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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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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시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0회   작성일Date 25-11-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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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후 신혼 때의 일이다. 

    성당에서 몇 살 어린 정신질환 당사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 친구를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무엇 때문인지 수녀님은 그 친구를 나에게 보내셨다.

    그때 당시엔 정신장애인 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였다. 그 친구는 성당에 안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작은 읍내에서 입소문으로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쯤은 아마도 쉽게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때 성당 마당에서 나에게 가보라고 보내셨던 것 같다.

    그 친구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당사자라는 것을 알았고, 우리는 조금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 당시에 회복이 많이 되어 있었고,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언젠가 성당 친구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느냐고 물어보기도 해서 맞다고 대답했는데 별일 없었다. 그리고 더는 묻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과거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쯤으로 알았을 것이다. 물론 회복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 친구는 때를 잘 분별하지 못하고 아침 일찍 식전 시간에 불쑥 찾아와서 아는 척 인사를 했다. 그녀에 대해 당사자라는 것 외엔 아는 게 없었지만, 소외되고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은 느낌으로 잘 느껴졌다.

    두 번째 식전에 왔을 때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불쾌하게 여기고 내게 뭐라 하셔서 집으로는 오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 후로는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작은 식품 대리점에서 일했는데 가끔 그곳에 찾아왔다.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언니와 동생 사이로 지냈다. 사은품을 주기도 하고 잠깐씩 이야기도 나누면서 지냈다.

    어디 병원에 다니는지 주치의가 누구인지 물어보기에 말해 줬는데 나중에 그 친구도 내가 다니는 병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런 사이로 지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 친구를 가끔은 생각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고 조금은 궁금했었다. 생각해보니 못 만난 지 27년쯤 지나 있었다. 그리고 지난 추석 연휴 때 친정집에 갔다가 서울 올라오는 길에 친정 동네 마을버스를 탔는데 낯익은 듯한 여성분이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인사해서 난 누구일까 생각을 더듬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언니라 부르면서 예전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전보다 살이 빠져 있어서 변한 듯한 외모였지만 27년 전보다는 건강해 보였고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20년 동안 한 직장에서 꾸준하게 일했다고 하기에 퇴사하면 퇴직금이 많이 나오겠다고 말하니까 6개월마다 재계약한다고 했다. 청소일인데 정직원으로 채용해주면 좋을 것을, 20년이나 일했으면 나름 청소 하는 일은 전문가 일 텐데 계약직이라니. 못됐다고 말했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별로 불만이 없었다.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내가 장난스레 농담했다. "그땐 철이 좀 없었던 것 같았는데 이젠 철이 많이 들었네^^." 그리고 나 역시도 철이 없고 눈치가 없었다고 하면서 함께 웃었다.

    지금도 예전에 다니던 병원으로 다니는지 물어보니 ○○대 병원으로 다닌다고 했다. 너무 멀리 다니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그곳이 마음에 들어서 다닌다고 했다. 주치의가 마음에 들어서 멀리에 있는데도 그곳으로 다니는 거냐고 하니까, 주치의 없이 다니지만, 그곳이 마음에 들어서 다닌다고 했다. 나도 예전에 주치의 없이 다녔었고 이 친구가 주치의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사정상 주치의 없이 다닌다고 말했었다. 대형병원이다 보니 의사 선생님들이 때가 되면 이임하셨고, 학교에 다니면서 주치의 선생님의 시간에 맞춰서 갈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저 늘 무력한 상태에서 재발이 두려웠고, 괜히 잘못 말했다가 약용량이 늘어날까 봐 힘들어도 말 안하고 주는 대로 먹었다.

    우리는 내리는 곳에서 함께 내려서 헤어졌다. 난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기차역을 향하고 그 친구는 집으로 향해 가면서 서로 아쉬운 인사를 했다.

    언젠가 마을버스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하면서 서울 가는 기차에 올랐다.

     

    심리·사회적 장애를 겪은 사람들은 꾸준한 직장생활을 하면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일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한다. 관계 맺는 법도 배우며 자급자족함으로써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꿈을 꾸게 되고 거듭 성장하게 된다.

    그 친구를 보니 직장생활이 얼마나 큰 회복과 성장을 하게 하는지 보였고, 나 또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꾸준하게 직장생활을 해왔다. 잠깐씩 쉬어가는 때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은 나에게 많은 회복과 성장을 할 수 있게 했다.

     

    장기 입원은 회복의 반대 방향으로 퇴행하게 하는 잘못된 치료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나름 장기 입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겠지만, 약물 중심 치료이고 그것을 치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입원해 있는 동안 회복이 매우 느리게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기 입원이 너무 많고 장기 입원 된 사람들은 점점 신체적인 질병 관리가 잘 안되고, 정신적으로는 성장을 잘하지 못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세상에서 장기 입원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해도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것처럼 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을 것이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며 적응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단기 입원하게 해서 빠르게 사회적응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고 바라는 것은 인권 중심적인 치료다. 성장을 계속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치료는 당사자 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국가에서는 정신장애인에게 성장을 못 하게 방해하지 말고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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