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견일지. (3) - 위기에 봉착하다.
페이지 정보
본문
나의 파견일지. (3)
- 위기에 봉착하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에게 더 크게 작용되는 이야기 일 것이고 나라고 그것은 예외 사항은 아니다.
파견을 나가며 이런저런 각오를 했다.
자주 넘어지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지 말자. 불안해서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 할수 있으니까.
비오는 날 아픈 모습을 보이지 말자. 건강을 먼저 챙기라며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 할 수 있으니까.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조심하자.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 할 수 있으니까.
그 외에도 어쩌구 저쩌구 자질구레한 것들을 참 많이도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순간에 다 무너진 것 같다.
넘어질 뻔한 횟수는 신경을 기울였으나 줄었을지언정 사라지지 않았고, 비가 오면 아파하는 걸 감추지도 못했다. 오히려 비 오는 날 조퇴도 했다.
그것도 2주차 만에.
그래도 괜찮겠지.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겠지.
착각이었다.
2주차 금요일에 내가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다보니 ‘내가 힘들어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파견지인 병원은 파도손과 무척이나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고, 다른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당사자 중심의, 당사자들을 위하 파도손에 익숙해져 있었다. 예전의 기억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파견지는 파도손을 오기 전의 일들과 별다른 바 없었다. 오히려 더 괜찮은 면이 더 많았다.
나는 나약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일상적인 힐링카페의 근무 환경 속에서 정신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7월 18일의 점심 시간이 지난 시점, 나는 그것을 오롯이 인정했다.
나는 지금 급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의 사회복지사와 이야기했다.
사실은 그저 스트레스가 심하고 증상이 심해, 조퇴하는 것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이것저것,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다 해버렸다.
하루만 쉬면…. 괜찮아질지도 모르는데.
언제나 후회는 늦은 법이고, 쏟아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잘 정리되지도 않는 머리로 가까스로 할말을 정리하며 말했다.
파도손과 다르게 당사자와 비 당사자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그 사이의 어중간한 포지션이 지금의 힐링카페의 일이라고.
어느 순간은 관찰되는 실험 쥐 같고, 어떨 때는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으며, 또 어느 때는 동료 상담, 동료지원 가가 맞는 지, 또 그걸 왜 배우고 해왔는지 허탈해졌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원하는 힐링 카페에서의 일은 내가 더 찾을 일이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매니저분들이 허둥거리거나 계산에 힘듦을 겪는 가끔의 일만 해야 하는 상황이 의욕을 잃게 했다.
거기에 감시하듯 보는 시선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 하는 것에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 모든 것들을 토해내지 못한 것은 같이 온 동료의 긴장이 나로 인해 더 증폭될까봐, 8개월을 함께해야하니 불편해지거나 쫓겨날 수 있기에 겁이 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현재 급여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니 그걸 말하기도 힘들었고 말하고서도 그걸 괜히 말했나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뭔가 엉성하고 앞뒤 안맞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정리해서, 상대방이 기분안나쁘게 둥글게 둥글게 열심히도 말했다.
그렇다고해서 후회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 할 뿐.
생각해보면 그 날은 아침부터 안 좋은 징후로 가득차있었다.
늦게 일어났고, 안경이 없이는 생활하기도 어려우면서 안경을 두고 나왔다. 허둥거렸고. 생활 필수품인 헤드폰을 두고 나왔으며 우산도 두고 왔다.
헤드폰이 없는 전철안은 숨이 막혔고,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과한 생각에 앉아 있는 모든 시간이 불안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에라도 땅이 무너질 것 같고, 당장이라도 전철이 폭발할 것만 같아 뛰쳐내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고 억눌렀다. 그리고 그럴수록 울렁이고 혼란스러우며 폐는 쪼그라 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것들이 조금은 나아진건 아닐까하고 기대했었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철을타고 세정거장을 지나칠 무렵, 나는 안경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사실 나올때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가려했었지만 늦어버린 시간이 발을 붙잡아 안경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말았던 거다.
눈도 잘 안 보이면서 안경을 잊다니.
나는 내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지만, 우산이 없어 흠뻑 비를 맞았다. 역에서 가까운덕에 많이 젖지는 않았지만, 비에 맞은 생쥐 꼴은 면하지 못했다. 그나마 긴팔이라 에어컨 바람에 추위를 덜 느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추적추적, 끈적이는 비가 은은하게 내렸고, 몸은 오슬거린다. 힐링카페 내에서는 비가 오는지 모르지만, 비가 내린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힘이빠지고 뼈가 시렸으며, 소리가 울려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일 테다. 기분상의 문제였겠지.
