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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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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273회   작성일Date 23-12-1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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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11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개최했던 신의목소리 전시회가 있었죠.

    그곳에 전시되었던 전영신 작가의 아트북에 수록된 글 중 이아영님의 글 입니다.


    < 본 글의 무단 복사, 사용, 배포 등을 엄격히 금합니다.@파도손>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이아영



    들어가며


    영신의 새로운 작업에 글쓰기로 참여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문득,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와 같은 광범위한 대상이기 보다 나를 포함해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사람들, 이 글에 등장하는 나의 베프(best friend)’ 영신과 은주, 그리고 100여년 전의 인물 바르부르크이다.


     

    1_은주 그리고 영신


    2001년 여름, 나는, 이제와 생각해보면 감행한 이유조차 모호한, 불어 어학연수를 위해 파리에 두 달간 머물렀다. 나의 기숙사 룸메이트는 자신이 다니는 어학원에 나와 같은 대학을 다니는 언니가 있다며, 동갑내기 은주를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서로를 처음 만난 날, 은주와 나는 밤새도록 우리가 함께 알고 지내던 그 친구에 대한 평들을 늘어놓으며 친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교양 수업도 듣고, 자주 함께 놀러 다니면서 가장 친한 대학 친구가 되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복식사가(fashion historian)가 되겠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꿈을 안고, 그에 걸 맞는 애매한 태도로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영어 과외로 용돈 정도 벌어서 쓰는 잉여적 청춘으로 지냈다. 그런 나에게 은주는 아트선재센터의 도슨트로라도 경력을 쌓아보라는 제안을 했다. 2004년 김소라, 김홍석은 아트선재센터에서 하나의 전시 제목 하에 각자의 개인전이 연결되는 전시 안타르티카(ANTARTICA)를 개최했는데, 그 전시에 도슨트로 참여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컨템포러리 아트를 경험했다. 그 시절, 나는 스스로를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이상주의자로 느끼고 있었는데, 현대미술은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 하게, 게다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내가 아니라 이 사회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 현대미술의 메시지가 나에게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 때의 나는 현대미술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개인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심어 놓는 동일한 유형의 욕망들과, 대다수가 경험하게 되는 좌절감으로부터 탈주하게 하는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의 고착된 가치체계 판타지 를 부수고, 대안적이고 새로운 판타지를 제시하는 현대미술의 속성이 나에게는 구원처럼 다가왔다.


    현대미술이 나에게 구원과도 같았던 보다 실질적인 이유는 그것이 나의 직업 분야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1년이 넘도록 진로에 대해 방황하던 나는, 2004년 몇 회의 도슨트 활동 이후, 2005년부터 현대미술 관련 일을 업으로 하게 되었으며, 특히 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관련 공부와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내가 미치도록 열심히 하고 싶은 그 무엇을 발견했다는 것, 그 자체가 구원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예술(현대미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온 세상이 동일한 것을 욕망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미술은 그 세계의 비정상성에 대해 일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힘을 통해 권력 시스템을 포장하고, 유지시키는 위선적인 모순도 지니고 있었다. 현대미술의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음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쾌감은, 스스로가 그 세계에서 유효한 목소리를 낼 수 없음에 대한 자괴감과 겹쳐질 때가 많았다. 어느새 나는 현대미술을 향유함으로써 현실세계로부터 탈주하는 관점을 얻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애호가가 아닌 다른 입장에 서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현대미술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된 나와는 달리, 은주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그리고 나와 같은 대학의 회화판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파인아트(Fine Art)를 수학한, 미술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젊은 아티스트였다. 그 친구에게 현대미술이란 무엇이었을까? 은주는 만나이로 30살이 되기 하루 전, 자신의 20대 마지막 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듬해 있었던 그녀의 추모전은 내가 기획한 첫 번째 전시가 되었다. 은주는 회화에 대한 애착이 컸으며, ‘페인터(painter)’로 불리길 좋아했다. 그녀에게 그림 그리기는 구원과도 같은 예술 행위였을까? 은주의 시니컬한 비판이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남긴 적도 많았지만, 그녀의 비범한 판단은 대체로 옳았다. 그런데 말기암 환자였던 2008-9년의 은주는 단지 살아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 나에게 얘기해주곤 했다. 나는 그녀가 전하고자 한 그 의 절실함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다만, 그 때는 은주를 너무도 잃고 싶지 않았기에, 나도, 그녀도 신에게 기대고 있었다. ‘구원은 예술이 아니라 신에게 있었다.

