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장애인단체 지하철시위 , 서울시민 볼모에 대한 나의 생각..
페이지 정보
본문
안녕하세요. 도봉구 방학동에 거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입니다.
저는 아침 출근길에 8시마다 방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창동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후, 충무로역까지 오곤 합니다. 최근 들어 장애인 단체 시위라는 방송과 함께 지하철이 연착된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에 많이 늦게 될까 걱정이 되어 버스로 갈아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며 선택의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회사 단체 카톡방에 ‘장애인 단체 시위로 지하철이 연착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글을 올리고 언제 도착할까 걱정했었죠.
길게 기다릴 때는 10분 넘게도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네, 저보다 훨씬 전부터 같은 역에서 승객분들이 수십분 넘게 기다리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10분 이상 늦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걱정 외로 생각보다 빨리 지하철은 다시금 운행하곤 했고 단체 카톡방에 심각하단 듯 죄송하단 말을 한 게 무안할만큼 5분~10분 늦곤 했습니다. 충무로역에 내릴때마다 생각만큼 늦지 않은 걸 보며 맘 속으로 시위를 하신 장애인 분들을 탓했던 것에 못내 죄책감을 느낀 적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네, 예기치 못한 지하철 연착과 지각, 물론 불편하지 않다고는 말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겨우 몇일이었는걸요? 그것도 10분 지각 정도로요. 다리를 삐거나 부러져 본 경험이 더러 있으실 겁니다. 그 때 이동하는 게 얼마나 불편하셨는지 기억나시나요? 한쪽 다리로 걷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불편한데 양 다리를 사용할 수 없다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동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는 이미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고 어떤 역은 엘리베이터 조차 있지 않다면, 그 불편함을 매일 365일 겪어야만 한다면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요? 이동에도 권리라는 말이 붙어야 할만큼 이동이 어렵다면 고쳐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런데 지난 25일,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는 시민들의 출퇴근을 볼모로 잡지 말라며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고귀한 부르짖음을 마치 무척이나 잘못된 행동인 양 말했습니다. 혹자는 그러더군요. 시민들의 출퇴근이 볼모로 잡힌 게 아니라 수십년간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이 볼모로 잡힌 거라고요. 저는 이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마냥 띵, 하고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맞습니다. 서울시민은 고작 몇일 이동이 불편했지만 그들은 365일 이동이 불편합니다. 저는 이제야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가 되려 합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그 불편함을 몇일, 몇분만이라도 겪어보고 자신들을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았을까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누군갈 때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의 고통을 이해해달란 겁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앞날이 너무나 걱정됩니다. 앞이 창창한 30대의 젊은 정치인이 이렇게나 공감 능력이 없어서 과연 우리나라의 정치계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말 잘하고 논리력 우수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말 잘하고 논리력 내세우기 위해 하는 것인가요? 시민을 대표해 살기 힘든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 아닌가요? 신체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란 말입니까?
공인이라면, 이동에 자유가 없어서 몸소 울부짖는 장애인에게 시민을 볼모 삼는 불한당 이미지를 씌울 게 아니라,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편의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시민들을 일깨워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똑똑하고 세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똑똑한 두뇌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준석 당 대표의 어리석은 영혼이 참 가엾고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언행을 부추기고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까지도요.
- 이전글논문 <비자의 입원 정신질환자의 의사결정지원에 대한 질적 사례연구: 절차보조 시범사업을 중심으로>를 읽고서 22.05.19
- 다음글"희망의 심장박동" 북콘서트 소감문 - 동료상담가 N 21.05.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