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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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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정신병원 안의 독방, 케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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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은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462회   작성일Date 19-11-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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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님 그림 CR.jpg

    ▲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당사자 이정하 대표가 CR을 묘사한 그림

    나는 정신과 개방 병동에서 이 글을 쓴다. 개방 병동은 통신과 외출 등을 일부 허락하는 등 폐쇄 병동보다는 약간 더 자유로운 환경이다. 얼마 전까지는 폐쇄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인권유린의 현장을 환자의 신분으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가장 좋다는 서울에 있는, 환자와의 소통이 원활한 축에 속하는 병원이었지만, 갖은 불의들을, ‘갇힌’ 환자들의 아우성을 목도했다. 그러한 불의와 아우성을 가장 상징하는 장소가 정신 병동 안의 격리실 ‘CR’이다.


     


    ‘케어룸’이라는 독방


    CR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케어룸(Care Room)’의 약자다. 한국말로는 ‘보호실’이라고 부른다. 정신 병동에서 응급한 상태의 환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아니, 환자를 특별히 보호해 준다니 좋은 취지의 시설 아닌가. 그런 공간에서 무슨 인권유린의 현장을 목도한단 말인가.


    사전적 정의에서 탈피해 우리의 현실을 보자. CR은 바깥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바깥에서 문을 잠그는 독방이다. 대소변을 보라고 플라스틱 통을 비치해 놓기도 한다. 환자들이 원해서, 스스로의 '케어'를 위해 온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수많은 정신장애인이 묶여서, 질질 끌려가며, 발버둥을 치며, 아우성치며 이곳에 도달한다. CR에 도착한 이후의 삶은 피폐하다. 독방에 갇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고, 움직일 공간조차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당신이라면 갇히고 싶은가?


    정신장애인도 사람이고 삶이 있다. 너무 당연한 사실임에도, 사람들은 종종 '광기'에 휩싸인 정신질환자들은 '격리'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정신 병동에 격리된 환자들은 그 안에서도 "말을 듣지 않는다"라며 곧잘 CR로 보내진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이미 갇힌 이들을, ‘아픈 사람’들을 왜 조그맣고 바깥도 볼 수 없는 방에 가두는가. CR이란 도대체 왜 필요하고 존재하는가.


     


    CR에 보내는 이유


    나는 3주 전, 병원 간호과에 "잠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간호과에서는 수면제를 처방해 줬지만, 두 차례 알약을 먹고 누웠다가 잠시 걸었다가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세 번째로 간호실에 방문했을 때 간호사가 그랬다. "CR로 갑시다." 나는 얼어붙어선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저항했다가는 묶여서 끌려갈 수 있다) 보호사를 따랐다. 다행히도 비어 있는 CR이 없어 나는 병상으로 돌아갔다. 이 글을 쓰기 불과 3주 전, 그러니까 2019년 현재의 일이다.


    겉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것과 폭력을 실제 휘두르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제다. 어떤 이가 정신장애로 인해 자·타해 위협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광기’가 “정신병자에게 폭력적 성향을 띠게 한다”는 것은 순전히 편견이다. 둘은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여러 정신 병동 현장에서는 이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 없이, 후자의 이유로, 또는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환자를 CR에 보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내가 겪은 바처럼 “잠을 자지 않는다” 또는 "소동을 벌인다", "약을 먹지 않는다"와 같은 황당무계한 이유로 CR에 보내려는 경우 역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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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10만 명 당 정신 병동 '퇴원 후 자살' 인구

    돌봐줘야 하는 환자를 무작정 격리실로 보내 강제로 약물을 투약하고 재우는 것은 '케어'가 아니다. 왜 사람을 독방에 가둬 놓고 '케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내과 환자는 입원해 소동을 피워도 '케어룸'에 가두지 않는다.


    이미 환자들 사이에서 CR은 악명이 높다. "너 자꾸 그러면 보호사 선생님께 일러서 CR 보낼 거야." 환자도 다른 취약한 환자를 협박해서 '평화'를 찾는다. 그러한 '평화'란 얼마나 얄팍하고 잔인한가. 이런 환경의 정신 병동이 국내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판국에, 병동 퇴원 후 1년 내 사망자 역시 수없이 많은 것은, 예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예견하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케어’


    묻고 싶다. CR은 정말로 필요한가? CR은 그 효용을 다하고 있는가? 내 대답은 “NO”다.


    소란을 피우거나 말을 듣지 않는 '특수한' 환자를 독방에 가둬 놓는 병동은 이 세상에 없다. 오로지 정신과 병동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 '특수함'이 해당 환자의 병증과, CR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더욱 황당한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케어’는 강제로 독방에 가두고 약을 우겨넣는 ‘치료’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우리 권리에 대해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으며, 보다 나은 치료 환경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자유’의 치료다. 진정한 의미의 ‘케어’는 병원이 격리실의 역할이 아닌 병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이뤄질 수 있으며, 이것은 CR이라는 부조리가 존재하는 한 가능하지 않다.


    정신장애인은 케어를 원한다. 격리·감호가 목적이 아닌, 기울어진 정신보건 현장을 평평하게 세워 놓을, 평등한 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케어룸이 없는’ 병원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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