     

    은주의 죽음은 30대를 맞이한 나에게 20대 청춘의 시절이 끝났음을 상징하는 사건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때의 상실감은 생각보다 오래가진 않았지만, 은주는 내 인생 여정에 이후로도 여러 차례 소환되었다. 그 중 하나가 영국 유학이다. 은주는 런던대 골드스미스 컬리지(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파인아트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녔고, 2008년 졸업했다. 그리고 2010, 은주의 추모 전시를 준비하던 시기만 해도 나는 그녀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전공은 달랐지만, 2011, 나는 같은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학부에 이어, 은주와 또 다시 동문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학교에서 영신을 만났다.

     


    2_영신 그리고 바르부르크


    2011, 나는 런던 한인 교회의 학교별 소모임에서 영신을 처음 만났고, 현대미술이라는 공통분모때문에 같이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친해졌다. 파인아트 전공 학부생이었던 영신은 작업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고, 동시대 미술 트렌드나 최신 담론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려 하였으며, 아티스트로서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 자본주의 상황이나 중동의 민주화와 같은 국제적 정치 경제 이슈에 관심을 가진 듯했는데, 이는 동시대 주요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살펴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심이었을 것이다. 영신은 그러한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초국가적 삶을 사는 현대미술가의 모습을 자신의 내일이라 믿으며, 런던에서의 시간을 지나온 건 아닐까?


    2013년 석사를 마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한 문화예술기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2015, 영신도 학교를 마치고 귀국했기에, 우리는 다시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후, 그녀는 노르웨이로 유학을 떠났고, 2018년 졸업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신은 내게 기이한 분장을 한 자신의 사진을 새벽 3시경 메시지로 보냈다. 나는 그 이미지와 메시지가 전송된 시간 때문에,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고, 그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삭제해버렸다. 이후, 영신은 자신이 입원했으며, ‘편집조현병으로 진단받았음을 알렸다.

     

    영신에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 즈음, 나는 독일의 미술사학자이자 현대적 시각문화 연구 및 이미지론 분야의 토대를 구축한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에 관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참여한 이 전시 때문에, 나는 영국에서 수학할 때 처음 접한 이후론, 줄곧 잊힌 존재였던 그를 이해하는 데 한참 애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 전시 참여를 결정하고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다나카 준(田中 純)의 저서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김정복 역, 2013)이었다. 바르부르크는 말년에 자신의 연구 활동을 압축하여 도상만으로 표현한 <이미지 아틀라스 므네모시네(Der Bilderatlas Mnemosyne)>를 만드는데, 이는 미술 작품 도판, 서적, 잡지, 신문 광고 등의 사진 스크랩들, 성좌표, 우표, 카드 등 갖가지 이미지를 검은 패널에 배치한 것이다. 바르부르크는 <므네모시네>를 통해 역사를 공간화하여 탐색하는 법을 발견했다. 그는 이미지 변형의 역사를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하는 상태에서 도해하는 시도로, 각 이미지의 의미가 인접 관계를 통해 규정되도록 하였으며, 역사적 전후 관계를 인지한 후 관계 지어진 이미지도 패널 위에서는 동시성에 따라 해석되게 하였다. 정신분열증을 진단받았던 그는 자신의 혼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거기에서 몇 번이고 서로 반사하고 있는 역사의 거울 이미지를 통해 유럽 문화의 근원에 다가가려하였다. 바르부르크가 선형적 시간성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하며 인접되는 이미지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망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광기가 그의 지성과 얽혀지면서 당대의 학문적 틀을 넘어서는 혁신적 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그의 망상들이 현실 세계에서 유의미한 성취로서 작동되는 그 세계에는 인류의 망상이 작동된 예술이 있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에게 예술은 구원이 아니었을까?


