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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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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행복한 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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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들가을달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516회   작성일Date 23-07-22 00:38

    본문

    할 것도 없기에 무엇이라도 한 번 써보기로 한다

    나는 상세불명 양극성 정동장애와 성인 ADHD를 진단 받았다

    사소하지만 문제가 있는 삶은 올해로 26년을 맞이 했으며,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게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래 전부터 알콜 의존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일찍 이혼하여 내 기억에 큰 흔적을 남기지 않은 아버지, 마찬가지로 잘 살아있는지 모르는 동생 하나.

     

    남들보다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까? 자주 의문을 품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고, 괴롭기만 했다. 시작점이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짐작만 할 뿐.

     

    산다는 것은 때론 내 병력을 온전히 숨겨야만 했으며, 주체 없이 살아온 나의 비참하고 쓸모없는 삶의 절반을 송두리째 지워내 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느낀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고, 큰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것을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꼬락서니가 삶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숨을 쉬어야 하는 걸까, 왜 밥을 먹어야 하는 걸까, 어찌하여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만 하는 걸까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의문과 불신은 이 삶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때론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붕 뜨는 기분을 느낀다. 당사자와 비당사자 사이의 선에 걸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분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모호한 정체성을 어떻게 포장을 해야 할까 고민한다. 글을 써본다면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과거에 미처 보지 못했던 날 마주할 수도 있다는 얄팍한 기대감과 동시에 오랫동안 손을 놓고 내버린 수준 낮은 문해력을 마주해야 하는 공포감도 덮쳐왔다


    하지만 이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며 시간만 죽이겠지. 사실 솔직한 마음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죽은 지 살아있는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모름지기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그 구실을 해야만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해야 하는 것들은 있다. 남들보다 한없이 버겁지만 늘 그랬듯이 견뎌내 보기로 한다.

     

    병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기억이란 참 덧없고 어려운 존재다

    무던히 살아가던 여느 날, 나와 같이 룸메이트로 생활했던 언니와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불현듯 말했다,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행복한 날이 와.

     

    누구나 말해줄 수 있지만, 그 날따라 유난히 위로가 되던 말. 같은 당사자가 건네준 거라 그런 걸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정처 없이 살아가는데도 행복한 날이 올까? 변하지 않을 거 같다고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숨을 쉰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오후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나를 향한 비난이 아닌, 격려와 칭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이 행위가 마냥 불편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변한다그게 나쁘든 좋든


    멈춰있다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당시에 내가 선택한 생존방식인 게 아닐까 싶다

    변화는 멈출 수 없고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아주 천천히 변한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면 달라졌으려나

    그랬다면 병의 증상으로 한계를 정해두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한다는 게 의미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변화가 두렵고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때와 다르게 간절히 피하고 싶다거나 숨이 막히는 감각을 느끼며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고 무섭다. 라는 공포감에 짓눌리지 않는다.


    그래,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쁘지 않다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고 싶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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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님의 댓글

    Star 작성일 Date

    어렸을 적 얘긴데요...
    저희 엄마가, 저랑 그거 유치원 때 탤런트 쇼 녹화해 본 영상을 보다가 '저 애들은 날씬한데 너만 뚱뚱하네' 이런 발언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 모습을 보니까 혼자 공주병에 걸려선 너무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 이후부터 아마 '성질나쁜 아이'로 직행해 버린 것 같습니다.
    크면 클수록 눈에 그게 보이더라구요. '좀 이상한 아이' 아니면 그냥 '단정하고 예쁘고 인기 있는 아이' 그게 탁 갈려요, 제 학창시절 기억으로는. 저는 (당연히) 전자였고;

    ...학교에서라도 좀 더 모던한 방책이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조금 더 행복했을 텐데, 친구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그땐 그럴 사정이 못 됐지요.

    저도 잘못된 체제 속에서 고통받는 건 싫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유튜브로나마 역사채널 파고 있는 거겠고.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공부를 전혀 못 했던 사정에선, 영상 자료라도 인간들이 뭐했나 알아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되지요. 흥미롭기도 하고요.

    '안 배우면 바보축구 된다' 는 논리는 그거는 드라마 중독에다 늘 같은 반찬만 하실 줄 알았던 저희 외할머니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이해 못 해주는 것도 마찬가지. 어릴 때 자기 자존감으로만 똘똘 뭉쳐 있을 때에는 인식하질 못했는데, 생각보다 그거보다 더 끔찍한 건 없더라구요.

    더 말할 것도 없어서 여기서 끊겠습니다. 26세면 아직 젊은 편인데 이러저러 재밌는 직업도 시도해 보시고 열심히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