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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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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전문가를 흉내내는 동료지원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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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늘맞이달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20회   작성일Date 23-11-29 15:27

    본문


     

    나는 당사자다. 조현 정동장애를 앓았고, 앓고있으며, 앓아갈 당사자다. 그 사실을 잊어본 적은 없다. 다만 증상을 입에 담는 것을 그다지 유쾌히 여기지 않고, 별달리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 여기지도 않을 뿐이다.

     

    하지만 안다.

     

    스스로의 불편함도,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도, 나 자신의 한계도 분명히 안다. 그 한계를 벗어나려하고, 규정짓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내가 당사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며 부정할 생각도 없다.

     

    나는 정신질환 당사자다.

     

    동료지원가는 그런 나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나와 다른 당사자들은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있는 동료이고, 동족이며, 전우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렇지 않고, 현실이 변하는 것 또한 아니다.

     

    회피할 수는 있다.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내가 다른 동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동료가 아니라 내가 이끌어야 할 선생님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우린 그런 수직적인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과 생각, 태도를 갖게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절대 당연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왜 우리는 권위에 약할까?

     

    왜 우리는 권위를 가지고 싶어하고, 스스로가 더 우월하다여기며 다른 동료들의 이야기를 타자화할까?

     

    우린 권위에 굴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당사자성이 확립되었다면, 그래서 동료로서 동료 지원가가 되기 위한 생각과 노력을 한다면, 우리의 권위는 그곳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우린 같다. 우월하지 않다.

     

    당사자들은 같은 경험, 고통을 받아야 하는 순간들이 많다. 사회는 우리를 한 덩어리로 묶고 있는데 그 어디에 우월을 찾을 수 있고, 그 어디에 구별 점을 찾을 수 있을까.

     

    너도 나도 당사자다. 단지 동료지원가로서 좀 더 먼저 사회에 내딛는 행운을 얻었을 뿐이다. 우린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나고 값지며, 특별한 삶의 경험을 가졌고, 삶의 공유를 가졌으며, 다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시선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특별하지 않지만, 당사자이기에 특별하다.

     

    내가 특별하다면 동료 또한 특별하다. 그게 우리의 동료성이다.

     

    당사자는 누구 하나 우월하거나 대단치 않지만, 그 삶은 결코 얕고 볼품없지 않다. 다만 깍아 내지 못한 원석일 뿐이다.

     

    우리는 다른 누구도 겪지 않았을 고통 속에, 자신도 모르는 가능성과 빛을 숨겨두고 있다.

    그게 증상이라는것으로, 사회의 편견이라는것으로, 그리고 그런 편견과 혐오속에 작아진 자신감으로 가려지고 감춰졌을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생각을 갖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자.

     

    당사자성의 출발은 나자신의 생활 그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읊지 말자.

     

    너의 이야기에 너 자신의 생각 없다면 차라리 말하지 말자. 너의 이야기에 너의 삶이 없다면, 너의 삶을 되돌아봐라.

     

    객관적인 데이터를 중시하지 말자.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거고 공부가 필요한 순간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그저 도구일뿐이다.

     

    동료지원가로서 뭔가의 상담기법을 배웠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값진 경험이고 훌륭한 재원이다.

     

    하지만 그것에 얽매여 상담가의 흉내를 내지 말자. 사회복지사를, 의사를 흉내 내지 말자.

     

    우린 동료지원가다. 그러한 일은 사회복지사나 상담사에게 맡겨라. 동료성이 없는 동료상담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건 사회복지사나 상담사, 의사가 더 잘할 거다.

     

    상담기법을 사용하면 훌륭할 것이지만, 그것이 나의 동료성을 잃어버리게 한다면 과감하게 버려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동료라는 것이고, 우리가 같은 눈 높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 자신도 가끔 그 전문성이라는 그것에 파묻히고는 하고, 당사자의 이야기가 타인의 이야기인 것처럼 해버릴 때가 종종 있다.

     

    나보다도 더 많은 입원 생활과 센터 생활에 익숙해져있다면, 그건 더 많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이 그러한 태도와 모습, 그리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 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우린 동료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당사자 활동가로서 대중의 앞에 선다면, 우린 전문가를 비롯한 비 당사자들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생활과 삶이 생생하게 묻어나는 그러한 이야기.

     

    그리고 나 자신만이 아닌 우리 동료들 모두를 위한 이야기.

     

    그게 우리가 가진 삶이고, 우리의 전문성이다.

     

    나는 수없이 고민하고 되묻는다. 생각하고 묻고, 알아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행위를 반복하고 나아가려한다.

     

    나만의 생각이 당사자 모두를 위한 생각이 될 때까지.

     

    나는 동료지원가이고, 나는 동료상담사이며, 나는 당사자 활동가다.

     

    병아리같은 부족함 투성일지라도 나는 걷는다.

     

    세상이 두려워도, 내 자신이 초라해보여도, 그 고통과 삶이, 그 두려움과 창피함이, 나의 당사자성이자 전문성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같다.

     

    나는 좀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나는 당사자로서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모든 동료들과 함께.

     

    그러니까 동료지원가가, 당사자 활동가가 되려는 동료들아,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하는 것에 사회복지사를 흉내내지 말자. 의사를 흉내내지 말자.

     

    그들처럼 타인의 이야기인 듯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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