어느 순간 비는 내리지 않았으니까.
그런 엉망인 몸상태로 오전을 보냈다. 같이 힐링카페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인턴 한분이 조퇴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했다.
저번에 조퇴할때보다 더 안좋아보인다고, 아니, 그때는 아픈지 잘 몰랐다고 했었던가. 나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보이는지 다시 물었다.
그분은 나를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조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함께 파견나온 동료는 버티기를 바랐고.
그래서 난 조퇴하지 않고 참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턴분의 말이 맞았다.
나는 조퇴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소리에 예민해졌고,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하고 험담을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화가 나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고, 공격적인 반응이 올라오려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자극이 없는 공간이 내게는 필요했다. 기분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 덕에 그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고 과호흡이 찾아왔다. 세상이 울렁거리고 괴리감이 느껴지고 호흡은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호흡을 내뱉는데도 숨이 막혀왔다.
온몸에 피가 멎어버린 것 같이 저릿고, 힘이 빠져나간다. 그 잠깐의 시간의 괴로움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힐링카페의 구석에 앉아 또 다른 인턴 선생님의 말에 따라 힘이 돌아올때까지 앉아있었다. 축늘어졌고, 잠깐은 소리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난 그곳에 오래있을 수 없었다.
아아, 파도손에 출근하며 좀 쉬어도 된다고 했던가?
나와 상담했던 사회복지사분은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돌려이야기하는 걸까, 나오지 말아 달라는 그런 의미일까?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를 넌지시 돌려 말한 걸까?
모르겠다. 생각이 돌아가지 않는 다.
또 누군가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며 나를 험담하는 것 같다는 불안감과 분노가 찾아온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자극이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파도손에 전화를 걸어 현 상태를 보고하고 병원을 벗어난다. 비는 어느세 멎어있다. 언제 비가 멎었을까.
모르겠다. 오전이 지나고, 점심이 지나는 그 사이 언젠가 멈추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무슨 상관이 있을까.
머릿속에는 이미 홍수라도 난 듯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는데, 엉망이 되버린 기분은 풀릴 생각을 안하는데.
세상이 온통 적으로 보인다. 세상이 전부 불안하게만 보인다.
어서, 어서 집으로 가야만한다.
전철은 조용했고, 기이하게도 그 순간의 혼란은 느껴지지 않았다. 더 큰 혼란과 불안에 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늘어진 몸은 전철에서 편안했고, 지나치지않고 내 집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무릎에 힘이 풀리고 불안이 한꺼번에 닥쳐온다.
약을 먹어야한다. 부담이 돼서 먹지않았던 저녁약을 하나도 빠짐없이 먹어야한다. 지금은 약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렇게라도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집에 쓰러져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자극없는 조용함에 아늑함을 느낀다. 진정이 된다. 편안해진다. 괜찮아진다. 스르륵 눈꺼풀이 내려온다.
지금은 자자. 도망치는 것이라도, 그것이 못내 싫더라도, 잠시만 잠시만 자자. 잠시만 아무 생각도 말자.
오늘 하루가 다 지나지 않았지만, 걱정거리로 가득한 내 머릿속을 비워두기로 한다. 저항하지않고 스르륵 잠에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땐 산책을하고, 음악을 듣고, 그리고 그 멍한 시간들을 지나 다시 잠이 들 시간이 되었을땐, 저녁약을 털어넣었다. 일부만 먹는 것도 아니고 아홉알의 약을 전부 넣었다.
내일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지금은 다 먹어야하지 않을까. 그편이 나은 선택일 것이다. 나는 지금 분명히 약이 필요하다.
그리고 눈치가 보이더라도 병원에서 뭉그적거리며 파도손 이야기는 모른 척하자. 돌려서 말한 것이 아니길 믿자. 그렇더라도 못 알아들은 척하자.
앞으로의 시간 나는 괜찮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내일 아침에 잘 일어나길 바라며, 나는 위기가 찾아온 하루를 닫았다.
나의 파견생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감겨진 내 눈앞에 펼쳐진 어둠처럼, 난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 그저 더 불편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만이 스치고 지나갈뿐.
난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함이 졸음에 스르륵 사라져간다. 그 흔적만 남기고 잠에 먹혀들어간다. 해내지 못하더라도 해내야만한다.
나는 그래야만한다.
- 이전글나의 파견일지 (4)- 안개가 끼었다. 23.07.24
- 다음글행복한 날이란, 23.07.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