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Our Own 소감문 (5)-이00 동료상담가
페이지 정보
본문
5. 사람들이 미칠 때
의사나 일반대중 사이에서조차 정신건강과 정신병/정신질환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실로 질병이어야만 정신과의사들은 정신병/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 전문적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정신의학 의료모델의 옹호자들은 아주 독단적인 경향이 있다. 정신의학의 역사는 빈번하게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박해받았던 이전의 미개한 시기에서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아프고, 유익한 정신의학적 치료의 적절한 대상으로서 인식되었던 계몽주의의 여명인 꾸준한 진보에 대한 기록으로 제시된다. 그들의 “치료”에 이의가 있는 “미친”사람들은 무시되거나 질병의 증거로 제시되는데, 이는 순환논법의 한 형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병/질환”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용어도 아니다. 사즈가 지적한 것처럼:
“조현병”은 나치 독일에서 있었던 “유태인(Jew)”이라는 라벨이 그랬던 것처럼 전략상 중요한 라벨이다. 책에 나오는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의 이용이 주인공에게 도움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야만성은 제도 정신의학적 치료에 부수적이지 않다. 정신병원의 역사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저질러진 다양한 고문의 역사이다. 정신병원에서 그 다음의 혁신도 영국으로부터 왔다. 정신과의사 데이비드 쿠퍼와 R.D.랭은 그들이 운영했던 병원의 병동에서의 변화들을 실험하였다. 랭과 그의 동료들은 병원 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의 종류에 대한 한계를 깨달아 환자와 직원이 함께 살며 일할 수 있는 집이었던 그 유명한 “킹슬리 홀”을 만들었다. (여성주의에 근거한) 엘리자베스 스톤 하우스와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는 개인의 불행과 사회적 조건 간의 중요한 연결을 만드는 것을 시도했던 반면, 소테리아 하우스는 노골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하다.
(사람들이 미칠 때에서는 정신과 의사들이 어떻게 해야 정신병으로 인정하는지에 대하여 논술하였는데, 예전부터도 사람이 미치거나 정신적으로 아파야만 환자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이 안타까웠다. 정신병원의 역사와 킹슬리 홀,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 소테리아 하우스 등 예전의 유명한 정신병원들의 명과 암을 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6. 정신과환자들의 협회 내부
도움과 지원을 필요로 하기 위해 삶의 위기 상황에 있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어떤 시점에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전 정신과환자들은 많은 특별한 종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그건 그들이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경험하는 개인적 위기에 더하여 그들은 종종 정신과 병원입원의 쇠약하게 하는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신과환자들은 그들의 어려움을 치료하기 위해 전문가의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증상”으로 생각하도록 배운다. 일어나 살 곳을 찾는 일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 조차도 전반적인 정신의학적 프레임 내에서 사회복지사들에 의해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이전환자들을 위한 좋은 대안 서비스 모델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1. 서비스는 클라이언트들에 의해 정의된 필요들에 맞게 도움을 제공해야만 한다.
2. 서비스에서의 참여는 완전히 자발적이어야 한다.
3. 클라이언트들이 다른 부분에서 참여하도록 요구됨 없이 서비스의 일부 측면에 참여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야만 한다.
4. 도움은 서비스를 받는 클라이언트들이 서로에게 제공하고, 클라이언트가 선별한 다른 사람들도 제공할 수 있다. 도움을 주는 능력이 교육이나 전문분야의 학위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닌 인간의 속성으로 본다.
5. 금전적 및 정책적 결정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여 서비스의 전체적인 방향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6. 서비스를 받는 클라이언트들의 참여가 이전환자들로만 제한될 것인지, 아님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7. 서비스에 대한 책임은 클라이언트의 가족이나 친척, 치료 시설, 정부가 아닌 클라이언트에게 가진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정보는 클라이언트의 동의 없이 다른 어떤 제3자에게 전송되지 말아야 하고, 그러한 정보는 클라이언트가 입수 가능해야만 한다.
“정신과환자들의 협회”는 그것의 다양한 시설과 활동들을 통하여 몇 백 명의 멤버를 섬긴다. 멤버쉽 회비나 신청서, 형식절차는 없다. 그건 진실로 개방된 문이다. “정신과환자들의 협회”를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드롭인 센터에서 전형적인 날을 보내는 것이다. “정신과환자들의 협회”의 기본방침인 네 가지 규칙의 위반은 즉각적으로 다루어진다. 벽에 눈에 띄게 붙여진 규칙은 읽힌다
1. 술 금지
2. 비 처방약 금지
3. 폭력 금지
4. 타인의 평화로운 향유 방해 금지
드롭인 센터에서 위 규칙의 위반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긴급회의에 의해 즉각적으로 다루어진다. 분쟁의 당사자들과 증인들, 모든 이들은 그룹에게 말을 걸고, 그리고 나서는 그룹이 어떻게 상황을 다룰지를 결정한다.
