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당사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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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당사자 단체
백혜정
당사자주의란 뭘까? 내가 파도손에서 배우고 경험한 당사자주의란, 당사자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고민하여 결정하고 스스로가 노력하여 성취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의 회복에 당사자주의가 핵심인 이유는 뭘까? 나는 나의 성장을 통해 당사자주의가 정신장애인의 회복에 왜 그리도 중요한지를 몸소 체험했다. 내가 맡은 일을 사회복지사의 도움과 간섭 없이 진행하고 성취했을 때, 나는 성장했고 증상 또한 줄어들어 복용하는 약의 가짓수와 용량 또한 줄어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 여럿이 증상이 줄어들어 약물을 감량했고, 눈치도 빠릿빠릿해져서 일을 더욱 잘하게 되었다. 가족들로부터 경제적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독립해 자신만의 공간에서 집안일, 요리 등도 해 나가며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낸 사람도 있다. 일반인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런 성장이 정신장애인에겐 정말 어려운 것이다. 많은 당사자가 수급권 또는 부모님께 의존해 살아가는 것에 비해 파도손에 입사한 당사자 중 많은 이들이 수급권을 포기하거나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걸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신장애인 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두가 철저하게 당사자주의에 입각해 일을 진행하는 파도손에 들어오면서부터 변화한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 성년후견제도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정신장애인 단체 중에 가족단체가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파도손에선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며 함께 일한다. 파도손은 대표가 정신장애인일 뿐만 아니라 현재 근무하는 총인원 29명 중 90%에 육박하는 26명이 당사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파도손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 운영회의에는 당사자들만이 참여한다. 파도손 대표는 운영 회의에서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중요한 안건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파도손이 진행하고 있는 동료상담 양성사업에서도 모든 안건이 당사자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앞서 말한 파도손 당사자들의 성장은 이러한 분위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 단체라고 한다면 누가 생각하기에도 당사자가 비당사자보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 단체라 이름 붙이며 직원 중 대다수가 비당사자인 모 단체도 있다. 모 단체에 들어가는 서울시 예산은 어마어마하다. 예산의 대부분은 비당사자에게 들어간다. 당사자 20명에게 1년 동안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한 예산이 그저 비당사자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에 들어가고 있다. 시민들의 피 같은 돈으로 모인 세금이 당사자가 제자리걸음만 하게 하는 비당사자들의 관리 업무에 들어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눈먼 돈이 아닐까?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를 만들라고 내는 세금이 정신장애인의 회복에는 도움 되지 않는 곳에 들어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낭비 중의 낭비 아닐까?
나는 당사자 단체라 칭하는 그 단체가 좀 더 당사자 단체의 본질에 가까워지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를 설립할 때 필요한 요건이 좀 더 엄격해지고 올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다. 단체의 직원들 중 50% 이상이 당사자이어야 하고 이를 권고사항이 아닌 필수요건으로 정해야 한다. 또한 대다수가 당사자이더라도 소수의 비당사자들 중심으로 단체가 돌아가선 안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선택하여 단체의 방향성을 당사자들이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복지를 실현하고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이 더 이상 불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도록 당사자 단체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정신장애인의 더 나은 미래는 곧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미래가 오기를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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