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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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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나는 더는 활성기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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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늘맞이달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1,701회   작성일Date 25-04-23 15:36

    본문

    난 정신질환 당사자이고,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이나 화가나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그 화를 가라앉히고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환영을 본다. 약을 먹어도 환청과 환영은 완전히 사라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 씩 그들을 무시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대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약을 통해 그것들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분명 약은 나의 분노와 불안을, 내 환영과 환청을 낮춰준다.

     

    그것들의 보조로 나는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약은 만능이 아니고 약을 먹으면 생각이 멈추고 반응하기가 어려워지며 기억력이 떨어진다. 심지어는 이야기하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하려고 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생긴다.

    현저히 떨어진 기억력은 공포로 다가온다. 내가 나임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그래서 약을 거의 먹지 않는다. 내가 위험하다 싶은 상황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먹으려하지 않는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생각이 멈추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일상을 살아가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약은 보조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제거하지 않으면 잘해야 현상 유지를 도와줄 뿐, 우리를 보다 좋은 삶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서 삶을 빼앗아버릴때도 종종있다.

     

    많은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을 앓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약이 싫은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약을 먹는 것은, 나와 달리 약을 먹지 않은 게 더 위험하고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나도 그 점에 동의한다. 나처럼 괜찮다고 약을 먹지 않으면 어김없이 활성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약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약을 계속 먹더라도 최소한도에서 먹어야하고, 약 외에 다른 것들로 삶을 되찾아야만 한다.

     

    약이 만능이라면 약을 꾸준히 먹는 이들이 재발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린 약을 먹던 먹지 않던 활성기를 겪는다.

    혹자는 그렇기에 약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심해지면 먹는 진통제나 감기약정도로 여긴다. 어떤이 들은 그것을 꾸준히 먹어야 하고, 어떤 이들은 활성기가 오기전, 온 후에 먹어야 한다. 최소 일주일 이상말이다.

     

    활성기, 급성기. 뭐라 부르던 좋다. 내게 일상은 여러가지 장애물을 헤쳐가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급성기는 나를 잃어버리는 공포의 순간이다. 기억도 아득하고 생각도 무질서하며 뒤죽 박죽 섞인 시간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다주고, 어디로도 갈 수 없게도 만든다.

     

    종종 찾아오는 그 순간은, 작년 가을 무렵 또 다시 예고없이 찾아왔다. 아니, 스트레스로 잠을 못자고, 예민해지고 제대로 않지못하며 불안감에 휘둘리고 있었으니,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잡으려했지만 난 잡아 내지못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집 앞의 골목길에서 나는 저 어딘가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었다.

     

    난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난 밝은 곳을 향해가지만 어두운 곳으로 곧두박질 친다.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고, 무질서하고 난잡한 그림처럼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현실은 무엇일까? 나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 아닐까.

     

    사람만큼 거대한 까마귀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나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기억일까,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일까.

     

    방금 잘려나간 팔이 펄떡인다. 작두에 잘려나간 팔이 말을 건다. 나에게 너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한다.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더 또렷이 보이고, 더 또렷이 들린다.

     

    양손이 붉게 물들었다. 끈적한 피가 따스함과 비릿함을 풍긴다.

     

    난 어디에 있지난 누구지?’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뇌가 터질것만 같다. 혼란하고 혼탁하게 주물러진 뇌가 나를 괴롭게 한다. 그리고 세상 전부를 향해 분노가 치민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죽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외치는 환영의 목소리가 있다.

    내 잘못이 아니야. 난 그러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난 되뇌인다. 그리고 또 사정하듯 중얼인다.

     

    괜찮다. 괜찮아요.”

     

    몇 번이고 중얼거리다. 그 시끄러운 환영과 환청 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모든 장벽을 넘어 나에게 닿는다.

     

    통증이 느껴지면 괜찮지 않을까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한다. 그걸 누군가가 막는다. 그걸 막은 손에 일순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목소리가 닿는다.

     

    나의 동료다. 내가 믿고 신뢰하는 나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그곳은 안전하다. 그곳은 믿을만하다. 파도손의 사람들과 파도손은 나를 쉴 수 있게한다. 몇번이고 되풀이된 이러한 삶속에서 내가 숨을 쉬게 만들어 준 것은 파도손과 동료당사자들이다.

     

    그들의 말에 귀울인다. 환청이 나를 흔들어도, 환영이 나를 무너뜨려도, 나는 괜찮다. 나를 안아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쏟아내듯 두서없이 이야기가 터져나온다. 온몸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져도 나는 이야기한다. 엉망진창의 언어들을 쏟아낸다. 차도에 뛰어들거나 난간 너머로 뛰어넘고 싶어도, 그 손들이 나를 감싼다.

     

    나는 나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리고 나를 감싼 동료가 내가 괜찮아지기를 기다린다.

    잠깐은 이대로 생각을 놓아버리면 편할것 같다. 잠깐은 이대로 광기로 도망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더 이상은 괴롭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나를 맞잡은 손이 터널속에 갖힌 나를 끌어올린다. 내가 살아갈 곳은 현실이라고 알려준다. 기다리고 들어주고 위로하며 나의 생각을 긍정해준다.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될지라도, 그 말이 엉망진창일지라도.

     

    활성기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은 그리길지 않다. 곧 멀쩡해져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이상하다기보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나는 망가진 부속품이 아니다. 파도손의 나는 살아숨쉬어도 되는 존재다. 죽을 필요도, 사라져야할 사람이 아니다.

     

    그저 괴로운 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일 뿐.

     

    활성기의 당사자는 묶고 진정제를 놓는 것이 답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기도하다. 하지만 나의 활성기는 그렇지 않았다. 입원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지만, 동료들의 돌봄은 나를 망가진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

     

    제대로 기억도 못할 활성기의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고, 따듯하게 해주고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준다. 자극하지도 않는다.

     

    안전한 공간,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줄 뿐.

     

    활성기 당사자는 말이 안통한다고? 아니다. 안전한 장소에서 끊임없이 따스한 말을 건낸다면 이야기는 닿는다. 나의 혼탁한 세계를 꿰들었던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나는 그런 경험을 기억한다. 내가 모든 활성기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 지 안다.

     

    그렇기에 내가 활성기의 당사자를 대하는 것이 어렵지않다. 그저 들어주고, 그저 긍정하고, 그 사람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지도, 이상하다 여기지도, 긴장하지도 않는다. 급성기의 당사자는 예민해서 그 모든 것을 알아 자극받음을 안다.

     

    하지만 모두가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지는 못하고 동료를 더 자극하고는 한다.

      

    우린 정신질환 당사자지만 활성기의 당사자를 만날기회가 많지는 않다. 나의 경우는 파도손에 근무하기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곳은 당사자 단체이고 당사자가 절대다수이며, 법인 초창기는 그러한 활성기 당사자들로 시끌벅적한 곳이었으니까.

     

    활성기는 무섭지만,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막막함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동료가 있어, 형이상학적 세계에 나를 맞기지 않고, 현실에 살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그렇기에 급성기가 무섭지만, 무섭지만은 않다.

     

    난 이곳 현실에서 일상을 영위해 나간다.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했던 동료들의 손을잡고, 내가 손을 내밀며.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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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님의 댓글

    별이 작성일 Date

    멋진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 라는 책 제목을 어렴풋이 본 적이 있었던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좋은 점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부분 같다고 지금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