이제 “정신과환자들의 협회”를 설명했으므로, 앞에서 제안했던 좋은 대안적인 서비스 모델과 함께 검토할 것이다.
1. 서비스는 클라이언트가 정의하는 필요들에 맞는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2. 서비스에서의 참여는 완전히 자발적이어야 한다.
3. 클라이언트들은 다른 서비스들에서의 참여가 요구됨 없이 서비스의 일부 측면에 참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야만 한다.
4. 클라이언트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클라이언트들이 고른 다른 사람들 또한 도움을 제공할 지도 모른다.
5. 금전적 및 정책적 결정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여 서비스의 전체적인 방향은 서비스 수령인의 손에 달려 있다.
6. 서비스의 클라이언트들은 참여가 이전환자들로 제한될 것인지, 아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7. 서비스의 책임은 친족, 치료기관이나 시설, 또는 정부가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가진다.
(정신과환자들의 협회 내부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드롭인 센터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는데 정신과환자들의 협회의 범위가 매우 넓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다른 서비스 모델에서도 클라이언트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의사나 간호사들이 환자 자신의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식사하게하고 다른 환자들과 어울리도록 했던 기억이 난다.)
7. 재정 및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인 그들이 창설하기를 바라는 대안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결정한 후 창단 그룹은 그 다음에 다수의 실용적인 문제들로 관심을 돌려야만 한다. 이것들 중의 첫 번째는 금전이다. 다른 실질적인 문제들은 철학적인 고려를 포함하기도 한다. 내부조직은 그런 한 문제이다.
어떤 종류의 대안 서비스를 그룹이 수립하기로 결정하든지 간에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찾는 것에 대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그룹이 서로의 거실에서 모이는 단계를 지나 나아가면서 만날 장소, 전화 서비스, 우표 및 비슷한 비용을 제공하기 위한 자금의 어떠한 조달원이 필요할 것이다.
위기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집중적인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기에 위기주택은 레지던스보다 더 높은 예산이 요구될 것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이러한 집중 서비스의 비용은 정신보건 시스템을 통해 제공되는 것들보다 훨씬 더 낮다.
자금을 신청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정교한 과정이다. 그룹의 한 멤버가 과거에 제안서를 작성했던 경험이 있다면 이런 경험은 귀중하다고 증명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룹은 고문으로 기꺼이 봉사하려는 친구나 그러한 경험이 있는 안면 있는 사람을 찾아내거나 제안서 작성의 경험을 가진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현지의 다른 지역단체에 의견을 묻기를 원할 것이다. 아마도 있을 수 있는 자금 조달 원들은 정부, 재단들, 그리고 현지 지역의 서비스 단체들이겠다.
자금 신청서의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는 그룹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때때로, 펀딩 기관은 제안서에서의 변경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제안이 알아보기를 넘어서 왜곡되지 않도록 그룹이 변경을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다.
두 개의 성공적인 대안 서비스 “정신과환자들의 협회”와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가 벤쿠버에서 시작된 이유는 캐나다 정부의 진보적인 자금 정책 때문이었다. 급여를 주기를 그룹이 원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그것은 또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기성의 권력 조직”이 되는 것을 막을 절차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급여를 받는 일자리에 대한 연 2회의 선거를 치르는 “정신과환자들의 협회”의 관행은 정확하게 이런 연유로 시작되었다.
종종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대안시설에 대해 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환자들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데에 아주 익숙해져 있어서 이전환자들이 대안 서비스의 관리자이고, 클라이언트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힘들어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이고, 기능하는 대안들에 직면하여,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전환자들이 무능하다고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다루도록 억지로 떠밀어질 것이다. 이것은 전문가들에게 인식제고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재정 및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에서는 정신병원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재정적인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현실에서의 개인병원을 운영하더라도 재정적인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고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예전 병원들의 재정규모나 혹시나 모를 재정고갈 문제 등이 궁금했는데 이 장에서 나온 “정신과환자들의 협회”와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등 대안 서비스가 돋보인 것 같다.)
8. 강압 또는 협조?
역사의 다른 시기에서 “광기있는” 사람들은 추방당했고, 채찍질을 당했으며, 또는 지하실이나 다락방에서 자물쇠가 채워진 채로 감금되었다. 정신장애인/질환자에 대한 감금이 치료가 되도록 한 것은 단지 200년에서였다. 감금의 목적을 위해 존재했던 시설들은 시설 내 변화로 인한 것 보다는 이것저것들의 이름을 바꿈으로써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들로 변형되었다.
