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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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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각자의 세계, 그리고 모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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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헤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8,655회   작성일Date 19-03-22 19:26

    본문

    질환을 부여받다.


     저는 서른셋의 나이를 가진 양극성 우울장애 당사자입니다. 분열 정동 장애의 이름을 가졌던 적도 있고, 불안 정동장애의 이름을 가졌던 적도 있습니다. 연극성 인격 장애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던 적도 있었죠.

     십년 정도의, 정확히 언제인지도 기억 안 나는 기간, 저는 변함이 없었지만, 병명은 변해갔습니다. 의사마다 저에게 주는 병명은 달랐습니다. 주로 보는 것이 감정인지, 환시인지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 같더군요.

     당사자들은 그렇게 의사를 통해 질환을 부여받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자신을 이루는 조그만 조각 중에 하나임에도, 당사자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려 합니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줄곧 들어온 것이 그것이기에 벗어나지 못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러한 것이 아니며, 저 또한 거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음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그저 저일 뿐입니다. 당신이 당신이듯, 저도 저일 뿐입니다.

     의료모델이 제시하는 당신의 질환을, 나의 질환을 놓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남을 받아들이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증상이 일상을 힘들게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증상이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당신 ‘개성’일 뿐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당사자의 이야기에 긍정하기.


     자신을 받아들였다면, 이제 다른 당사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당사자의 현실은 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비슷할지라도 다를 겁니다.

     태양을 피해야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전파를 받아 아프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또 어떤 이는 세상에 숨겨진 메시지를 통해 지구를 지키거나,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그들의 진짜 세계죠. 그걸 약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약을 강제하지 말고, 의료모델이 제시하는 질환으로 정의하지 말아주세요.

     사실 저 또한 그러한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저는 의료모델의 시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사자들과 의견충돌이 참 많았습니다. 그 부딪힘 속에서 깨달은 건, 제가 의사의 말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린 그저 당사자의 이야기를 하면 되고, 우린 그저 당사자로서 있으면 될 뿐입니다. 우릴 괴롭혀온 전문가의 논리로 자신을 억압하고 대변하고, 타인을 가르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랬고, 센터에 길든 상당수의 당사자도 그렇게 하고는 합니다.


     우린 이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주라는 건,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이 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관대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타인에게 비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점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 마세요. 그리고 할 수 없다 단언하지 마세요.

     자신을 온전히 자립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 상황도, 정서적인 불안도, 아이 같은 태도나 무책임함도, 모두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걸 약으로 해결하려 들거나, 센터나 병원으로 도망가는 것은 그다지 추천할 법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약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고 스스로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면, 약을 거의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경험들은 다른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세요.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속에 새기세요.

     당신은 자신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곧게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좋습니다. 조금씩이라도 괜찮습니다. 느리다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귀 기울이고, 똑바로 자신을 마주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은 체 자립해 나가봅시다.

      자신으로서요.

     
     당사자의 주거.


     자신을 객관화하고 다른 당사자들을 긍정하고, 약을 줄여가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찾을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 대부분은 수급자의 상황이고 장애등급이 나온 상태일 겁니다. 그럼에도 독립된 주거 공간이 없다면, 가까운 주민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아 주거 취약계층으로 도움을 얻어 일단 방을 구한 뒤 영구 임대아파트를 기다려 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는 독립된 세대여야 하고, 석 달간의 월세 혹은 고시원의 영수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막히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관념이 제대로 서있지 않아서 돈이 안 모이는 경우도 꽤 있고요.

     그럴 땐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애등급을 받은 상태라면 좀 더 수월하겠죠.

     하지만 저는 장애등급을 신청했지만, 두 번이나 등급외가 나왔습니다. 장애등급을 받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진 모양이라 장애등급을 가지지 않은 당사자가 저처럼 조건부 수급자로서 살아갈 때는 답답한 점이 많이 보이기는 합니다.

     그나마 저는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살며 돈을 어느 정도 모아놓은 상태고,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기에 그리 답답하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더라도 장애등록이 조금 더 수월했으면 더 좋았겠죠.

     독립 주거를 바란다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야 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 같은 케이스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주민센터, 그리고 인터넷을 오가며 정보를 모으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수 있지만, 또 답답할 수도 있을 테지만, 방법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당사자는 온전한 자립을 했을 때, 더 정서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자립은 주거문제만이 아니라 진짜 직업과 진짜 수당을 받는 상태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실패의 무수한 경험으로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성공의 경험을 누적시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한 발 내딛으세요. 그 한 걸음이 당신의 삶을 뒤바꾸어줄 겁니다.

     당사자의 온전한 자립을 기원하며, 저의 부끄러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보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당사자가 자립에 대해 저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많이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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