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일할권리 -나는 일하고 싶어요
페이지 정보
본문
당사자의 일할권리
-나는 일하고 싶어요
나는 그림자를 본다. 세상이 그림자를 보라 이야기하니까. 그저 실체의 일부만을 흉내내는 그것이 나라고 이야기하니까.
나는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노’라고 하는 용기를 잃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그림자에 꿀꺽 삼켜졌다. 질척한 늪같은 그것에 침몰한다. 침몰하고 만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더 빠르게, 온 몸을 짓누르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고 나라고 알때까지 그래서 스스로가 무엇도하지 못하는 위험한 불량품, 터지지 못한 지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량품으로 믿어버린다.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무엇인지, 나는 이제 알지 못한다.
늪에 머리끝까지 처박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온몸에 질척하게 들러붙은 세상은, 결국 스스로를 짓밟고, 스스로를 목조르게 한다. 내 손으로, 나의 의지로, 절벽의 끝으로, 낭떨어지로 걸어가게 한다.
내 손으로, 너의 의지로, 절벽의 끝으로, 낭떨어지로 걸어가게 한다.
그런데 정말 그게 나의 의지가 맞는 걸까?
내 등뒤로 아가리를 벌린 저 ‘괴물’은 아무 잘못없는 걸까?
그저 내가 약하고 모자라서, 벌을 받아야하는 악인이라서 일까?
단호히 말하지만 모두 헛소리다.
나는 내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간 적이 없다.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믿었을 뿐이다. 두려웠을 뿐이다.
저 시뻘건 세상의 편견과 무지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정한 짐승이 나를 묻어 뜯을 까 겁이나서, 혼자서는 도저히 이기지 못할 거인을 피해 달아났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이 내모는 세상의 끝으로 스스로 걸어간다.
이건 살인과 무엇이 다르다는 걸까?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당사자의 삶이 없는 이 형체없는 지옥은, 얼마나 우리를, 정신장애인들을 잡아먹어야 그만둘까.
변화는 느리고, 혐오의 괴물은 그대로고, 우리의 동료들을 하나 둘, 촛불꺼지는 듯 조용하게 삶이 꺼져간다.
돌아갈 곳도, 쉴곳도 없다.
무엇하나 하지 못해 초라하게 찌그러지고 사그라져 간다.
분명 우리는 비 정신 장애인들, 소히 일반인에 비해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회성이 부족하고, 오랜 투병으로 많은 합병증을 달고 살며, 작업능률이 떨어진다.
적어도 지금 그대로는 말이다.
삶이 없는 ‘격리’와 ‘관리’만 있는, 우리를 외계인 취급하는 세계가 있는 한,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만약 그렇더래도, 그것이 영구히 이어질지라도, 모든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단호히 말한다.
모두 헛소리다.
언제나 우리 그 상태 그대로인 것도 아니고, 삶의 한 귀퉁이조차 내 주지 않는 것은 그 옛날 아우슈비츠의 학살범들과 같은 괴물들이나 할 일이다.
그렇지않으면 왜 우리는 그 수많은 헛소리들이 살아 숨쉬는 걸 보아야만 할까.
우리는 세상에 폐를 끼치고 싶지않고 대부분은 그러지도 않는다.
피해자가 되는게 우리에게는 더 익숙한 일임에도 왜, 왜 이렇게 한 귀퉁이를 내어주지 않을 까?
범죄가, 이해 할 수 없는 잔혹한 살인은 분명 용서받기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범죄들의 이면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사회의 한 귀퉁이 조차 자리하지 못해 군중 속 섬에 살아간다. 그리고 혐오와 차별의 유리통 속에 갖혀 세상의 날 선눈들을 마주해야만한다.
도망갈곳도 외면할 것도 없이,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처럼, 발가벗겨진 체 유리된 섬에 산다.
그렇게 내팽겨진 체로 절규한다.
몰이해와 무관심.
혐오와 차별.
빈곤과 고독.
사회 속에 유리된 당사자의 섬은 그러한 곳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두려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대지 위에 발가벗겨저 상처투성이가 되는 곳.
당사자의 섬은 그런 곳이다.
“정신병자는 게으르고 나약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 괴상하게 행동해서 거북하고 무서워.”
“치료받지 않으면 범죄자가 될거야.”
수많은 말과 수많은 시선은, 늘 그런 식이다.
정신장애인은 그렇게 넝마가 되고 부서져 가루가 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기에 일하고 싶다.
우리는 그렇기에 꿈을 꾸고 도전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삶을 이어가고 싶다.
우리는 사회의 한 귀퉁이에 있고 싶다.
그러니까 작은 귀퉁이라도, 숨 막히는 시선과 말이 없는 곳이라도 내어줄 수 없을 까.
사회 속에 속해, 무능력하게 살지 않을 수는 없을까.
내면의 괴로움과 싸우고 혐오와 부대끼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우리에게 작은 쉼이, 작은 자리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숨 쉴 수 있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오늘도 바라고 또 바란다.
당사자는 일할 권리가 있어야한다.
당사자의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번다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게되며, 사회에 속했다는 소속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유리통을 깨고 나와 날선 시선들을 바꿀 수 있고, 하지못했던 스스로의 독립을 이룰 수 있으며, 병자가 아닌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보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종국에 사회의 부담을 덜어주고, 당사자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며, 병이 있든 없든 의식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당사자가 되게 한다.
우리는 일해야하고, 우리는 스스로 사회 속에 서야하며,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야만 한다.
- 이전글당사자에게 직업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23.07.20
- 다음글나의 파견일지(1) 23.07.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