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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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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병 혐오라는 쓰리에스 Schizophr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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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은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9,842회   작성일Date 19-04-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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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병 혐오라는 쓰리에스 Schizophrenia



    쓰리에스(3S)라는 말이 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불만과 항거, 정치에의 대중적 관심을 sports, sex, screen으로 돌리도록 한 것을 일컫는다.

    정치를 기피한다는 것은 무관심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쓰리에스는 언뜻 개인의 취미 생활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고도로 정치적인 생활양식이며 수단이다.

    조현병 혐오라는 단어는 단순히 싫어한다든지 불쾌하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조현병 환자를 싫어하든, 싫어하지 않든 혐오는 이루어진다. '혐오'는 조현병 '멸시', 조현병 '차별', 조현병 '편견'에 대한 그 총체를 아우른다.

    이를테면 다음의 헤드라인과 같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 68차례 조현병 치료 확인"

    기자가 개인적으로 혼자 조현병 환자를 싫어하여 이 기사를 작성했을 리는 만무하다. 기자는 고도로 정치적인 까닭으로 이 기사를 내보냈을 것이다. 조현병은 강력범죄의 요인이며, 조현병 환자들은 모두 공격적 성향을 띄고 있고, 그러므로 조현병에 대한 차별이 마땅하다는 삼박자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그 정치적 까닭이다.

    조현병 혐오는 스포츠다.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경기의 총칭' 이것이 스포츠의 정의이다. 조현병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사이의 경계를 공고히 하고 혐오자로 하여금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함으로써 유희를 제공한다.

    조현병 혐오는 생물학적 성차에 기반한다. 조현병 혐오에 의하면 조현병이라는 카테고리는 범죄의 온상이며 기이한 공격성을 띈다. 그리하여 여성에 걸맞지 않은 폭력적인 남성성의 이미지를 빚게 된다. 대중의 머릿속에 말이다.

    조현병 혐오는 상영되는 것이다. 일정한 기의를 갖고 조현병 환자를 촬영하여 다양한 매체로써 대중 앞에 재현한다. 그 기표가 바로 윤리적 정당성이다. "저런 나쁜 놈을 없애야 한다" 대중의 목소리는 하나가 된다.

    설령 그런 것들이 실제로 조현병과는 무관하더라도, 만일 상관관계가 있을지언정 엄중한 감정 하에 비로소 인정되어야 할 관계더라도, 쓰리에스는 지속된다. 그것이 재밌고 자극적이며, 무관심의 정치를 이끌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 권리에 대한 무관심이다.

    인간권리를 일부러 기피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악하다.

    만일 당신이 윤리적 주체이길 포기하고 싶다면, 당장 조현병 혐오를 하라.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당장 "진주 살인사건의 주체가 조현병 환자였으므로 조현병 환자를 차별하자."고 생각하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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