정신병/정신질환에 대한 이러한 태도들은 단지 과거의 한 부분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태도들은 정신병/정신질환이 그 어떤 다른 질병과도 같다고 단언하는 현대의 정신건강 이데올로기와 나란히 존재한다. 이러한 단언에도 불구하고, 우린 추정되는 정신병/정신질환을 단순히 추정되는 폐렴이나 심장병과 동일한 카타고리에서 보지 않는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들과 직원들 사이에 있는 거대한 거리는 의미있는 인간의 접촉을 만드는 것을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한다. 진정한 평등은 없다. 환자들은 그들의 활동과 대화에 대해 보고하는 일을 하는 직원들의 통제 하에 있다. 감시받는 느낌에 대하여 푸념하는 환자들은 종종 망상적이 되었다고 레이블된다.
위험에 대한 신화는 계속적으로 영속된다. 텔레비전 범죄 쇼들은 정신병/정신질환이 그의 살인적인 광란에 기여하는 “사이코패스 킬러”없이 폐업할 것이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은 자주 같은 주제를 사용한다. 아주 적은 정신과환자들만이 범죄를 저지를지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다수가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소수만이 널리 선전된다. 법을 준수하는 삶을 사는 이전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간다. 빈번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잠재적으로 위험한”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다.
정신병원이나 관련시설에 감금되어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아무런 법도 위반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범죄”를 저질렀고, 따라서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로 진단된 것이다. 미국의 대중들은 이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마도 먼 훗날엔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강압 또는 협조? 이 장에서는 현재도 그러하지만 과거에도 “광기있는” 사람들은 추방당했고, 채찍질을 당했으며, 또는 지하실이나 다락방에서 자물쇠가 채워진 채로 감금되었다. 그 역사가 200년이나 되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나도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몇몇 조현병을 가진 환자가 사고를 일으켜 침대에 묶이거나 혼자 생활하는 방에 가두는 등 몇몇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호사들이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도 사람답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
9. 환자 말고, 사람들
우리는 정신 “건강”과 정신 “병”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살펴보고, 우리의 문화에 침투하는 정신의학적 신화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근심이 있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에 있다고 정의될 때 그들은 정신의학적 “치료”에 대한 부가적인 고통과 정신과환자가 되는 것에 대한 낙인으로 고통 받는다. 하지만 그 환자들만 고통 받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적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어려움들을 전문가들만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신비화하기에, 우리 모두가 조금 못한 인간이 되게 한다. 그 어떤 사람도 정신과환자가 될 수 있기에, 이것은 환자들과 이전 환자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문제이다.
존속 가능한 대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그건 이미 실패한 “전문가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시민인 우리 모두가 같이 작업하며 달성해야 하는 임무이다.
사랑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며 우리가 고립시키는 근심하는 친족과 친구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역사회(혹은 커뮤니티)는 정신의학에서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지역사회” 정신보건 센터들은 나라 전체에 설립되어 왔고, 많은 전문가들은 이제 그들 자신을 “커뮤니티”정신과 의사들로 부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지역사회 정신보건 센터들은 일반적인 주립병원 이상으로 그것이 세워진 지역사회의 한 부분이 아니다.
지역사회 정신보건 센터들은 주립병원 시스템을 대체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성장하고 있는, 유사한 관료제도이다. 지역사회 정신보건 센터들은 그들의 “힘든” 환자들을 위협하기위한 무기로써 주립병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문제들”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낙인찍고, 우리 자신 깊숙한 곳에 있는 문제들을 인정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게 하는 시스템을 없앨 수 있다. 오직 진정한 대안들을 발전시킴으로써만 우린 너무 오랫동안 정신의학의 통제 하에 고통 받았던 환자들을 그 것이 “돌본”것보다 우리가 서로를 훨씬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 말고, 사람들에서는 정신과 환자이기 때문에 고통 받지만 말고 우리를 낙인 찍는 시스템을 없앨 수는 없지만 정신 장애인도 조금씩 지역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으면 좋겠고 생각했다. 또한 누구라도 정신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그들을 차별하거나 사회에서 밀어내는 행동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정신과에 다니고 있지만 병원을 다니기 이전부터 내가 정신과를 다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지 않을지 염려되었다. 하지만 감기가 걸리면 병을 치료해야 하듯이 정신적으로 병이 걸린 것이라 생각하고 남들 시선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병원을 다니고 치료하고 지역사회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 이전글On Our Own 소감문 (6)-이00 동료상담가 20.09.29
- 다음글On Our Own 소감문 (4)-이00 동료상담가 20.09.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