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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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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받았던 동료지원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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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시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49회   작성일Date 25-02-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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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오래전의 일이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땐 정신장애인이란 말도 없었고, 정신보건법도 아직 제정되기 전이었다.

     

    1986년 어느 늦가을에서 겨울 동안 입원했었던 때의 기억이다.

    밖은 잡초들이 말라서 생명을 다해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마른 나뭇잎 몇 개가 교과서 오 헨리 단편집-마지막 잎새를 생각하게 하듯 겨우겨우 버티고 붙어 있었다. 난 어느새 그 나뭇잎을 세면서 나도 생명이 다하는 것 같은 어떤 처절한 슬픔 같은 것을 느끼면서 죽음을 향한 지독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독한 고독의 시간을 지나서 겨울이 찾아왔을 땐 희망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없어져 버린 것 같았고, 기약 없이 끝없는 날수만 지루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 약을 잘 먹었는지의 철저한 검사 후에 낮잠을 자고, 점심 후 약, 그리고 간식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저녁 시간이 오고 또 약을 먹었다. 화장실엔 빨간 약들이 널려 있었다. 처음엔 저게 뭘까 궁금했었는데, 약을 검사 한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 사람들이 약을 혀 밑에 숨겨 뒀다가 버린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난 약을 버릴 줄을 몰랐었고, 약을 안 먹는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판단 능력이 떨어져 있었다. 입원 당시에도 상태가 너무 안 좋다 보니 처음엔 그곳이 정신병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천천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병원 관리자들은 약과 밥을 먹는 것 외엔 어떤 것도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곳은 그저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생각 없이 하루하루가 끝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던지.

    간혹 옆에서 입원 생활하는 또래 비슷한 사람이 이유 없이 때리면 무방비로 얻어맞기도 했다.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폭력을 당했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너의 것과 나의 것에 대해 구분이 안 되는 내가, 남의 소지품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고, 어떤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해서 말 그대로 심심풀이로 얻어맞기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표현하는 방법이 기억에서 삭제되었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런 사람이 어디 나 한 사람뿐이었을까? 아마도 마음의 상처, 정서적인 상처, 정신적으로 고통이 깊었던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을 것이고 그런 아픈 기억마저 삭제되어 돌아간 영혼도 많으리라. 불쌍한 영혼들이여! 저세상에서는 부디 행복하기를.

     

    어느 날 저녁에 관계자들이 나를 생으로 지옥에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침대에 묶여 있을 땐 아침이었고 어떤 말을 하려고 해도 말할 수가 없었다.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나니 더듬더듬 말을 했고, 그제서야 풀어주었다.

     

    어느 날부터는 죽음이라는 이름이 나를 꼭 데리고 가고 싶어 해서 좁은 창문 틈 사이로 떨어지려던 찰나에 남자 보호사가 구슬려서 나를 끌어내려 놓고는 세차게 뺨을 후려치는 바람에 얼마나 서럽고 비참하던지. 생각해보면 은인이기는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않냐고 묻고 싶다.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자존감을 바닥까지 짓밟아버리고서 매일을 살아가라고 약을 주고 먹게 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 안 되지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어 놓고 지옥과도 같은 병원에서 살아가라고 가둬두었다. 모순이 아닌가?

    그리고 분별력 없는 나를 어느 날은 격리해 독방에 가두어 버렸다. 독방이라는 의미도 모르고 있었던 나에게 그들은 치료와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이야말로 생각이 없었다. 묶어두고 격리하고 일상을 강제로 통제했다. 생각 없는 냉혹한 인간들이여! 도대체 아픈 이들에게 어떤 치료를 했다고 하는 것인지. 아무리 중증 장애인이라 해도, 조금의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모든 사람은 자연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이 살아있다. 그리고 치료라는 것은 더 나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더 나빠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때 그 관계자들은 내가 지금처럼 회복이 많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어느 날, 외부에서 평범해 보이는 손님이 와서 병동 사람들 모두 모아 앉혀놓고 자신도 그곳에 입원해 있었던 사람인데 약 잘 먹고 병원 생활 잘하면 퇴원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외부 사람들을 본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인데다가 아팠었던 당사자가 직접 병실 안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해주니까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그곳에 입원했었던 사람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 후로는 약도 잘 먹고, 밥도 잘 먹으려고 노력했고, 관리자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안 하려고 조심했다. 그리고 퇴원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댔다. 아마도 조르고 조르는 것이 귀찮아서 퇴원시켜 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던 그 여성분은 지금으로 말하면 절차조력인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그곳은 있으면 안 되는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매일 아침 회진 때마다 퇴원시켜 달라고 끝도 없이 졸라댔다. 퇴원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내가 그렇게까지 퇴원시켜 달라고 졸라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의 삶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병원에 비자의 입원한 사람들에게 더 나은 절차조력 서비스로 자기결정권을 지원하고, 권익을 옹호하며 정보를 제공하고 서비스이용자의 이야기에 마음을 다해 경청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비자의 입원한 이용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좀 더 일찍 퇴원하고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자의로 장기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심리사회적 장애를 겪은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도록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장기 입원한 사람들에게 퇴원하여 평범한 생활을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의지라도 있는 것일까?

     

    어서 빨리 제도가 변화되어서 누구라도 절차조력 서비스를 받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당사자는 물론 가족이나 나라 살림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당사자들은 그 누구도 나의 의지와 감정을 타인이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가둬두지 않도록 어떻게든 나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다시는 비자의 입원당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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