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경계의 선 당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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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등록 당사자가 되기 위해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등록을 하려고 하였지만, 떨어지는 게 당연할 거 같았다.
나는 미등록 당사자다. 등록하고 싶지 않아서 등록하지 않은 게 아닌, 등록이 안 되는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당사자기에 못한다고 정의할 수 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등록 당사자 중 하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 등록한다고 좋은 건 아니야”
맞는 말이다. 단점들도 있을 것이다. 조울증 또는 양극성 정동장애로 진단받고 내 삶은 달라졌다. 우울증이었던 시간과 조울증이었던 시간은 꽤 차이가 났다.
그랬기에 등록하고 싶은 미등록 당사자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분명 좋은 점과 나쁜점은 확연할텐데...
그거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 아직도 나는 내가 조울증이 맞는지 의심이 들곤 한다.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편도 아니었고, 진단받은 병원은 소위 말하는 열악하고 이상한 병원이었기에 더욱더 믿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병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의문과 의구심이 들뿐이었다.
애초부터 멋대로 진단하고 질병코드를 집어넣고 지울 수 없게 하는 구조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래놓고는 장애 등록은 아주 어렵게 해놨다.
사실상 조현병만 등록이 되는 이상하고 모순적인 이 장애 등록은 뭘까? 아니, 애초부터 조현병조차 장애 등록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놓고는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을 숨기기만 하는 이 사회에 역겨움이 몰려온다. 짜증나고 피곤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미등록 당사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특히 일자리였다. 정신장애는 유독 각박한 상황이 있는데 그 중 미등록 당사자는 일자리가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게 다반사였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우리에겐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돈이 있어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또한 중증장애 인턴제 같은 일자리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게 미등록 당사자의 현실이다.
물론 모든 장애인이라고 해서 중증 인턴제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신장애를 가졌으면 유독 이상한 시선을 받는다.
여기엔 니가 올게 아니다. 그런 시선 말이다. 그러나 장애등록이 되어있는 당사자는 미등록보다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이렇게 등록 당사자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판국에 미등록이면 말해 뭐하냐는 것이다. 특히나 미등록 당사자는 언제나 어떤 것이든 순위에 밀렸다.
국가에서 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미등록 당사자들을 배제하였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면 장애등록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등록하려면 조울증과 반복성 우울장애는 등록이 잘 안 된다.
웃기게도 공식 문서에선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은 탈락하는 게 다반사였다. 법이 있으면 뭐하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데.
소송이라도 걸어야지 될까 말까한 이 상황에서 누가 500이 넘는 그 큰돈을 내고 소송을 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답답함만 계속 흘러나왔다.
장애 등록이 되던, 적어도 미등록 당사자도 소외되지 않도록 소견서를 제출하여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던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등록 당사자들도 일을 해야한다. 애매한 중간 경계선에 있는 이들도 일을 해야한다. 그래야지 의식주를 해결하고 병원비를 낼 수 있다.
자기관리를 하기 위해선 돈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이 얼마나 있는가? 하물며 미등록 당사자들이 설 곳이 도대체 어디있냔 말이다.
시대는 변하면서 시급도 변화가 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아직도 임금은 동결이다. 교육은 교육대로 빡세게 들어도 갈 곳이 없다. 우리를 채용할 곳이 없다.
그러기에 적은 임금은 기본이고, 자격증을 요구하며 강한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이 상황에선 우리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비당사자처럼 일할 수 없었다.
아니, 그들조차도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우리가 비당사자처럼 일을 했다간 돌아올 수 없는 강에 건너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애초부터 병원 가는 것 조차 눈초리를 주는 상황인데 어떻게 멀쩡히 일을 할 수 있냔 말이다. 증상이 올라오면 잠시간 휴식 시간을 주면 된다. 특별한 건 없다.
남들처럼 느리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근무 시간내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연약해보이겠지만 막상 그런 건 아니다. 그거 적절한 휴식시간과 외래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확보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단시간도 꿈같고 풀타임 근무는 아득히 먼 달콤한 꿈이었다. 안정적인 고용은 불안정함만 남아 결국 집에 틀어박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도대체 미등록 당사자는 어디서 일을 하고 돈을 벌란 말이냐! 차별과 혐오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사회는 우리를 병원에 가두고 고립시키기만 할 것인가? 우리의 존재를 지워낸 채로 살아갈 것인가!
내가 당사자로서 당사자 인권에 앞장서는 처지가 되었을 때 이 막막한 현실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동료들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걸까. 그들에게 대단하다고 늘 손뼉을 쳐주고 싶었다.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너무나도 많은 소진을 하여 재기불능인 상태가 되었고, 아프게 되었다. 그런 사회는 우리를 낙오자라고 표현하였다.
우리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낸 윗사람들의 문제고, 정서의 문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직도 당사자를 숨기기 바쁜 이 사회에 잘못이지 우리는 잘못된 게 아니고 잘못하지 않았다.
언제나 통계로 찍힌 낙인과 질 나쁜 뉴스 기사로 우릴 재단되어서 인식이 끝없이 나빠지고 있지만 그게 우리 잘못이 아니다.
제대로 우리를 봐주지 않는 이 사회의 문제라고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다.
미등록 당사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아프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고, 그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회는 우리를 죽이는 짓만 하는 것인가. 당당하게 내 병명을 밝혀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모두 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데 왜 그 사회의 낙인으로 내가 아프다는 걸 숨기고, 배척해야하는 것인가.
당당해지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오롯이 서고 싶다. 더 이상 흑백 세계에 갇히고 싶지 않다. 그저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그저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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