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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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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지원가의 일기(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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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97회   작성일Date 24-04-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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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지원하며 서비스 이용자와 이야기하다 보니 지나간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른다.

    서비스 이용자는 그분 나름대로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애증의 관계인 듯싶었다. 나도 나름 애증의 관계인 아버지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나는 애증의 관계였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발병할 당시 10대 때는 증오의 대상이었고, 20대 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가 30대 이후로는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너무 가난하게 살아오셨고, 무섭고 냉정하고 무자비한 할아버지한테서 엄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얼마만큼 자라서 새어머니가 들어오셨지만 친어머니만 못한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가정환경을 잘 버텨내고 적응해서 살아오셨었고, 결혼하여 5남매의 자식을 낳고 가장이 되셨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면 고함을 치며 혼내셨고, 가족들의 사생활에 간섭이 많고 잔소리가 심하셨다. 무엇을 조금만 잘못한 것 같으면 아버지한테 혼날까 봐 무서워서 떨게 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은, 어느 땐 어릴 적 힘들게 살아오신 이야기와 동네 친구분들(나이 차이가 5살 이상 차이가 나도 친구처럼 지내셨다고 한다.)과 어울리며 짓궂게 놀았던 이야기, 계모 밑에서 겪었던 서러움, 매우 가난해서 못 먹고, 못 입고 살아오신 이야기 등등 귀가 솔깃한 이야기도 종종 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는 나에게 정서적으로 인자하고 자비로운 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무자비하기까지 한 아버지로 기억이 되어 있는 건 왜일까?

    아버지는.   자식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식들이 무엇이 불편한지 잘 살피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셨던 것 같다. 우리들의 부모 세대가 대부분 가난하고 굶주리며 살아오셨고, 난리를 겪으며 고달픈 날들을 살아오셨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겹게 살아오신 가장의 무게가 어떠셨을지 생각해보면 너무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셨던 것 같다.

    막노동 일이 끝나고 집에 오시면 가끔 엄마와 말다툼하시고 술기운에 자주 죽고 싶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땐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일터에서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곤란한 사정이 있었거나 삶이 너무 고달파서 한계를 느끼셨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며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결혼하고 첫 아이 생기기 전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꿈에서 돌아가시는 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도 슬프지 않을 것 같고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와 정반대로 꿈속에서 하염없이 울었고 통곡했으며 아버지께 미움을 품었던 생각들에 대해서도 한없이 후회했다. 그랬는데 깨어보니 그것이 꿈이었다. 꿈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꿈이어서 너무 감사했다. 그 후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여전히 있었지만.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한()을 이야기하셨을 때도 아버지는 누가 뭐라 해도 내 아버지니까 라고 말씀드렸고 미워할 수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병고로 누워 계셨을 때,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내가 미워 하는 줄 알고 "나 미워하지 마라. 내가 뭘 잘못했니? 난 잘못 없다." 그러셔서

    저렇게 누워 계시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랴 싶기도 하고, 속상했던 지나간 일을 말해서 무엇을 하랴 싶어서, 그리고 아기 때부터 고생만 하고 살아오신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서,

    ". 아버지. 아버지는 잘못이 없어요. 우리 어렸을 때부터 고생만 해오셨고, 또 농사지으시면서 막노동으로  우리 키워 주시느라고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말씀 드렸던 것 같다.

    그렇다. 그런 아버지께 난 지금도 원망을 드릴 수 없다. 그저 연민이 남아서 아버지를 위해 가끔 기도를 드린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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