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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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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가 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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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은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8,847회   작성일Date 19-04-1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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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가 치료다>


    더 이상 정신병자를 병원에 보내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정신병자에게 약을 먹이거나 가두어놓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타자화의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타자화의 사회란 약자를 분리하고 고립시키는 사회다. 장애인 시설, 정신병원, 외래 정신과. 나는 앞의 두 가지 것을 폐지하고, 남은 외래 진료마저 저버리는 사회를 꿈꾼다.

    정신병자가 무서운가? 무서운 척 하지 마라. 정신병이 있으면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흔해빠진 편견과는 다르게, 오히려 정신장애인은 범죄를 당하기가 쉬운 약자집단이라는 진실이 있다. 또한 정신장애인의 자살률은 비당사자의 자살률보다 8배 높다. 2배, 3배가 아니고 8배다. 혹자는 이를 두고 "병 자체가 문제"(나는 이것을 "미쳐서 그래" 라고 부른다)라든지 "병식 없음"(미쳤는데 치료 받을 생각도 없는 게으르고 무서움)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을 두고 감히 말한다.
     
    당신은 정신장애인이 무섭고 치료 받았으면 하는가? 당신의 사회 인식 기능은 낡고 헐었다. 혐오로 얼룩진 "노오력" 신화를 현실로 알고 지껄인다. 진실을 보는 눈이 빵점이다. 아니면 고의로 만만한 타자를 짓누르는 것일 테지.

    병원 시스템은 격리와 분리가 근간이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시설이 장애인을 소외되게 하고 갖은 범죄에, 자살에, 그러한 현혹에 더 취약하게 한다는 진실이 있다. 정신병원도 마찬가지다. 정신병원은 정신병자를 돕는다는 취지의 공간이 아니다. 폐쇄병동이든 외래든 근간은 같다. 격리와 분리다. "병원에나 가라"는 악담이 악담으로 가능한 까닭이다. 개인의 의지와 "병식"으로 어렵지만 가능한, 사회/지역사회의 도움과 무관한 완쾌. 이것을 무어라 부르면 딱인가?

    그래, 바로 그 "노오력" 노력 신화다.

    정신병원과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으로 하여금 공공 서비스를 받거나,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일을 못하게 한다. 개인이 병원과 시설에 들어가 해결하면 끝나는 문제니 말이다.

    그렇다면 외래 진료라고 멀쩡한가? 시설은 실패한 개념이며 반인권적이다. 폐쇄병동과 강제입원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두말할 것이 없다. 정신병원에 외래 진료를 11년째 받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작금의 정신과 외래 진료 시스템에도 주고 싶은 점수는 빵 개다. 나에게 1차로 진단의 낙인을 찍고 2차로 약물 복용자 낙인을 찍은 후에, 돈을 가져가고 약을 주는 것 말고는 내 인간 권리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자살하고 싶은 이유가 온전히 병증에 있다고? 나는 정신과와 관련되었을 때만 갑자기 사회적 존재가 아니게 되는가?

    당장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자살예방을 하겠다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24시 전화 센터를 짓고 싶은 걸까? 포토샵으로 포스터를 잘 만들어 뿌리고 싶은 걸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시설과 강제입원을 없애고 의료시설을 약물치료와 진단에만 국한하지 않게 하는 사업은 없는가? 있다면 얼마나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인력을 충당하고 있는가? 그 영향이 지금 이 사회에 존재한다고 보는가? 자살률이 8배에 다다르는데 OECD 자살률 1위 국가로서의 책임감은 1/8배 국민에게만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섬을 달라. 자유가 치료다. 국회에서 들고 있던, 파도손의 피켓에 적힌 문구. 나는 그 말이 언제쯤 비당사자의 사회에 절절히 읽힐 순간이 올까 싶다. 그들의 가족이 그래야 그럴까. 친구가 그래야 비로소 눈물이 날까. 아니다, 당신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의 그런 당신을 지지하기 위해, 자유를 말하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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