    바르부르크는 여전히 내게 너무 어려운 주제이지만, 당시에는, ‘베프영신이 갖게 된 정신질환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쿠션이기도 했다. 영신의 망상들,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을 벗어난 경험과 사유들이 이 세계를 낯설게 보게 하는 현대미술의 속성에 닿는 초능력의 발현이라면, 영신은 아티스트로서 필요한 초능력을 얻게 된 것은 아닐까?




    3_영신의 망상들


    영신은 자신의 작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그녀가 쓴 망상들을 읽게 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경험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를 자신의 기억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신은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글을 스스로 망상이라 했다.

     

    영신의 기억혹은 망상은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가 뒤엉켜 있었다. 영신이 입원했던 노르웨이의 한 폐쇄 병동, 환자 공유 공간의 바닥에는 그녀가 기억하는 무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신은 그 무늬가 자기증식적 패턴으로 북유럽 신화의 괴물인 트롤(Troll)들로 그려지는 환영을 보았고, 그 우연에 담긴 질서에서 숭고를 경험하고, 신의 존재를 느꼈다(#자기증식적 패턴). 유튜브로 유명 예술가들의 강의 동영상을 보는 평범한 일상은, 영신의 세계에서는 그들과의 쌍방향 신경망 소통이 가능해져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예술가적 대응부터 소외계층 문제에 이르는 이슈들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된다(#유투브). 또한, 영신의 사유는 인류 이전의 생명체, 인간의 근원에 이르는 원시의 시간에 닿기도 하며(#송과체),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의 신들, 즉 세상 모든 종교에 닿기도 하여, 그 모든 신들을 우주적인 하나의 유기체로서 보고, 이 신의 질서 안에서 지구상 모든 생물의 평등을 꿈꾸기도 한다(#우주적 신). 영신은 ‘5G’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지구상 모든 동식물들이 초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이며, 이성중심주의의 현대사회의 병폐를 극복할 대안으로, “신낭만주의의 이상 세계를 ‘5G’의 디지털 시스템 장치들로 재현하면, 모든 인권, 동물권이 존중받는 보다 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5G). 그리고 또 하나, 영신의 세계에서,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고르기, 음료 마시기, 담배 피우기, 향수 뿌리기, 그리고 옷 입기와 선글라스 착용하기 등의 일상적 행위는 섬기는 신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나 예술적 행위(퍼포먼스)로 전환된다(#선택된 음식, #옷장, #선글라스).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 어른을 위한 유령 이야기가 그러하듯, ‘광기로 인식했던 세계는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시공간을 연다. 영신이 글쓰기로 우리에게 열어준 그녀의 망상 속 세계는 타인, 자연을 포함한 타자, 그리고 신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될 수 있는 이상적 낙원처럼 보인다. 편집조현병을 갖게 된 영신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다른 존재와 무한대로 연결 확장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일까? 모든 시공간, 존재와 연결될 수 있고,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영신에게 세상은 욕망의 대상이 아닌 신비로운 낙원이자, 예술가의 무대이고, 신과 교통하는 성전이 되어 있었다.

     


