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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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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우리는 존재했고,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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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들가을달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69회   작성일Date 25-08-10 18:20

    본문

    오래전부터, 아니 어쩌면 인간의 시초부터 우리는 존재해왔을 것이다.

    정상비정상이라는 구분이 필요 없었던 시대가 분명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광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격리되었고, 때로는 사회로부터 제거되었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배제의 구조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단지 인식이 조금 나아졌다는 착각뿐이다.

    사회는 여전히 우리를 분리하고, 정의하고, 분류한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우리의 병은 여전히 완치라는 말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향정신성 약물에 의존해야 했고,

    그 약물은 때때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나는 의문을 품었다.

    왜 약을 꾸준히 복용했음에도 자살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왜 감정은 마비되었는데, 인간관계는 오히려 더 엉망이 되었을까?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은 의료모델에 고착되어 있다.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낡은 인식은 여전히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 ‘F코드를 부여받은 사람들을 위험한 존재,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우리의 병은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두려움과 혐오의 이름표가 되었고, 언론은 마녀사냥의 단골 소재로 삼았다.

    사회는 점점 각박해졌고, F코드를 가진 사람들을 향한 제거의 욕망은 교묘하게 정당화되었다.

    우리가 아니라 사회가 병들었는데, 그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한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제 스스로 정신질환을 만드는구조로 변모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은 약물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5분에서 10분 남짓한 짧은 진료, 그 안에서 우리는 진단을 받았고, ‘코드가 부여되었다.

    개인의 맥락은 제거되고, 증상만이 남았다.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병원은 입원을 권하고, 결국 우리는 중증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낙인 아래 놓인다.

    1개월, 길게는 수십 년. 폐쇄병동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인생의 공백은 점점 커져간다.

    그리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돌아가 봐야 다시 입원, 다시 퇴원, 그리고 어느 순간 죽음.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며,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힐난했다.

    이제 정신건강은 더 이상 병원 중심의 의료화된 감옥에 투자해선 안 된다.

    약물의 최소화, 입원의 최소화, 그 자리에 지역사회 기반의 복지와 돌봄 체계를 세워야 한다.

    약이 늘어날수록,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 고립되고, 더 병들고, 결국 더 쉽게 죽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단지 인간답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고 싶다고 말하던 수많은 당사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존재는, 그들의 자유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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