 정치적 발언으로 일삼는다는 것은 놀랍다”고 했다.
▲ 송승연 카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강사(왼쪽), 윤삼호 장애인아카데미 인식개선교육센터 소장. 사진=한자연 제공
박 국장은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약자임을 염두에 두고, 당사자 발언을 보장할 것을 제언했다. 박 국장은 “편견에 기댄 논리보다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떤 사회적 자원이 필요한지 분석해야 한다. 또 사건 사고를 다층적이고 정치·사회적 모순들에 집중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도 필요하다. 이상호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센터장도 “기자들이 스스로 반성하거나 허위사실을 반박하는 기사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 훈련하고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송승연 강사는 당사자 언론이 기존 언론 관심사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했다. “기존 언론이 바뀌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와 동시에 이중모순에 빠진 언론에 대해 마인드포스트와 같은 당사자 언론이 기존 언론에 기대지 않고 기존 언론계 관심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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