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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방의 조현병을 태양 아래로 끌어낸 이름, R.D.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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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786회   작성일Date 21-02-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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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충격요법, 화학요법 대신에 자유롭고 대등한 환경에서 치료. 조현병에 혁명적 전환 이뤄내


    얼마 전 어느 출판사가 번역할 필요가 있는 책들을 추천해 달라기에, 1960년에 나온 로널드 데이비드 랭의 대표작인 <분열된 자기>를 추천했더니 이미 2년 전에 번역되어 있더라고 알려와 너무 기뻤다.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는데도 왜 번역이 안 되는지 궁금해하는 책이 수없이 많지만(그중에는 수천년이 지난 책도 있다), 조현병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도 오래며, 거리마다 정신과 병원이 들어서고, 많은 사람이 그곳을 드나드는 형편인데도 그 분야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책이 최근에야 번역되다니 기쁘면서도 참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세기 전 다른 중학생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곳에 끌려가 범죄인 취급을 당했던 것을 시작으로 평생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어왔고, 최근에도 불면증 때문에 찾아갔더니 의사가 한 시간 가까이 기계처럼 읊어대는 매뉴얼에 질려 정말 미칠 것 같아 다시는 정신과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나는 그래도 아직은 조현병자라는 낙인만큼은 면하고 있지만, 주변에는 그런 낙인으로 평생을 격리와 억압의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 


    <철학 공부에 열중한 의학도>

    보통 R. D. 랭으로 인용되는 로널드 데이비드 랭은 1927년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엔지니어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정신적인 갈등을 경험했다. 폐쇄적인 사립기숙학교에서 그 갈등은 더욱 심해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여 철학을 공부했고, 글래스고 의대를 다니면서도 버트런드 러셀을 회장으로 한 ‘소크라테스 클럽’을 만들어 철학 공부에 열중했다. 대학 행사에서 술에 취해 한 발언이 교수들을 불쾌하게 만들어 의사시험에 떨어진 탓에 반년 동안 정신과에서 근무한 뒤에야 의사 자격을 얻었다. 그 뒤 2년간 병역의무를 정신병원에서 치르면서 많은 군인들이 연금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정신병자 행세를 하고, 정상인이 과도한 약물치료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는 것을 보았다. 1953년 글래스고로 돌아와 실존주의 토론 그룹에 참여하고 당시 널리 사용된 전기충격요법과 신약 처방에 반대하여 동료들로부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는 정신병원에 ‘야단법석 방’이라는 실험적 치료 환경을 마련하여, 환자들이 똑같이 평상복을 입고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며 서로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함께 민주적으로 하면서 소통하고 존중되어야 할 사람으로 대우했다. 그 방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환자의 자유였고, 그 방에서 지내는 동안 독서는 물론 음악이나 미술이나 요리와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당연히 허용되었으며, 그 밖에 어떤 행동의 제약도 받지 않았다. 진보적이라고 자부한 동료들은 그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놀랐다.

    랭의 환자들이 눈에 띌 만한 행동 향상을 보인 치료 과정을 설명한 책이 1960년 출간된 <분열된 자기>다. 그 책에서 랭은 조현병이란 자신이 참을 수 없는 외부 세계에 대한 반응일 뿐이고, 그 환자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기에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려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조현병이란 의학적 병이 아니라 ‘분열된 자아’의 결과로 생기는 두개의 자아 사이의 갈등, 즉 개인적이고 진정하며 실제적인 정체성인 참 자아와, 우리가 세계에 제시하는 거짓 자아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거짓 자아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자기 자신을 상실한 채 다른 사람의 의도와 기대에 순응하면서 살 때, 또는 다른 사람의 의도와 기대라고 상상하는 것을 따라서 살 때 생긴다고 본 랭은 어린 시절 겪는 가족 내 갈등과 병든 양육 태도를 조현병의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어린 시절 참 자아가 약화되기 때문에 거짓 자아를 발전시킨다고 본 랭은 거짓 자아로 세상과 상호작용하게 될 때 조현병을 겪을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이처럼 랭이 조현병을 앓는 이들을 환자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의 관계에서 불화’를 경험하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분열’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은 조현병에 대한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에 대해 정신이 불안정해 무의미한 환상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보고, 이들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화학요법이나 전기충격요법으로 치료하는 것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즉, 환자가 미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미친 듯한 세상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적응한 것’이 조현병자라고 주장한 랭은 개별 환자나 피상담자가 표현한 감정을 단순히 정신질환의 증상이 아닌 실제 경험에 대한 유효한 설명으로 보고, 사람들이 조현병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실이 아닌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평생 정신적 갈등에 시달린 랭>

    당시의 정신병 치료 과정에 이의를 제기한 랭은 대중들에게 저명한 정신과 치료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랭은 그런 명성을 거부하고 다양한 저작 활동을 펼치는 한편 대중매체에 출연하거나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조현병 환자를 옹호했다. 그중의 하나가 켄 로치 감독이 만든 드라마 <인 투 마인즈>(1967)와 그것을 다시 영화로 만든 <가족생활>(1971)이다. 로치는 랭처럼 조현병 환자들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배경, 특히 가족 내 권력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랭은 결국 병원에서 쫓겨난다. 1989년에 사망했을 때 랭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분석가’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평생 정신적 갈등에 시달린 탓에 자기 병조차 못 고쳤다는 비웃음을 받기도 했다. 이는 그가 평생 사회의 주류와 타협하지 못한 이단아였기 때문이 아닐까?

    전근대에는 조현병 환자들을 악령에 사로잡힌 자로 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관점에서 여전히 각종 미신이 횡행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에 이른바 정상이라고 하는 우리도 언제든지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 랭은 옳다. 감옥같이 어두운 골방에 갇힌 조현병 환자들을 찬란한 태양 아래로 해방시키고 드라마나 영화의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점만으로도 그는 옳다. 따뜻한 인간관계의 형성이야말로 조현병의 유일한 치료 방법이라고 본 랭은 냉정한 전문가가 아니라 환자들의 삶과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애썼기 때문에 옳다. 더 중요한 그의 공적은 조현병이 가족의 엄격한 권력적 상하관계에서 비롯되어 학교나 직장이나 사회나 나라의 권력적 억압에 의해 생긴다고 본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현병의 치료 방법 내지 처세훈으로 효도나 조직 순응을 강조하며 전통적 가족질서나 보수적 사회질서를 옹호하거나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나 행복주의를 선전하는 우리의 각종 정신 관련 도사들이나 그들이 쓴 정신건강 비법서들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그것이 종교든 도덕이든 의료든 연예든 철학이든 정치든 뭐든 간에 억압적인 권력관계를 긍정하면 그 희생인 조현병은 더욱 창궐할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존엄한 존재라고 보는 민주주의만이 조현병을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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