    4_영신의 글쓰기에 대하여


    영신이 자신의 망상들을 글로 기록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라 했을 때, 글보단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더 훈련돼 있는 그녀가 왜 글쓰기를 선택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신이 자신의 작업에 글쓰기로 참여하게 된 이들에게 광기, 예술, 글쓰기(김남시 저, 2016)를 읽도록 요청한 것은, 바로 그런 의문을 갖는 이들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주는 것이면서, 궁극적으론, 자신을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해시키려는 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광기, 예술, 글쓰기1광인의 글쓰기에서 저자 김남시는 자신의 내적 확신과 쓰여진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넘어서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했던 사람들로서 광인들과 그들의 글쓰기를 재조명한다. 영신은 그 중 독일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이던, 법학박사 다니엘 파울 슈레버(Daniel Paul Schreber, 1842~1912)에 가장 공감한 듯하다. 그는 1884년 신경병 발발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02년 퇴원할 때까지 자신이 경험한 착란과 환상, 편집증적 망상을 글로 기록하여, 회고록을 출간했다. 슈레버의 글쓰기에 대해 논하면서 저자는 광인들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광인들이 자폐적 세계에서 자신만이 접할 수 있는 초월적 메시지를 통해 얻는 진리는 그 자신만이 아닌 인류 전체, 그리고 미래의 인류까지 연루되어 있기에, 그들은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받은 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메시지를 그 메시지의 수신자여야 할 인류 전체에게 주는 메신저이고자하며, “이런 메신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이 택할 수밖에 없던 수단이 글이자 글쓰기라는 것이다. 영신도 지난 5년 여의 투병 생활 동안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사이 교류 외에, 공적 만남이 수반되는 사회적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망상들에는 인류 전체와 모든 생명체가 조화를 이룬 보다 평등한 이상 세계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영신은 망상들에서 사유 강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역시 슈레버의 경험과 연결된다. 슈레버의 적, 광선들은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의 모습으로 쉼 없이 질문하고, 명령을 내리거나, 조롱했고, 그의 신경은 이에 응대하느라, 사유가 강제되었다. 영신도 슈레버처럼 내부로부터 생겨나 끝없이 사유를 강제하는 말들을 경험했을까? 그리고 슈레버처럼 이를 극복하는 나름의 방책을 고안해냈을까?

      

    영신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려는 행위이자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기 위한 행위인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현실 세계에서 유효한 목소리로 발화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지금의 영신에게 예술은 구원이 아닐까?

     


    나가며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 전에, 그러한 상태에 대한 온당한 정의는 가능할까? 정신병리학적으로, 정신질환 상태에 대한 정의가 있고, 이를 진단받은 사람들은 치료를 받게 된다. 이들의 환각, 환청, 망상 등의 경험은 의식의 지배를 넘어선 무의식의 영역이 억압을 뚫고 나오게 되면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세계이자,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성의 일부이다. 예술은 이러한 일반적 세계에서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해왔다. , 은주, 영신, 그리고 바르부르크에게 예술은 구원이었음이 틀림없다.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 가치들, ‘정상성에 대하여 우리 대부분은 욕망할 뿐, 부합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결핍과 문제 속에서 투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예술은 정상성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노출해왔고, ‘정상성의 가치를 제시하는 권력에 예술적 방식으로 대항해왔다. 그래서 예술우리에게 구원이었던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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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님의 댓글

    Star 작성일 Date

    정말 멋진 글이네요! 오래간만에 다시 찾았지만 저 외에도 활동을 계속 하시는 분들이 있어 정말 기뻐요.
    ....유년시절부터 가정을 비롯한 한국 사회에 대한 고통과 분노가 심겨졌다시피 했고, 또 그런 불안정한 정서로 인해 왜국 문화를 일말의 비판적 절차 없이 수용하게 된 과거도 과거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입니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보통 자신의 순수함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 학위를 따기 위했던) 시네마 공부가 아닌 이상은 도리어 소극적이 되어서 기피하곤 했는데
    ...오래간만에 저 외에도 사회에 대해 엇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알게 모르게 절 피곤하게 몇십년 넘게 괴롭혔던 턱관절-안면장애도 싹 낫는 기분입니다. ..정말 인간은 피폐하거나 궁지에 처할수록 육체의 무엇보다는 정신적 기재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선 나름 법륜스님과 정토불교대학에 들게 된 연유 외에도 불교를 배우려 하는 게 맞다고 느낍니다. ...일본 꺼를 베껴오다시피한; 제 트위터 로고는 잘 모르겠지만요ㅎㅎ

    .....고독사 뉴스를 접할 수록 누군가의 죽음은 그저 비극이라 여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시간과 인간의 본성이란게 원래 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원한 게 아니기 때문 (temporary) 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었어도 너그러워 질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그게 본디 인간사 본질이 아닐까요.

    부디 따뜻한 성탄절 잘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