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로그인 회원가입
  • 커뮤니티
  • 당사자주의
  • 커뮤니티

    당사자주의

    아빠를 볼 수 없었던 20년의 시간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물속에사는요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297회   작성일Date 21-02-08 17:23

    본문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참 멋진 분이시다. 엄마를 만날 때면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학창시절엔 공부도 참 잘하셨다. 명문인 경기고에 입학하셔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으셨고 서울대 사회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셨다. 학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만큼 열심히 사셨던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셨다. 나는 그런 아빠를 4살때부터 볼 수가 없었다.

     

    4살 때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엄마가 가출하셨고 아빠는 재발하셨다. 재발하신 아빠는 집 밖으로 나가 길을 헤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댁에서 다같이 살던 당시, 나와 오빠는 안방에서 TV를 보며 놀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사라진 아빠의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시고 엄마가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될때까지 아빠를 볼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와 오빠는 아빠의 소식조차 접할 수가 없었다. 병문안은 엄마와 할아버지만 가셨다. 고모, 작은아빠도 아빠를 찾아가지 않으셨고 우리가 충분히 클때까진 아빠를 만나지 않게 하는게 낫겠다는 뜻을 모으셨다고 한다. 한번은 초등학교를 다닐 어릴적 오빠와 함께 엄마에게 아빠는 어디계시는지 여쭈어봤다가, 아빠는 마음의 병이라는 말씀만 하시고 우시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우리집에선 아빠 얘기를 꺼내는 게 무언으로 금기시되었다.

     

    그렇게 아빠와의 추억 하나 없이 나의 학창시절이 지나가고, 대학생이 되어 아빠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엄마는 아빠가 약이 독해서 이가 많이 빠져있으시다고 충격받을 나를 걱정하셨다. 하지만 내겐 "공주님 차타세요"라는 아빠의 한마디 만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그 말을 듣고 나의 어린시절 아빠의 부재를 몽땅 되돌려받는 기분이었다. 2주간을 누가 말만 걸어도 눈물이 나왔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먹먹해진다.

     

    아빠는 늘상 퇴원을 원하셨고 우리가 어렸을 적 우릴 몹시도 보고싶어하셨다고 한다. 지금의 아버지는 너무나 기능이 퇴행되셔서 공중전화의 버튼 누르는 것 조차 힘들어하신다. 만약 아빠가 우리가 어렸을 적, 그 때 퇴원하셨다면 지금만큼 기능이 퇴행되시진 않으셨을 것이고, 우리 가족에겐 따뜻한 추억이 있었을 거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고모와 작은 아버지 이지만, 그 선택만큼은 참 어리석은, 무책임한 선택이시지 않으셨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우리 가족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정신장애인은, 특히 조현병 환자는 위험한 예비 범죄자라 칭한다. 시설에 가두어야 하고, 병원에 감금해야 한다. 그들이 조금만이라도 정신장애인에게 관심이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인득 같은 위험한 살인마는 우리들 중 손에 꼽아도 부족하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사회적 낙인에 찍혀 병원에 감금된 채 수십년을 살거나, 지역사회에 살더라도 고립되어 숨어서 살게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사망한 사람 중 38%가 정신장애인임을 아는가? 누군가는 폐쇄적 병동의 특성 때문이라 하고 누군가는 정신질환약의 위험성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고쳐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신질환 폐쇄병동 40% 축소에 대해선 말들이 많다. 진정 이 사회에 안인득 같이 위험한 인물이 생기지 않으려면 병원은 조현병 환자가 가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신병동에서의 기억이 악몽으로 남아있는 한 그 누가 조현병 환자가 되어도 입원을 피할 것이고, 사회에서 고립될 것이고, 그 착했다던 안인득처럼, 악마로 변해버릴 것이다. 진정 이 사회를 위한다면 정신병동은 집보다 편안해야 한다. 감금 되는 것이 아니라 쉬다 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것의 시작이 정신병동 병상 축소이다. 장담하건대, 정신병동이 가고 싶은 곳이 되고 사회의 편견과 낙인이 사라진다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그 많은 조현병 환자 범죄 기사는 씨가 마를 정도로 사라질 것이다.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나의 아버지 같이 평생을 병원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